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유니버설 라이프 생명보험 가입자들 허탈…매년 뛰는 보험료 ‘밑 빠진 독에 물붓기’

2018-09-24 (월)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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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금리시대 만들어진 저축성 생명보험 인기 상품

▶ 금리 떨어지자 불입금이 사실상 보험금과 맞먹어

1980년대와 1990년대 미국인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유니버설 라이프’ 생명보험이 요즘은 많은 시니어들을 울리고 있다고 월스트릿 저널이 보도했다. 유니버설 라이프는 가입자가 낸 보험료 일부를 생명보험 월 보험료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투자해 수익을 얻는 생명보험이다. 투자해서 얻은 수입은 나이가 들면서 매년 올라가는 생명보험 보험료를 보조해주므로 가입자는 나이가 들어도 처음과 똑같은 보험료를 유지하도록 디자인된 보험 상품이다.

유니버설 라이프 보험이 나올 때 만 해도 미국의 이자율은 거의 10%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으로 높아 보험회사들이 가입자가 낸 보험료를 저축 구좌에만 넣어 두고 있어도 상당한 수익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10여년 이상 금리시대를 유지하고 있어 저축 구좌의 수익률이 매우 낮은 것이 문제다. 특히 수명이 길어지면서 오래 사는 가입자들은 매년 인상되는 생명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인들은 매년 수천달러의 보험료를 내는 것이 보통이다. 사망지불금이 백만달러 이상인 시니어들은 연간 수만달러의 보험료를 낸다. 결국 수십년간 돈을 내며 유지하던 보험을 포기하는 은퇴자들도 많다. 일부 생명 보험료를 제하고 남은 돈을 투자해 얻는 수익이 나이가 들어 올라가는 생명 보험료를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하는 버니스 색(94)는 “모든 것이 배수로로 빠져나갈까봐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그녀는 35년전 보험에 가입할 때만해도 월 보험료가 56달러였다. 하지만 지금은 285달러로 올랐다. 그것도 보험을 유지하려고 사망보험금도 낮췄기 때문이다.


■90% 이상 문제 발생

미국 변호사협회 생명보험 서적을 공동 저술한 존 레스닉은 지난 10년간 수백건의 유니버설 라이프 가입자를 검토해 본 결과, “90% 이상이 실제 문제에 봉착하고 있거나 조만간 문제가 될 것”이라면서 “그런데 대부분 이를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유니버설 라이프 형태의 생명보험은 거의 40년 전에 생겼다. 당시만해도 연방 준비제도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고금리 정책을 시행하고 있었다. 일부 재정 전문가들은 전통적인 ‘홀라이프’ 보험 대신 보험료가 저렴한 ‘텀’라이프(정기 생명보험)를 구입하고 절약한 보험료를 뮤추얼 펀드나 머니 마켓 펀드에 투자해 불려가라고 조언한다. 보험회사들도 ‘텀을 사고 나머지는 투자’하라는 명언을 반영하는 새 상품을 개발하고 있다.

유니버설 라이프는 가입자가 1년짜리 텀 보험을 가입하고 매년 갱신하는 형식이다. 마켓에 나올 초기만 해도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는 실제 생명보험을 위한 보험료를 감당하기에 충분했다. 생명 보험료를 뺀 나머지 보험료를 모두 세금 유예 저축 구좌로 적립된다. 보험업계에서는 이 저축 구좌에서 불어나는 돈을 ‘캐시 밸류’라고 부른다. 이 캐시 밸류는 매년 텀 라이프를 갱신할 때 올라가는 보험료의 일부를 감당하는데 사용된다.

■저금리 시대로 타격

저축 구좌의 수익은 이자율에 의존한다. 처음 유니버설 라이프가 미국에서 판매될 때 미국의 이자율은 상당히 높았다. 보험회사들은 연간 10~13%의 금리 수준은 꾸준히 유지할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보험업계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했지만 잠시 동안이고 대부분 고금리를 예상했다.

그런데 이자율이 1990년 중반들어 비현실적으로 낮았고 특히 2008년 재정 위기 이후에는 더 떨어졌다. 많은 유니버설 라이프는 저축 구좌의 이자율을 4% 또는 5% 정도로 보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정도로는 충분치 않았다. 텀 라이프 보험료는 70대 후반부터 크게 뛰기 때문이다. 유니버설 라이프는 보험료의 유동성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위험성도 크다는 양면성을 가진다.


가입자는 보험료를 매달 낼 것인지 아니면 1년에 한번 낼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 또 저축 구좌에 축적되는 이자 수입이 높으면 보험료를 줄여 낼 수도 있다. 또 개인 사정에 따라 보험료를 낮출 수도 있고 또 내지 않을 수도 있으며 저축구좌에 쌓인 돈을 빌려 쓸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모두 저축구좌의 잔고를 줄어들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수년전까지만 해도 가입자는 물론이고 보험 에이전트 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었다.

