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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선징악 틀 벗고 ‘애니메이션의 변신’ 이끌다…로버트 아이거 월트 디즈니 CEO

2018-09-24 (월)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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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임 CEO 마이클 아이스너 3D기법 ‘다이노소오’ 흥행 참패, 2000년대 들어 무너질 위기 맞아

▶ 2005년 구원투수로 등장 활약 픽사·마블 등 잇단 인수 통해 디지털 기술 입히며 창의성 높여

로버트 아이거 월트 디즈니 CEO

글로벌 미디어ㆍ엔터테인먼트 그룹 월트디즈니가 지난 6월 713억달러를 들여 21세기폭스를 인수했다. 세계 1위 영화 스튜디오이자 미디어 기업인 디즈니가 세계 3위 영화사인 21세기폭스를 흡수하면서 ‘미디어 공룡’은 더 거대해졌다. 디즈니는 그간 애니메이션과 영화 등 콘텐츠에 투자를 주력해왔다. 그런데 글로벌 미디어업계에서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인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커지자 디즈니도 본격적으로 플랫폼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21세기폭스 인수는 이 회사가 세계 3위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업체인 훌라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이번 인수로 훌라를 통해 넷플릭스를 견제할 계획이다. 월스트릿 저널(WSJ)은 “이번 합병으로 디즈니는 넷플릭스와 아마존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과 제대로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질 것”이라며 “글로벌 미디어 시장에 대대적인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 디즈니의 위기

2000년대에 들어서며 디즈니는 매출이 급감하며 사상누각처럼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디즈니가 1937년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선보인 이후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지배해온 배경엔 2차원 ‘셀 애니메이션’의 성공이 있다. 셀 애니메이션은 배경은 그대로 두고 캐릭터만 움직이게 하는 기법이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당시 CEO였던 마이클 아이스너는 “앞으로 모든 애니메이션은 컴퓨터 그래픽(CG)을 활용한 3차원(3D) 기법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후 디즈니가 제작한 3D 애니메이션 ‘다이노소오’는 흥행에 참패했고, 수십 년 동안 디즈니에서 셀 애니메이션을 만들던 디자이너, 제작자들이 회사를 떠나면서 디즈니의 콘텐츠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됐다.

WSJ는 “디즈니는 ‘창의성이 열쇠다’라는 모토 아래 애니메이션 제국을 이룰 수 있었다”며 “아이스너 회장은 디즈니에서 창의적 조직문화를 구축하려고 노력한 건 사실이지만 이 과정에서 독선적 경영 스타일을 고집해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렸다”고 전했다.

지난 1994년 당시 아이스너 회장은 애니메이션 감독인 제프리 카젠버그를 불화 끝에 회사에서 쫓아냈는데, 그가 드림웍스로 자리를 옮긴 뒤 ‘슈렉’을 만들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면서 아이스너 리더십의 문제점이 드러난 사례로 자주 거론된다.

디즈니의 인기가 시들해진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소비자들의 변화를 디즈니가 따라가지 못했다는 점이다. 2000년대까지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라이온킹’ 등 디즈니 작품들의 대다수는 선과 악의 대결을 소재로 했고, 또한 늘 주인공은 백인이었으며 언제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사회적 소외와 빈부격차, 인종갈등 등의 문제에 눈을 떴고 애니메이션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환상이 아닌 ‘어른들의 동화’를 보길 원했다.

아이거가 2009년 내놓은 애니메이션 ‘업’이 미국에서 개봉 한 달 만에 약 3,000억원을 벌어들이며 흥행할 수 있었던 건 이런 소비자들의 변화를 읽어냈기 때문이다. 업은 78세의 은퇴한 노인이 아내와 사별한 후 겪는 모험을 담았다. 업은 애니메이션 영화론 이례적으로 칸 영화제 개막작에 오르기도 했다.

월트 디즈니가 제작해 빅히트를 친‘겨울왕국’ 홍보 포스터

■ 디즈니 구원에 나선 아이거

아이거는 디즈니가 경영난에 빠져있던 2005년에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당시 디즈니 창업주 가족 및 주주들은 아이거를 CEO에 앉히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다. 아이거는 아이스너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온 인물이기 때문이다.


