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생은 자신이 개척하기 나름” 역사상 첫 워싱턴 여성방위사령관 역임 샤론 던바 예비역 소장

2018-09-24 (월) 글 하은선·사진 박상혁 기자
작게 크게

▶ [인터뷰] 부모님 권유로 공사 진학, 32년 군생활 후 소장 예편

▶ 비즈니스 분야 꿈 이루려 방위산업체 부사장 취임
“한인 정체성에 늘 자부심” 커뮤니티 봉사도 큰 관심, 경쟁심 강해 늘 치열한 삶

“인생은 자신이 개척하기 나름” 역사상 첫 워싱턴 여성방위사령관 역임 샤론 던바 예비역 소장

지난 22일 LA노숙자 돕기 출판기념회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한 샤론 던바 공군 예비역 소장은 투지와 결단력으로 인생을 스스로 개척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공군 역사상 처음으로 국가 수도 여성 방위사령관을 역임한 샤론 K.G. 던바 공군 예비역 소장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떠올리게 했다. 제복을 벗어서일까. 여성스러움이 더욱 강하게 묻어났고 그의 위트 있는 말투는 긍정의 힘이 무엇인지 깨닫게 했다. 어린 시절부터 던바 예비역 소장은 어머니에게 줄곧 ‘하늘은 한계가 없다’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아이러니하게 하늘을 지키는 공군이 되었다. 오빠의 웨스트 포인트 입학식에서 제복을 입은 여생도들을 눈여겨본 부모님의 권유로 그녀는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했다. 졸업하면서 “5년 의무 복무만 해야지” 했는데 어쩌다보니 30여년이 흘렀고 우연히 장군이 되어 있더라는 그녀의 이야기는 인생의 본질을 꿰뚫는 지혜를 담고 있었다. 가족과 삶에 대한 따뜻한 시각, 긍정적인 마인드가 자신의 경쟁력이라는 샤론 던바 예비역 소장을 지난 22일 인터뷰했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LA한인들과는 처음 만난다

▲늘 마음은 있었는데 선뜻 나서지 못했다.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은 한인이라는 정체성과 문화 유산에 긍지가 대단하다. 한인들이 지역사회, 더 나아가 세계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에 자부심을 느낀다.


-공군 소장으로 예편해 ‘제너럴 다이내믹스’ 부사장으로 합류했는데

▲포춘 500대 기업에서 법무부와 국토안보부 및 공공안전 커뮤니티를 지원하는 비즈니스의 스타트-업 라인을 이끌고 있다. 공군, 국방부와 마찬가지로 급속도로 변화하는 환경이다. 그러나 좋아하는 일을 재능 있는 팀원들과 함께 하는 기회를 갖게 되어 영광스럽다.

32년간(1982-2014)의 공군 생활을 끝내자마자 ‘제너럴 다이내믹스’에 합류했다. 공군이라는 커리어를 철저히 즐기며 살았지만 늘 비즈니스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는 열망이 있었다. 타이밍이 잘 맞아서 커리어를 원하는 분야로 바꿀 수 있었다.

-인생 항로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나는 인생에서 특별한 길을 선택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삶의 중심축이 된 시점은 계획했던 기회보다는 잡을 수 있는 기회였다. 어머니(리사 장)는 주위 모두에게 감명과 영향을 주는 롤 모델이었고 아버지 역시 진보적인 사고를 지녔기에 ‘여성성’(gender)은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이슈가 아니었다.
어린시절부터 부모님은 내가 원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존중 받을 수 있다면 얼마든지 해도 좋다고 가르치셨다.

-미공군 역사상 최초로 국가수도 워싱턴 여성 방위사령관을 역임했다.

▲어릴 적 어머니는 내게 ‘창공(Sky)에는 한계가 없다’고 말하곤 했다. 공군사관학교를 다녔던 것도 다소 아이너리하다. 사실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하면서 군에 계속 머물 계획은 아니었다.


5년의 의무복무만 끝내자고 결심했는데 새로운 임무가 주어질 때마다 배우고 스스로 성장하면서 예상보다 27년이 길어져 궁극적으로 30년이 넘는 군대 생활을 했다.

