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앵커 베이비’

2018-11-07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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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으로 ‘앵커 베이비(anchor baby)’란 말이 새삼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앵커 베이비는 원래 무슨 뜻이고, 어떻게 생겨난 용어일까.

미국 수정헌법 14조는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에게 시민권을 주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수정헌법 14조는 남북전쟁 후 성립된 3개의 헌법 수정규정(제13조·제14조·제15조)의 하나로 본래 해방노예와 그 후손의 미국 시민권자로서의 권리를 보장할 목적으로 규정된 것이다.

부모의 신분과 관계없이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은 미국 시민권자라는 사실은 1898년 연방 대법원 판례로 다시 굳어진다.


1882년 체스터 아서 대통령이 서명해 발효된 ‘중국인 배척법’은 중국인의 미국이민은 물론 시민권 부여도 금지하고 있었다. 이런 정황에서 중국인 부모 밑에서 태어난 요리사 웡 킴 아크가 그 법에 도전하고 나서자 연방대법원은 아크의 손을 들어주었던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배경에서 앵커 베이비의 1차적 의미는 미국 내에서 불법으로 체류하는 사람이 낳은 아기로 흔히 통용된다. 수정헌법 14조에 근거해 불법체류자가 낳은 아이도 바로 시민권을 얻어서다.

닻(anchor)이라는 표현이 쓰이게 것은 1975년 공산화된 베트남을 탈출한 ’보트 피플(boat people)‘에서 연유한다. 미국에 도착한 보트 피플들에게서 태어난 아이들이 시민권을 얻게 되면서 난민들의 ’보트‘가 미국에 닻을 내리게 됐다며 비유적으로 표현하게 된 것이다.

이 수정헌법 14조는 자주 오용되는 것도 사실이다. 난민신세도 아니다. 대다수가 부유층 출신이다. 그런 사람들이 단 한 가지 목적으로 미국을 방문한다. 아이를 낳기 위해서다. 이른바 원정출산이다.

이런 사례가 크게 늘면서 앵커 베이비는 의미가 점차 확대돼 지금은 원정출산으로 시민권을 얻는 아이들까지도 지칭한다.

런던에서 태어나는 남자 신생아의 이름 중 가장 많은 이름은 무엇일까. 과거는 제임스였다고 한다. 이제는 아랍계 이름이다. 이미 10여년 전 부터의 일이다. 이와 흡사한 상황이 미국 영토 일부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중국인 임산부들이 원정출산 차 무리를 지어 방문한다. 그 결과 현지 출신보다 중국인 신생아 수가 훨씬 많아졌다. 사이판에서 들려온 소식이다. 한 때는 남가주지역이 메카였다. 단속이 심해지자 무비자 입국이 가능한 사이판 등지로 몰리고 있다는 월스트리트 저널 보도다.


중국인 원정출산에 골머리를 앓기는 캐나다도 마찬가지다. 캐나다의 중국인 원정출산의 허브는 브리티시 콜럼비아 지역으로 중국산모를 겨냥한 산후조리원만 26곳이 넘는 것으로 밝혀지면서 급기야 의회는 원정출산에 제동을 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앵커 베이비 하면 연상되기 쉬운 게 아시아계 이민자녀들인 것이 요즘의 분위기다.

어딘가 떨떠름하고 불안한 느낌이다. 또 다시 재연된 미국사회의 이민논쟁, 그 유탄이 엉뚱하게도 아시아계에게 날아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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