보험회사들은 연례 설명서를 통해 가입자들에게 저축 구좌에 얼마나 들어있고 그해 갱신되는 텀 보험료가 얼마인가를 설명해준다. 일부 보험사는 예전 보험의 문제를 찾아 가입자에게 추가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링컨 내셔널 보험사는 보험료를 더 많이 내거나 사망 보험금 액수를 줄이지 않으면 조만간 또는 10년 후에 보험료가 크게 인상될 것이라는 추가 설명서를 보내고 있다.

■말년의 수입 대체 기능 상실

뉴욕에서 교사로 은퇴한 니콜라스 버튤로(85)는 ‘아메리칸 인터내셔널 그룹’ 산하 보험사의 유니버설 라이프 3개를 가고 있다. 이중 하나의 처음 이자율은 9%였다.

하지만 요즘은 4~4.5% 정도다. 그의 사망지불금은 모두 47만5,000달러다. 그런데 현재 내는 보험료는 1년에 3만 달러다. 구입 초기 보험료의 3배다. 헤어나기 힘든 상황이 돼 버렸다. 그가 보험을 구입한 이유는 그가 죽으면 그의 교사 연금과 소셜시큐리티 연금이 끊어지게 되므로 부인에게 돈을 남겨 주기 위해서 였다. 그런데 수년전 보험 저축 구좌에서 돈을 찾아 대출을 갚으면서 사망지불금을 낮췄고 또 지금은 다른 지출을 더 많이 줄여 보험금을 내고 있다. 그는 부인과 식당이나 여행도 줄이며 ‘스파르타식 은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유니버설 라이프가 초기에만 해도 가입자들은 주로 이자에게 대한 세금 유예 혜택을 보려는 비즈니스맨이나 기타 전문직 종사자들에게 인기 였다.

리서치 회사인 ‘림라’에 따르면 1985년까지 만해도 유니버설 라이프는 전체 개인 생명보험 보험료의 38%를 차지할 정도 였다. 1980년대에서 1990년대 초반까지 이 보험을 구입한 사람들이 200만~300만명으로 추산된다.

이자율이 낮아지면서 일부 에이전트는 가입자에게 예상치도 못했던 수익률 저하를 경고하기도 했다.

화가 난 일부 가입자들은 보험을 아예 취소하기도 했고 일부는 자세한 약관을 읽지 않은 자책에 빠지기도 했다. 또 일부는 보험료를 더 내고 저축 구좌의 현금을 늘리기도 했다.

■보험 특성 이해 못해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변호사들이 약속된 저축금 증가 불이행 등 현혹성 판매를 이유로 한 소송도 제기돼 보험회사와 합의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또 주 보험국은 장기적인 이자율 등 보험 약관에 대한 규제도 강화했다. 보험회사들은 요즘 보장된 유니버설 라이프를 판매한다. 제때 보험료를 내면 고정된 보험료를 죽을 때까지 내는 플랜이다. 많은 초기 가입자들이 이것으로 바꿨다.

문제는 초기 구입자들이 이런 유니버설 라이프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메트라이프는 최근 오하이오에 사는 부부에게 1994년 구입한 유니버설 라이프 보험료를 월 97달러에서 300달러로 올린다고 통보했다. 구입 당시 남편은 보험 에이전트였다. 남편은 고정 이자율이 아니라 저축금을 주식과 채권 펀드를 구입할 수 있는 ‘배리어블’(변동) 유니버설 라이프를 가지고 있다. 올해 79세인 남편은 매달 300달러씩 낼 재정적 능력이 되지 않는다며 하소연 했다.

메트라이프는 이에 대해 “보험료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을 알고 있다”면서 메트라이프는 매년 저축구좌내 적립금을 통보해주면서 에이전트나 메트라이프와 연락하라고 경고해준다고 말했다. 이자율 하락은 가입자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험회사 역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요즘 회사채 수익률은 5% 이하인데 유니버설 라이프 저축 구좌의 최저 보장 이자율 4% 안팎의 수익을 가입자에게 줘야 한다.

앞서 예를든 94세의 버니스 색은 2000년 보험 에이전트로부터 1983년 구입할 당시의 예상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경고를 들었다.

그녀는 보험 저축구좌에서 4,000달러를 빌려 썼고 보험료도 몇 번 걸렀다. 저축구좌 수익은 2000년까지 10% 이상 올랐다 하지만 5.7%로 줄었다. 그녀는 사망지급금을 2만5,000달러에서 대출을 뺀 2만1,000달러로 줄였는데도 페이먼트가 두배로 늘어난 월 100달러였다.

이 보험료는 계속 올라갔다. 그녀는 또 1,000달러 정도를 빌렸고 지금은 이자율이 4%로 내려 앉았다.

버니스 색은 지난해 노스 캐롤라이나 보험국에 링컨 인터내셔널 보험을 상대로 불만을 접수시켰지만 “상황을 이해한다”면서도 보험회사가 당초 약속을 이행하고 있다는 대답만 받았다. 그녀가 지금까지 지불한 보험금은 3만9,000달러로 그녀가 죽은후 딸이 받게 되는 사망지불금보다 훨씬 많다. 하지만 그녀는 페이먼트를 중단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보험이 사라져 장례비 마련도 어려울까 걱정되기 때문이다.

johnkim@koreatimes.com

<김정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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