지금도 농담으로 ‘우연히 된 장군’(Accidental General)이라고 말하는데 장군까지 진급할 계획은 전혀 없었다. 부모님과 남편, 아들딸, 친구와 동료들이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준 덕분이다. 하늘은 정말 한계가 없음을 스스로 증명할 수 있어 정말 뿌듯하다. 워싱턴 지역 공군을 지휘하는 특권을 누린 것은 분명히 32년 공군 경력의 하이라이트이다.

-어린 시절 이야기를 해달라

▲우리 부모는 두분 모두 애국심이 강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자긍심이 크다. 오빠와 나는 시카고에서 태어나 일리노이주 중부에서 자랐다. 아시안이 별로 없는 민족 다양성과는 거리가 먼 동네였다.

어머니는 숙명여대를 졸업한 1947년 존 하지 미육군사령관의 후원을 받아 시카고 대학원으로 유학을 왔고 아버지를 만나 결혼을 했다. 사촌인 체스터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체스터와는 어머니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처음 만났고 그 이후 내게 영원한 롤 모델이다.

당시 난 10대였는데 체스터는 대한항공 파일럿이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는 바쁜 와중에도 조카, 아들, 손자할 것 없이 가족에 대한 헌신이 대단했다. 우리는 국방대학교 동문인데 체스터는 국방대학교 재단 이사로 수년간 재직했다. 체스터는 사회 환원을 중시하는 사람이고 박애주의자로 늘 자신이 받은 사랑은 남에게 베풀고 싶어한다.

-미공군사관학교(U.S. Air Force Academy)가 1980년 졸업생부터 처음으로 여생도의 입학을 허가했으니 던바 소장은 공군 여생도 3기 졸업생이다. 공군사관학교를 선택한 동기는

▲한국에서 공군참모총장을 지낸삼촌(고 장성환씨), 하지 사령관, 그리고 1950년대 군 생활을 하신 아버지의 영향이 크다. 부모님은 오빠가 웨스트포인트에 들어가길 원했다. 오빠는 당연히 웨스트포인트에 진학했고 졸업을 했다. 그 당시 나는 사관학교에 가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님은 강력하게 권고했고 그나마 하늘을 나는 것에 관심이 있었기에 공군사관학교에 입학해고 지금의 내가 존재하게 되었다.

-한인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내 어머니가 해준 ‘하늘은 한계가 없다’는 말을 후배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목표는 높게, 꿈은 크게, 일은 열심히, 달성할 수 있는 목표는 모두 이루어내고 스스로의 능력을 절대 의심하지 말라는 의미다. 나는 경쟁심이 강한 편이어서 늘 치열하게 살아간다.
공군사관학교는 내게 최고의 경쟁자는 자기자신임을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인생에서 그 어떠한 장애물도 투지와 결단력만 있으면 얼마든지 이겨낼 수 있음을 깨달게 되었다. ‘인생은 자신이 개척하기 나름이다’(Life is what you make it)는 문구의 팬이다. 이를 모토로 삼아 스스로를 믿고 정진하길 바란다.

샤론 던바 공군 예비역 소장은

1982년 엔지니어링과 경영학 전공으로 공군사관학교를 졸업했다. 내셔널 워 칼리지 국가안보학 석사, 칼스테이트 롱비치 경영학 석사학위, 조지 워싱턴 대학 공공정책 박사학위를 받았고 국방대학 국방 고급 프로그램 관리자 코스와 레벨 3 인증 취득 전문가 과정을 마쳤으며 하버드대학과 MIT 고위간부프로그램을 수료했다.

2008년 준장으로 처음 별을 달았고 320항공원정비행단장에 임명됐다. 2014년 소장 진급과 더불어 국가 수도인 워싱턴 여성방위사령관에 올라 전 세계에서 배치받은 6만명의 군인과 민간 요원을 총감독하는 수도 방위사령관으로 워싱턴 지역의 국토 안보와 국가특별보안행사, 민간 지원활동을 담당했다. 미공군 320항공원정비행단 사령관을 겸한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미공군 역사상 첫 워싱턴 여성방위사령관이었다.

그 해 군생활 32년을 끝으로 소장으로 예편해 미국을 대표하는 방위산업체 중 하나인 ‘제너럴 다이내믹스’ 부사장으로 취임했다. 커뮤니티 봉사활동에도 관심이 많아 걸스타웃 내셔널 캐피털 이사이자 미군 YMCA 이사, 유니언 인스티튜트 앤 유니버시트 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글 하은선·사진 박상혁 기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