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밀 미사일기지 유지해 온 북한의 ‘엄청난 속임수’

2018-11-14 (수) 한국일보-The New York Times 특약
작게 크게

▶ 상업용 인공위성 영상 통해 비밀 기지 16곳 확인

비밀 미사일기지 유지해 온 북한의 ‘엄청난 속임수’

북한의 삭간몰 비밀 탄도 미사일 기지를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 북한은 동창리 미사일 발사 기지를 해체하면서 16곳에 달하는 비밀 미사일 기지를 유지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CSIS/뉴욕타임스 제공]

북한이 비밀 기지 16곳에서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 개발을 계속 추진 중인 것으로 밝혀졌다.

미국 정보 당국은 이같은 사실은 상업용 인공위성 영상을 통해 이미 파악하고 있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핵위협이 제거됐다고 주장하면서 논의 대상에서 제외됐다. 인공위성 영상에 따르면 북한은 그동안 ‘엄청난 속임수’(Great Deception)를 비밀리에 진행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북한은 대외적으로 주요 미사일 발사 기지를 해체를 진행하는 동시에 재래식 탄두는 물론 핵탄두 발사가 가능한 미사일 기지 10여 곳에 대한 개량 작업을 추진했다고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북한이 공개한 적 없는 탄도 미사일 기지의 존재가 드러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표적인 외교 업적으로 주장해온 북한으로부터의 핵위협 제거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실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 선거에서 공화당이 연방 하원 다수당 지위를 뺏긴 직후 가진 기자 회견에서 북한과의 협상에 대해 “우리는 서두르지 않는다. 제재는 유효하다. 미사일과 로켓 발사가 멈췄다. 북한 억류자들은 집으로 돌아왔다”라며 북한과의 협상 진행 상황을 평가했다.

지난 1년여간 북한의 미사일 발사 시험이 없었다는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은 한편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러나 미국 정보 당국은 북한이 그동안 이동 발사대에 장착하거나 산악 지대 비밀 기지에 감출 수 있는 핵물질과 신규 핵무기, 미사일 제조를 진행해왔다고 밝혔다.

북한이 궁극적인 비핵화를 지렛대 삼아 워싱턴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보이고 있는데 이는 러시아 및 중국과의 교류를 재개하기 위한 포석으로 미국의 대북 제재 효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뉴욕 타임스가 약 1년 전 보도한 신형 인공 위성 추적 프로그램 진행이 현재 중단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신형 인공위성 추적 프로그램은 북한이 발사를 위해 이동형 미사일을 산악 지대 터널 기지로부터 운반할 때 발동하는 조기 경보 시스템으로 국방부는 지금쯤 시스템이 가동될 것으로 기대한 바 있다.

북한의 비밀 탄도 미사일 기지는 워싱턴의 대외정책 싱크탱크 ‘국제전략문제연구소’(the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가 주도하는 ‘비욘드 패러렐’(Beyond Parallel)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됐다. 남북통일 전망을 연구하는 ‘비욘드 패러렐’은 저명한 북한 전문가 빅터 차 교수가 주도하는 프로그램이다.

국무부 대변인은 북한의 비밀 미사일 기지가 공개된 것에 대해 “미국 정부는 해당 기지들도 반드시 해체되야 할 것으로 믿는다”라는 서면 반응을 발표했다.

대변인은 또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와 탄도 미사일 프로그램 중단 약속을 이행할 경우 북한 정부와 북한 주민에게 밝은 미래가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중앙정보국’(CIA) 대변인은 북한 비밀 미사일 기지와 관련된 답변을 거부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표적인 외교 업적으로 여겨진 5개월 전 김 위원장과의 정상회담은 이번 발표로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 선거 기간 내내 전 세계에서 가장 악독한 독재자인 김 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라는 표현까지 사용하며 북한과의 관계에 대해 공개적으로 낙관적인 입장을 취했다.


지난 6월12일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싱가포르에서 첫 번째 정상 회담을 가진 뒤 북한은 현재까지 비핵화를 위한 첫 번째 단계도 이행하지 않은 상태다. 비핵화 첫 번째 단계로 북한측은 핵 생산 시설과 미사일 기지 등에 대한 리스트를 미국 측에 제공하는 안이 거론됐다. 북한측 관리들도 폼페이오 장관에게 이른바 ‘타겟 리스트’를 제공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번에 공개된 인공위성 영상 정보에 따르면 미국 측의 기대와 다른 정보가 확인됐다. 차 교수는 “핵 시설들이 동결되지 않고 그동안 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라며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이 핵 시설 한곳을 공개하고 몇몇 다른 시설을 해체하는데 그친 뒤 보상으로 한국 전쟁 종전을 의미하는 ‘평화 협정’을 체결하는 불리한 협상을 받아들일 것에 대한 우려가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번 인공위성 촬영을 검토한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있다는 반응이다. 조셉 S. 버뮤데즈 주니어 북한 인공위성 사진 전문 분석가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 능력을 극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며 “이들 미사일에 핵탄두 장착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버뮤데즈 주니어 전문가는 이어 “북한이 미사일 기지 개발에 쏟아부은 노력이 상당하다”라며 “생존 차원에서 보면 북한 노력은 당연한 것으로 해석된다”라고 설명했다. 폼페이오 장관을 포함한 무기 전문가들은 북한은 현재 비핵화 협상에 임하면서도 핵무기에 연료를 공급하는 핵분열 물질 생산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 중이다. 현재 북한은 약 40~60기에 달하는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공개에 따르면 북한 미사일 기지 중 한 곳인 삭간몰 기지는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비무장지대 북쪽 약 50마일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미군 기지와도 약 80마일 거리밖에 되지 않는다. 10여 장에 달하는 삭간몰 위성 영상에서 기지 검문소, 본부 건물, 막사, 보안 구역, 정비 건물, 그리고 이동 미사일과 운반 트럭을 은폐하는 터널 입구 등이 확인됐다. 삭간몰 기지는 미사일 운반 장비 18개를 수용할 수 있는 터널 7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터널 입구에는 포격 등에 대비한 약 60피트 높이의 보호 장벽과 약 20피트 길이의 출입문 2개가 설치되어 있는 것으로도 확인됐다.

버뮤데즈 주니어 전문가는 “몇몇 예외를 제외하면 북한의 미사일 기지는 대부분 좁은 골짜기 지형의 산악 지대에 위치한다”라며 “미국, 러시아, 중국, 유럽에서 볼 수 있는 미사일 기지와 다른 형태”라고 설명했다.

<한국일보-The New York Times 특약>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