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민주당의 승리

2018-11-13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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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은 미국 주요 정당 중 두번째로 오래된 당이다. 미국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연방정부를 만든 후 얼마 안 돼 탄생한 민주당과는 달리 공화당은 19세기 중반 남북전쟁을 앞두고 노예제 폐지를 외치며 만들어졌다.

그러나 공화당 주류에는 ‘자유 토지당’을 주축으로 하는 노예폐지론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 때 민주당과 함께 미국정치를 주도했으나 노예제 확산 문제로 당이 쪼개지면서 문을 닫은 휘그당파, 그리고 반이민, 반가톨릭을 기본정서로 하는 ‘무지당’(Know Nothing Party) 출신들도 공화당에 가입했다.

가톨릭 등 이민자의 유입으로 개신교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 정체성이 위협받고 있다고 믿는 비밀조직으로 출발한 ‘무지당’은 외부인이 정당의 정책에 대해 물으면 “아무 것도 모른다”라고 답하는 것이 당의 방침이어서 ‘무지당’이란 이름이 붙었다.


북군이 남북전쟁에서 승리하면서 공화당은 거의 70년 동안 미국정치를 지배했으나 대공황으로 권좌에서 내려왔다. ‘뉴 딜’을 내세운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4선에 성공하면서 30년 동안 미국 정치판은 민주당 주도로 바뀌었다.

미국민의 실질적인 생활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정부가 적극 개입해야 한다는 민주당의 기본 정책은 지식인들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었고 지금도 학자, 언론인, 예술가의 대부분은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아무런 정책 대안을 내놓지 못하는 공화당을 원래 별명인 “위대하고 오래된 당’(Grand Old Party) 대신 ‘어리석은 당’(Stupid Party)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공화당의 위상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1980년 취임한 레이건 때부터다. 그는 경제가 살아나기 위해서는 정부가 개입할 것이 아니라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는 시카고학파의 이론을 정책으로 실현해 70년대 스태그플레이션 등 침체에 시달리던 미국경제를 살려냈다.

미국경제는 80년대 이후 지속적인 성장은 해왔지만 소득 불균형은 심화됐다. 세계화와 자동화로 단순노동이 가치를 상실하면서 대학을 나오지 않은 백인남성의 실질소득은 40년 가까이 오르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었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자 이들은 생존에 위협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 결과물이 도널드 트럼프의 등장이다. 자신들의 처지가 고단한 것은 멕시코 밀입국자와 중국인 때문이라는 그의 주장은 “내가 못 사는 것은 내 탓이 아니다”라고 외치고 싶던 그들의 심금을 울렸다.

올 중간선거는 예상대로 공화당은 상원, 민주당은 하원 다수당이 되는 것으로 끝났다. 얼핏 보면 치고받았으니 비긴 것 같다. 트럼프는 선거 후 기자회견에서 이를 “위대한 승리”라고 불렀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35명을 뽑는 연방상원 선거 중 9곳을 제외하고는 공화당 우세 지역에서 치러졌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20여 군데에서 불리한 싸움을 벌인 것이다. 반면 하원에서는 민주당이 30석 이상 이겼다. 거기다 2020년 대선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미시건, 일리노이, 위스컨신, 캔자스 등 중서부 주지사 자리도 7개나 가져갔다.


중간선거에서는 집권당이 지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예외도 있다. 1998년 클린턴 때와 2002년 아들 부시 때는 집권당이 의석수를 늘렸다. 둘 다 경기가 좋았거나 회복세를 보이던 때다. 요즘 미국경기는 실업률이 수십년 래 최저고 경제성장률도 3%가 넘는다. 집권당이 반드시 져야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원을 내준 것은 트럼프의 상식 이하의 돌출 행동과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밖에 없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지지자의 절반 가까이가 그의 성격에는 부정적 평가를 내리고 있다.

단순 의석보다 공화당의 미래를 어둡게 하는 것은 지지자 성향이다. 트럼프 지지자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것은 대학 졸업장이 없거나 나이 많은 백인남성이다. 반면 대학 나온 여성과 소수계, 이민자는 압도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한다. 교육을 제대로 못 받고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그룹의 지지를 받는 당과 교육수준이 높고 다양한 젊은 피가 수혈되는 당 둘 중 어느 쪽 미래가 밝을 것 같은가.

공화당의 뿌리는 노예제 폐지를 외치는 진보주의자와 외국인과 이민자를 배척하는 백인 극우주의자의 결합이다. 공화당이 하루 속히 ‘무지당’의 가지를 쳐내지 않는다면 한때 미국정치를 호령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연방당’이나 ‘휘그당’의 전철을 밟지 말란 보장이 없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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