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러날 때를 아는 게 중요”, 명확한 사임 이유 안 밝혀
▶ 트럼프와도 끈끈했던 실세, 폼페이오·볼턴이 안보 주도
물러나는 니키 헤일리 미국 유엔대사가 9일 백악관 오벌 오피스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사임 의사를 밝히고 있다. [AP]
도널드 트럼프 정부 초기 외교안보라인의 핵심 실세로 활동하며 ‘떠오르는 별’로 불렸던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대사가 지난 9일 돌연 사임 의사를 밝혔다. 헤일리 대사는 “개인적 이유는 없다. 사람은 물러날 때가 언제인지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을 뿐 명확한 사임 이유를 밝히지 않아 온갖 추측이 나오고 있다.
폼페이오·볼턴에 밀려
가장 먼저 제기되는 사임 배경은 트럼프 정부 내부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났다는 관측이다. CNN방송은 백악관 움직임에 정통한 제보 두 건을 인용해 헤일리 대사가 최근 몇 달간 트럼프 대통령과 독대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힘이 강해지면서 헤일리 대사의 백악관 영향력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것이다.
대선 후보 시절 트럼프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한 ‘공화당 주류’인사였던 헤일리 대사는 유엔대사 임명 이후에는 트럼프 대통령과 끈끈한 관계를 만들었다. 렉스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과 허버트 맥매스터 당시 국가안보보좌관이 각종 외교안보 사안을 두고 트럼프 대통령과 충돌을 빚으며 대통령 눈 밖에 나는 동안 헤일리 대사가 대북 압박 정책이나 이란 핵 합의 탈퇴 등을 주도하며 외교 안보라인의 얼굴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올해 초 폼페이오 중앙정보국 국장이 국무장관으로 옮기고, 초강경파인 볼턴이 국가안보보좌관 자리에 앉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대북 문제는 폼페이오 장관이, 이란 문제는 볼턴 보좌관이 주도하면서 헤일리 대사의 위상은 현저히 떨어졌다.
갈등 없이 트럼프 색 지우기
헤일리 대사는 트럼프 정부에서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퇴장’을 한 인물이 됐다. 그간 백악관이나 내각을 떠난 인사들은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책상 이견이 표출되거나 스캔들 등에 연루돼 갑작스럽게 떠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헤일리 대사를 백악관으로 불러 “언젠가 행정부로 돌아오기 바란다” “후임은 직접 정해라”등 덕담을 쏟아냈다.
이를 두고 차기 대권 욕심이 있는 헤일리 대사가 지능적으로 사퇴 시점을 선택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에서 대략 2년 일하면서 트럼프 대통령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완전히 ‘트럼프파 인사’로 남아서는 대권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당장 헤일리 대사가 “2020년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며 부정했지만 이것이 2024년 대선 출마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CNN방송의 정치 전문 에디터 크리스 실리자도 “헤일리 대사가 대권 욕심이 있다”고 단정했다. 하지만 동시에 트럼프 대통령과 2020년에 맞설 일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공화당 지지자 사이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인기는 절대적이어서 공화당 내 경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직접 맞서 이기기는 어렵다. 2017년 11월 헤일리 대사를 집중 분석한 잡지 뉴욕매거진도 “헤일리는 유엔대사로서 트럼프와 정면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신중하게 움직이고 있지만, 성차별 문제나 극우주의·인도주의 관련 의제에는 트럼프와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의 감시망에서 멀리 떨어진 뉴욕에서 조심스레 자신의 야망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소 이른 그의 사임과 연결해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갈등을 빚지 않은 상태에서 대권 후보로서 자신만의 색을 마련하기 위해 광야로 향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어차피 2년간 유엔대사의 역할을 충분히 입증했고 내부 권력 투쟁에서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그의 말대로 물러날 때를 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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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