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난의 열매

2018-09-20 (목)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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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살면서 참기 어려운 고통과 시련이 있다. 하지만 이를 잘 극복하면 삶이 보다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역사에는 고통을 이겨내고 삶을 승화시킨 위인들이 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 중국 한나라의 사마천이다.

사마천은 ‘태사령’으로 600명을 관장하는 관료의 직분을 갖고 있었다. 그는 나라의 장수로 흉노전에 나가 싸우다 패한 이륭이 적장에게 투항하자, 그의 중죄를 추궁하는 황제 앞에 주저 않고 변론하고 나섰다. 그로 인해 사마천은 왕의 진노를 사서 괘씸죄로 요참형(허리를 베이는 죽음)과 궁형으로 나누어진 무망죄 중 한 가지를 택해야 하는 귀로에 서게 됐다. 두가지 중 요참형은 죽임을 당하는 것이고, 궁형은 50만전의 벌금이나 환관이 되는 것이다.

재력이 없는 사마천은 결국 살아남기 위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동반해야 하는 환관을 선택했다. 그 때문에 사마천은 극도의 신체적 아픔과 자신의 생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간 절망감에 시달려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런 상황을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추구하는 쪽으로 방향을 승화시켰다. 그 결과가 바로 중국의 역사를 수놓은 그 유명한 불후의 저작 ‘사마천의 사기’다.


그가 이런 최고의 결실을 역사에 남겨놓게 된 것은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자신이 무엇인가 남기지 않고는 삶의 의미가 없다는 사실에 무게를 두었기 때문이다.

사마천과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 중의 소크라테스라 불리는 세네카도 고통 중에 꽃을 피웠다. 그는 물도 불도 없는 고르시카 섬에 유배를 가서 온갖 어려움과 고통을 겪으며 여러 권의 책을 집필했다. 그 결과 그는 유배지에서 돌아와 로마에서 제일가는 시인이자 정치가가 되었다.

어느새 무더위는 사라지고 풍요와 결실의 계절인 가을이 왔다.

7월 말까지 한국은 한창 무더위가 지속되면서 논두렁, 밭두렁이 쩍쩍 갈라져 손을 넣어도 손이 들어가고 발이 쑥쑥 빠지곤 하는 모습이 TV에 방영됐었다. 그러더니 또 8월에는 장마로 온통 난리가 나서 열매를 맺을 새도, 곡식이 익을 새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우물에 독을 풀어도 살아남는 고기가 있다. 그렇듯이 찌는 듯한 가뭄 속에서도 차로 물을 퍼다 날라 논에다, 밭에다 물을 대주고 하다 보니 그 속에서 열매가 맺어 이 가을에 거둘 수 있는 열매가 매달리고 논에 곡식들이 누렇게 물들었다.

크리스마스를 의미하는 포인세티아 색깔은 유난히 붉어 예수의 보혈을 상징한다는 말이 있다. 이 꽃은 아주 춥고 컴컴한 곳에서 특유의 붉은 빛을 피운다는데, 빛이 완전 차단되고 냉기가 아주 심한 공간에서 남모르게 꽃을 피운다. 그 속에서 파란 잎사귀가 어둠과 추위를 이겨내면서 꽃을 피우는 모습은 매우 감동적이다.

이때 가느다란 빛이라도 새어 들어가면 오히려 붉은 꽃에 얼룩이 생겨 아름다운 꽃을 피우는데 방해가 된다고 한다. 결국 포인세티아가 아름다운 꽃으로 변신하기까지는 철저한 고립과 어둠의 세월이 필요하다는 결론이다.

고통이나 절망은 인간을 강하게 만든다. 고통이나 절망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결국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인생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춥고 또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고난을 두려워하거나 절망에 굴복하는 사람은 어둠의 터널을 빠져나오기 어렵고 인생에서 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우리의 삶은 모두 힘겹고 고달프다. 이런 가운데서도 각자 자신에게 처한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나가면서 최선을 다해 살다 보면 훗날 크든 작든 열매가 열릴 것이다. 이런 결실로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다가오는 후세들의 삶을 좀 더 풍성하게 해줄 수는 없을까. 풍요와 결실의 계절인 이 가을에 우리 모두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명제다.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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