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공화당의 피해망상적 정치학

2018-10-15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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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의 피해망상적 정치학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많은 사람들이 브렛 캐버노의 대법관 임명이 미국에 끼칠 장기적 영향을 우려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는 자신의 개인사와 관련한 선서 진술에서 거짓말을 늘어놓은, 적나라한 당파적 인물이다. 캐버노의 거짓말은 크리스틴 블레이시 포드에게 그가 무슨 짓을 했느냐는 질문과 관계가 있으며, 또 그만큼 중요하기도 하다. 그 질문은 아직 대답을 얻지 못한 상태로 남아 있다. 조사라는 것 자체가 너무도 뻔한 날림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이 대법관이 되면 앞으로 예상 가능한 장래에 교묘한 펜 놀림으로 대법원의 도덕적 권위를 무너뜨릴 것이 뻔하다.


그러나 현재로선 그같은 장기적 우려는 부수적 근심에 불과하다.

보다 직접적인 위협은 청문회 기간과 그 직후 우리가 공화당 쪽에서 목격한 것으로부터 나온다: 그것은 진실에 대한 조롱인 동시에 모든 비난을 서둘러 악마화 하려는 태도다.

특히 공화당의 중견의원들이 캐버노 인준반대에 관한 엉뚱한 음모론을 기다렸다는 듯 수용한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으로부터 불과 몇 주 사이에 미국에서 벌어질 무시무시한 사태에 관한 경고다.

음모론의 전말은 이렇다. 그 시작은 캐버노의 증언이었다. 당시 그는 자신의 문제를 “클린턴 부부를 대신해 복수”를 하려는 사람들이 조작해 퍼뜨린 정치적 음해로 돌렸다.

이건 그야말로 말도 안되는 신경질적인 반박에 불과하고, 이런 주장을 펼친 것 자체만으로도 캐버노는 대법관 부적격 판정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도널드 드럼프는 캐버노 반대 시위를 조지 소로스의 사주 탓으로 돌리고, 그 어떤 증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시위 참여자들이 소로스로부터 돈을 받았다고 선언하는 등 더더욱 터무니없는 주장을 펼쳤다.

사실은 이렇다: 공화당내 주요 인사들은 재빨리 트럼프의 헛소리를 뒷받침하고 나섰다. 블레이시와 캐버노의 증언을 청취한 연방법사위원회 의장인 공화당의 찰스 그래슬리 의원은 시위자들이 실제로 소로스에 의해 고용됐다고 주장했다.

상원 법사위원인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도 “우리는 고용된 시위자들의 위협이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아니, 캐버노의 대법관 인준을 반대하는 시위자들은 누군가로부터 일당을 받고 동원된 군중이 아니며 소로스의 돈을 받은 무리는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번듯한 공화당원으로 대접받으려면 그들이 동원된 군중임을 믿는 척 해야 한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어찌 보면 전혀 새로울 게 없다. 음모론은 처음부터 미국 정치의 한 부분이었다.

미국의 반지성주의 작가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1964년에 발표한 그의 유명한 에세이 “편집광적 스타일의 미국 정치학”(The Paranoid Style in American Politics)에서 1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예를 찾아냈다.

그의 지적에 따르면 민권운동에 저항한 인종격리주의자들은 언제나 외부의 “선동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북부지역의 유대인들이 흑인들의 시위를 부추긴다는 상투적인 비난을 퍼부었다.

음모론의 중요성은 누가 그것을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좌절한 정치권의 주변부 인사들이 종종 그러하듯 음흉한 유대인 금융업자들이 주축을 이루는 그림자 세력에 비난의 화살을 날릴 경우, 우리는 이를 단순한 망상으로 치부한다.

하지만 권력의 통제권을 장악한 자들이 같은 일을 벌인다면 그들의 상상은 망상이 아니라 반대파의 정당성을 박탈하고, 그들의 행동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처벌하는 변명거리를 만들어 내는 수단이 된다.

바로 이것이 무솔리니가 통치하던 이탈리아로부터 에르도안이 통치하는 터키에 이르기까지 숫한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기 한복판에 음모론이 버티고 있는 이유다.

헝가리와 폴랜드 등 얼마 전까지 민주주의를 신봉하던 국가들이 실질적인 일당 국가로 돌아선 이유이자, 아웃사이더 전체와, 그중에서도 특히 소로스를 그들의 지배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즐겨 매도하는 이유다. 물론 이런 체제하에서는 그들의 행동과 정책에 대한 합법적인 불만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 행정, 입법, 사법 등 연방 정부의 3부에 대한 통제권 장악한 공화당 내부의 주요 인사들은 헝가리와 폴란드의 백인 민족주의자들처럼 말하고 있다. 이게 무슨 뜻인가?

공화당은 준비된 독재정권이라는 게 그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이다.

트럼프 본인도 그가 그토록 공공연히 칭찬하는 해외 독재자들과 동일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 그는 공무원들이 미국민이 아닌 자신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한다. 마지막 대선이 끝난 지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는 “힐러리를 교도소에 가둬야 한다”는 주문을 외우는 등 자신의 정적들에게 보복을 가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고 있다.

게다가 트럼프는 언론매체를 공공의 적으로 싸잡아 비난하고 공격한다.

세금 사기에서 공인의 자기내부거래, 러시아와의 내통 의혹에 이르는 트럼프의 숫한 스캔들은 언론자유 탄압과 법집행의 독립성을 막아야 할 인센티브로 작용한다.

이런 상황에서 기회만 주어진다면 트럼프가 완전한 독재정치를 펼치려 들 것이라는 사실에 의심의 여지가 있을까?

그리고 누가 그를 제지할까? 소로스로부터 돈을 받고 캐버노 인준반대 시위를 벌였다며 음모론을 뇌까리는 상원의원들? 캐버노의 합류로 우경화한 대법원?

우리가 지난 몇 주 동안 배운 사실은 트럼프와 그의 정당 사이에 한 치의 간격조차 없다는 것이다. 미국의 가치라는 이름으로 그를 막아설 사람이 공화당 내에 단 한명도 없다는 뜻이다.

앞서 말했듯 공화당은 아직 실천단계에 들어서지는 않았지만 이미 준비된 독재집단이다. 공화당은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다가오는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의 다수당 지위를 그대로 유지할 경우 과연 그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생각해 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가까운 장래에 벌어질지 모를 일이 두렵지 않다면, 당신은 분명 무신경한 사람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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