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격렬했던 캐버노 대법관 인준 싸움

2018-10-10 (수) 박옥춘 조지메이슨 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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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렬했던 캐버노 대법관 인준 싸움

박옥춘 조지메이슨 대학 겸임교수

10월6일 브렛 캐버노(Brett Kavanaugh)가 상원의 인준투표를 거쳐 114번째 연방대법관이 되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7월 말 퇴직한 앤서니 케네디(Anthony Kennedy) 대법관 후임으로 캐버노를 지명한 후 지난 3개월 동안 의회 안밖에서 그의 자질에 대한 열띤 논쟁이 계속되었다.

상원법사위 청문회에서는 공화 민주 양당이 인준 승인과 부결을 위한 설전을 벌였다. 청문회 막바지에 캐버노가 고등학생 때 술에 취해 한 여학생에게 성폭력을 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왔다. 예일대 신입생 때에도 성문란 행위를 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고등학교 때 캐버노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는 여자가 상원청문회에 나와 증언을 했다. 캐버노는 누구에게도 성폭력을 한 적이 없다고 강력하게 결백을 주장했다.

민주 진보단체들은 사실로 확인도 안 된 이 의혹들을 캐버노의 인준 저지를 위한 무기로 삼고 그에 대한 비난과 공세를 퍼부었다. 캐버노의 인준을 둘러싸고 공화보수와 민주진보 세력들 간에 벌어진 격렬한 싸움은 마치 한편의 드라마와 같이 전개되었다. 결국 캐버노의 인준은 찬성 50 반대 48로 승인되었다. 대법관 인준 역사상 가장 근소한 차이이다.


캐버노의 대법관 인준을 두고 벌인 공화 민주 그리고 보수 진보 세력들 간의 싸움은 그의 자질 문제 때문이 아니었다. 미국 변호사협회도 캐버노는 대법관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자질을 갖추었다고 평가했다. 그가 36년전 17세 때 저질렀다는 성폭력에 대한 의혹 때문도 아니었다. 연방대법관은 시민들의 기본 권리와 자유 그리고 입법과 정책수립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케이스들을 최종판결하는 막대한 권한을 갖기 때문이다.

미국사회는 크게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있다. 정치도 보수 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공화당과 진보세력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당의 양당제도이다. 보수와 진보의 다른 이념과 가치관을 입법 및 정책결정 과정에 반영시키기 위한 사회단체들과 싱크탱크들의 역할도 활발하다.

보수와 진보는 낙태, 동성애, 인종차별, 총기소유, 종교 및 표현의 자유, 소수민족 보호, 이민정책, 선거구 재조정, 대통령의 권력한계 등 기본적 인권과 자유 그리고 선거 및 권력통치에 이르기까지 여러 분야에서 상치되는 견해와 가치를 추구한다. 그런 상치되는 견해와 가치 추구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에 대법원은 최종 판결을 내린다. 따라서 보수 진보세력들은 각기 자기들과 비슷한 이념과 가치관을 가진 인물을 대법관 자리에 앉히기 위해 치열한 노력을 한다. 대통령 선거 당시 트럼프는 자신이 당선되면 보수성향의 대법관을 임명하겠다고 공약을 했다. 종교 세력을 비롯한 보수경향의 단체들과 유권자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퇴직한 케네디 대법관은 공화당 레이건 대통령의 지명으로 대법관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동성애자의 권리, 낙태, 사형, 소수민족 보호 등에 관한 판결에서 진보 쪽의 의견에 가세하였다. 그러나 캐버노의 12년간 항소법원 판사로서의 판결 기록과 법률지에 기고한 글들은 그가 온건 보수 성향의 케네디 대법관과는 달리 정통 보수 성향의 대법관이 될 것을 예견해준다. 그동안 케이스에 따라 보수성향의 판결과 진보성향의 판결을 내리기도 했던 케네디 대법관을 제외하면 대법원은 보수 진보 성향의 대법관이 4대 4로 양분되어 있었다.

그러나 캐버노 대법관의 취임으로 대법원은 보수 5 진보 4로 확실히 보수지향적이 된 것이다. 여기에 대법관을 포함한 모든 연방법원 판사들은 재판과정에서 법이 보장하는 절대권력을 독립적으로 행사한다. 의회의 탄핵절차가 없는 한 누구도 해임할 수 없는 종신직이다. 현 보수성향 대법관들의 나이를 보면 앞으로 적어도 20년 동안은 연방대법원이 보수지향적인 판결들을 내릴 것 같다. 민주당과 진보세력이 왜 정통 보수성향의 캐버노 대법관 인준 저지를 위해 총력을 다해 싸웠는지 이해가 간다.

<박옥춘 조지메이슨 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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