한국일보

도광양회, 그 올바른 해석은…

2018-12-03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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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광양회(韜光養晦)’- 중국 외교와 관련해 한동안 자주 인용되어온 4자 성어다. ‘빛을 감춰 밖으로 새지 않도록 하면서 때를 기다리며 은밀하게 힘을 기른다는 것이 그 의미다.

1990년 덩샤오핑이 서방과의 관계에서 특히 지켜야 할 자세로 중국공산당에 당부한 말로 이후 도광양회는 꽤 오랫동안 중국의 외교방침으로 인식 돼왔다.

‘이 말을 뒤집어 새겨봐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국제전략연구소의 조셉 보스코가 중국과 미국, 더 나가 서방과의 관계를 재조명하면서 던진 질문이다. 그 말의 행간에는 어딘가 불길한 의미도 내포돼 있다는 지적과 함께.


무엇을 은폐한다는 것인가. 그 첫 질문이다. 그리고 은밀하게 힘을 기른 후에는 도대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덩샤오핑이 이 발언을 한 1990년이란 시점도 되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개혁개방의 기수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 덩샤오핑이지만 정치개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공산체제가 붕괴상황을 맞게 됐을 때 어떻게 대처했나. 탱크를 동원해 민주화 세력을 깔아뭉갰다. 1989년 천안문 학살이 그것이다. 공산주의자의 본색이 드러났다고 할까.

엄청난 백파이어가 뒤따랐다. 상황이 좋지 않다. 그러니 본심을 감추고 납작 엎드려라. 그러다 보면 때를 만나게 된다. 그 때는…. 이게 도광양회가 지닌 또 다른 의미라는 해석이다.

‘은밀하게 힘을 기른 후에는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후 그 답을 시진핑이 제시해주고 있다.

미국이 중심이 된 서방은 ’용서 할 수 없는 적(mortal enemy)‘이란 기본인식에는 공산정권 수립 70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변함이 없다는 것이 그 하나다. 그리고 ‘파워는 총구에서 나온다’는 마오쩌둥의 가르침에 충실한 것이 중국공산당이란 것이 또 다른 답이다.

법치(rule of law), 민주제도, 표현의 자유, 그리고 이런 가치관들을 기반으로 한 국제제도 등은 중국공산당이 염원하는 사회, 더 나가 그들이 원하는 세계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시진핑의 중국은 말해주고 있다는 거다.

지나치게 우파적 시각의 진단은 아닐까. 일면 그렇게도 보인다. 그렇지만 기득권층을 대변하는 포린 어페어스지, 또 그보다 진보성향이 짙은 포린 폴리시지 등의 시각도 다르지 않다.


“중국이 변해야만 한다. 이를 위해 중국을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맞아 들여야 한다. 그 중국의 경제가 발전하면 정치개혁도 이루어져 결국 국제사회에서 책임 있는 당사자 역할을 감당할 것이다.” 1967년 리처드 닉슨이 포린 어페어스지에 기고한 글 내용이다.

이후 최근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역대 미 행정부는 일관되게 그 중국포용정책을 취해왔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그 정책은 오류로 드러나고 있다.

경제대국이 됐다. 그 중국은 그런데 오히려 권위주의 체제에서 1인 독재 전체주의체제로 전이됐다. 나치 히틀러 정권 이후 노벨 평화상 수상자를 체포, 투옥한 첫 번째 나라가 중국이다.

민주 인사는 말할 것도 없다. 노조를 도왔다는 이유로 마르크스 레닌주의를 공부하는 학생들도 잡아넣는다. 기독교 등은 중국에 해악을 끼치는 5대 독(毒)으로 간주된다. 인권탄압의 압권은 백만이 넘는 신장성 위구르 회교도들의 집단 수용소 행이다.

자국민에게 극히 폭력적이다. 그 체제는 해외에서도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걸핏하면 주변의 약한 나라들에게 완력을 드러낸다. 그러면서 공공연히 미국에 도전을 해온다. 남중국해에서, 타이완에서, 한반도에서, 그리고 멀리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도.

그 중국에 대해 워싱턴의 인내가 한계점에 이른 타이밍은 2016년 대선 때의 시점이다. 친 중파 중의 친 중파로 분류돼 왔다. 미국의 비즈니스계다. 그 ‘코퍼러트 USA’도 반 중으로 돌아섰다.

“상황이 변해야만 한다.” 2018년 10월4일 펜스 부통령이 허드슨연구소에서 가진 연설에서 한 선언이다. 그 연설내용을 요약하면 중국은 한마디로 ‘무찔러야 할 적’이다. 중국은 자유와 거리가 먼, 미국의 기술이나 도둑질하는 나라로 미국의 민주제도를 해치려 들고 있다는 거다.

그리고 한 달여 후 싱가포르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담에서도 같은 내용의 연설을 했다. 인도태평양지역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공산전체주의 중국을 맹렬히 비난한 것. 펜스의 연설은 다름 아닌 새로운 냉전의 시작을 알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 연설의 내용이 그렇다. 허드슨연구소의 중국전략 센터를 이끌고 있는 마이클 필스버리의 주장을 판 박은 느낌이다. ‘중국에 관한 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인물’이라는 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평가로 필스버리는 ‘백년의 마라톤(The Hundred-Year Marathon)’의 저자다.

도광양회의 중국을 그는 이런 식으로 해석한다. 미국을 무너뜨리기 위해 중국은 오랫동안 속으로 힘을 키우고 공작을 해왔다는 것으로. 그 중국에 결코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G20(20개 주요국가) 정상회의 참석을 바로 앞두고 트럼프는 필스버리를 백악관으로 초치, 그의 의견을 청취했다. 무엇을 말하나.

G20 정상회의에도 불구, 아니 G20 정상회의는 정상회의일 뿐, 신 냉전게임은 이미 시작됐고 오는 2019년은 미국과 중국이 보다 본격적인 힘겨루기에 들어가는 해가 된다는 것이다.

그 뒤에 오는 것은 그러면 뭘까. 보다 확연한 줄 세우기가 아닐까. 미국 편이냐, 중국 편이냐로. 문재인 정부는 어느 편을 선택할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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