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관세를 다시 망가뜨리기

2018-10-01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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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를 다시 망가뜨리기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평시라면 2,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산 물품에 관세를 부과한다는 도널드 트럼프의 발표는 중국과의 전면적 무역 전쟁이 임박했다는 우려와 함께 한동안 헤드라인을 장식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그렇지 못하다보니 그의 중대 발표는 현재 진행 중인 온갖 스캔들의 소음에 가려진 채 신문지면에서조차 눈에 잘 뜨이지 않는 구석 자리로 밀려났다.

트럼프 관세는 분명 중요하고도 불량한 조치다. 이로 인한 직접적인 경제적 충격이 결코 하찮다고 할 수야 없겠지만 그리 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숫자만이 전부가 아니다.

트럼프식 무역정책은 80여 년 전 미국이 직접 만든 규칙들을 스스로 헐어버렸다. 관세는 특수이익단체의 힘이 아니라 국가적 우선순위를 반영해야 한다는 것이 당시 미국이 관련 규칙을 제정한 의도였다. 재차 말하건대 트럼프는 관세를 다시 변질시키고 있다. 그리고 그로 인한 데미지는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1930년대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무역정책은 비열하고, 기능불능 상태였다.

전반적으로 관세가 높다는 것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누가 얼마나 관세 보호를 받는지는 전적으로 특별이익단체들 사이의 교섭을 통해 결정됐다. 이 같은 무한경쟁의 비용은 경제학의 범주를 넘어선다: 그들은 미국의 영향력을 갉아먹고 세계 전체에 해를 끼친다.

눈에 가장 잘 띄는 예가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수년간 미국은 유럽 국가들에게 전쟁부채 청산을 요구했는데 이는 그들이 수출을 통해 달러를 벌여 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와 동시에 미국은 유럽 국가들이 필요로 하는 수출을 차단하기 위해 고율의 관세를 부과했다.

그러나 1934년 FDR이 호혜통상협정법을 도입하면서 게임의 룰이 바뀌었다. 이때부터 관세가 해외 정부들 사이의 거래를 통해 결정됐고, 수출산업체들에게 는 공개시장의 지분을 주었다.

이 같은 거래는 의회의 찬반 투표를 거쳐야했기에 돈을 주고 특별대우를 사들이는 이익단체들의 능력을 축소시켰다. 미국의 이 같은 혁신은 글로벌 무역시스템의 본보기가 됐고, 세계무역기구(WTO)를 탄생시키면서 정점을 찍었다.


그리고 악명 높을 정도로 타락했던 관세정책은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

무역시스템의 창조자들은 이런 시스템이 정치적으로 제 기능을 유지하기 위해선 약간의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에 따라 각국 정부에게는 제한적인 특정 상황 아래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 갑작스런 수입 증가에 대응할 시간을 주고, 불공정한 외국의 관행에 대응하거나 국가안보를 보호하기 위해 해당국 정부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미국의 경우 이 같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은 되도록 발동을 자제하며 분별력 있게 사용해야 한다는 조건과 함께 행정부에게 주어졌다.

이 시점에 트럼프가 등장했다. 이제까지 트럼프는 미국으로 수입되는 3,000억 달러어치 상당의 물품에 대해 25%에 달하는 관세를 부과했다.

이것이 외국인들에게만 적용되는 세금이라는 트럼프 행정부와 정부 고위 관리들의 거듭된 주장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세금인상이었다.

게다가 대부분의 관세가 원자재와 비즈니스에 투입되는 자재들에 부과되기 때문에 보복관세 정책은 거의 틀림없이 투자와 혁신 의욕의 상실을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순수한 경제적 충격은 전체 스토리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 나머지 부분은 프로세스의 왜곡이다. 대통령이 언제 관세를 부과할 있는지에 관한 정해진 규칙이 있다; 트럼프는 규칙을 문자 그대로 지켰는지 몰라도 그 정신을 조롱했다.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캐나다로부터의 수입을 차단한다? 현실적으로 말이 되는가?

중국의 불공정한 무역관행에 대한 대응으로 중국에 보복 관세를 부과한다는 발표조차도 기본적으로는 짜고 치기다.

중국은 국제경제에서 종종 나쁜 배역을 맡곤 한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보복관세는 구체적인 정책에 대한 대응이어야 하며 표적이 된 정부에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킬 확실한 방법을 제공해야 한다.

반면 트럼프가 한 일은 애매한 불만감에 근거해 끝 모를 공세를 펼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다른 많은 일들처럼 관세에 관해서도 트럼프는 법치를 폐하고 이를 개인적 변덕으로 대체했다. 그리고 이것은 몇 가지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첫째로 트럼프의 행동은 구태의연한 부패에 문을 열어젖힌다. 이미 말했듯 대부분의 관세는 비즈니스에 투입될 자재에 매겨지고, 일부 기업들은 특별대우를 받게 된다.

현재 수입 철강에 상당한 괸세가 부과되지만 제재를 받은 러시아 기업의 미국 자회사를 비롯한 일부 철강 사용자들은 관세가 면제된 철강의 수입권을 인정받았다.(러시아 자회사에 대한 면제는 이 같은 사실이 공개된 후 번복됐고, 정부 관리들은 “사무적인 착오”였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이런 예외의 기준은 무엇인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정치적 정실이 판을 친다고 믿을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두 번째로 미국은 협상의 신뢰성을 상실했다. 과거 미국과 무역협정을 체결하는 국가들은 “거래는 거래”라고 확신했다. 지금 그들은 미국시장에 대한 접근을 보장해주는 문서를 쥐고 있다 해도 대통령이 이런저런 빌미를 대가며 마음대로 수출을 차단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간단히 말해 트럼프 관세가 아직은 대수가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이로 인해 미국의 무역정책은 정치적 정실주의에 의해 좌우되며 미국은 그때그때 자신의 편리에 따라 멋대로 약속을 어기는 믿을 수 없는 파트너라는 오명을 뒤집어 쓰게 됐다.

어쨌건 나는 그것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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