디즈니 창업주 월트 디즈니의 조카 로이 디즈니는 “아이거는 아이스너의 대리인에 불과하다”며 “아이스너가 아이거를 CEO로 지지하는 건 그가 퇴진 이후에도 디즈니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하기도 했다. 미국 abc 방송 회장직을 맡고 있던 아이거는 1995년 abc방송이 디즈니에 인수되자, 2000년부터는 디즈니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고 있었다. 이 때문에 아이거가 디즈니 CEO로 임명됐을 때 미국 언론들은 “아이스너의 승리”라고 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이거는 CEO 취임 이후 디즈니에서 아이스너 ‘색깔 지우기’에 나서며 변화를 주도했다. 아이거는 가장 먼저 아이스너가 큰 힘을 실어줬던 ‘전략기획팀’을 전격 해체했다. 디즈니 직원들은 아이스너가 전략기획팀을 통해 콘텐츠 기획부터 제작까지 일일이 개입한다며 불만이 컸다. 직원들의 창의성을 가로막는 ‘전략파괴팀’이라는 오명도 붙였다.

특히 아이거 회장은 2006년 1월 당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운영하던 애니메이션 회사인 픽사를 74억 달러를 들여 전격 인수했다. 픽사는 ‘토이스토리’ ‘몬스터’ ‘인크레더블’ 등을 만들며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받는 업체다. 애니메이션 중심이던 디즈니에 디지털 기술을 추가, 창의성이 시들해진 디즈니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으려는 조치였다.

아이거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2009년엔 수많은 영웅 캐릭터와 스토리를 지닌 마블 엔터테인먼트를 40억 달러에 인수했다. 권선징악을 주제로 해피엔딩으로 흐르는 진부한 디즈니 콘텐츠를 소비자들의 요구에 맞게 서둘러 변화시켜야 했다. 배트맨, 헐크 등 마블 엔터테인먼트가 보유한 캐릭터들은 대부분 사회부적응자이거나 구제불능 등 사회적 아웃사이더들이다. 지나치게 명랑한 디즈니 캐릭터와는 상반돼, 디즈니와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협업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캐릭터 및 콘텐츠를 생산하는 게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 디즈니 제국

디즈니의 사업 영역은 엄청나다. 영화, TV, 홈비디오 제작ㆍ유통, 테마파크, 출판, 음악 등 거의 모든 콘텐츠 분야를 망라한다. 디즈니는 기술 발달 등 미디어 환경이 바뀔 때마다 항상 트렌드를 놓치지 않고 선두에서 새로운 걸 시도해왔다. 일각에서 “선진국 10억명 인구가 디즈니 속에서 태어나 디즈니를 보다가 죽는다’라는 말을 하는 이유다.

디즈니 혁신의 역사엔 여러 인물이 등장하지만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은 창업주인 월트 디즈니다. 디즈니는 1928년에 애니메이션 ‘증기선 윌리’를 선보이며 지금까지도 디즈니의 간판 캐릭터인 미키 마우스를 탄생시켰고, 1940년엔 애니메이션과 음악을 결합한 ‘판타지아’를 내놓아 돌풍을 일으켰다.

디즈니의 도전이 가장 빛을 발한 때는 2차 세계대전 전후이다. 디즈니는 전운이 짙어지던 1937년 당시 엄청난 금액이었던 149만9,000달러를 투자,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를 만들었다. 사회 분위기가 암울할수록 대중들을 웃게 만들 수 있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예상은 적중해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면서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는 지금도 리메이크되고 있다.

1950년대엔 기존의 놀이공원과는 완전히 차별화된 테마파크인 ‘디즈니랜드’로 사업을 넓히며 미국의 오락문화를 바꿔 놓았다. 놀이기구나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공원에 디즈니 캐릭터를 덧붙여 만화 속에 들어온 듯한 테마파크로 탈바꿈한 것이다.

디즈니는 지금도 픽사, 마블 등이 보유한 캐릭터를 디즈니랜드에 활용해, 입장권 및 각종 캐릭터 상품 판매로 매년 수십억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NYT는 “월트 디즈니는 미키마우스와 도널드 등 숱한 캐릭터를 탄생시켰고 피노키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700여편의 작품을 남겼다”며 “월트 디즈니는 1966년에 사망했지만 그가 남긴 자산들은 여전히 디즈니를 떠받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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