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빅토리아 시크릿’ 주가는 왜 반토막 났을까

2018-09-19 (수) 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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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몸 사랑하자’ 여성 많아지며, 와이어 없는 ‘브라렛’검색량↑

▶ 한국내 브라렛 사용자 많아지며, 신세계 속옷 편집숍 ‘엘라코닉’매출 급상승

‘빅토리아 시크릿’ 주가는 왜 반토막 났을까

속옷전문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다. 빅토리아 시크릿이 개최한 패션쇼 장면. [AP]

‘화려한 날개를 달고 속옷 차림으로 무대를 활보하는 8등신 미녀들… ’매년 연말이 되면 세계적인 속옷 브랜드 ‘빅토리아 시크릿’ 의 쇼가 황금시간대 TV 전파를 탄다. ‘마룬5’ 등 유명 가수 공연까지 더해진 화려한 쇼 덕에 빅토리아 시크릿은 한동안 여성들이 가장 많이 찾는 속옷 브랜드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이 미국 최대 란제리 회사의 위상은 땅에 떨어졌다. 빅토리아 시크릿의 마케팅이 ‘성 상품화’를 조장하고 시대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 “더 이상 옷 벗지 않겠다” 모델이 보이콧 선언한 빅토리아 시크릿

2014년 912만명이던 빅토리아 시크릿 패션쇼의 시청자는 2016년 498만명까지 급감했다. 지난해 시청률은 1.5%(시청자 수 대비 TV 소유 가구 수 비율)로 사상 최저 수준까지 하락했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12월엔 18년 연속 빅시 패션쇼 무대에 서며 세계적 모델로 이름을 알린 아드리아나 리마가 “더는 (눈요기용으로) 옷을 벗지 않겠다”며 보이콧을 선언하기도 했다.


여기에 매출도 감소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기준 빅토리아 시크릿의 오프라인 매장 당 평균 매출은 784달러를 기록, 2년 전(864달러)보다 10% 가까이 감소했다.

모회사인 ‘L브랜즈’의 주가도 반토막 났다. 올 초 주당 60달러에 육박했던 L브랜즈 주가는 현재 29달러(9월 16일 기준)로 뚝 떨어졌다. 이 회사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7억2,800만달러로, 2015년보다 21% 감소했다. 여성들이 브라를 덜 사기 시작한 건 아니었다. 고객들은 불편한 ‘푸시 업 브라’가 아닌 자연스럽고 편안한 속옷을 찾기 시작했다.

‘페미니즘’ 이슈가 대두 되면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억지로 꾸미지 말자는 움직임이 커지면서 예쁘지만 불편한 속옷을 더 이상 입지 않겠다는 여성이 늘어났다.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야한다는 사회적 메시지가 속옷 트렌드마저 바꾼 것이다. 이 흐름을 타고 2014년부터 포토샵을 전혀 하지 않은 광고로 화제를 모은 아메리칸 이글의 ‘에어리’의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다.

현실과 거리가 먼 섹시 스타 대신 뚱뚱한 여성부터 장애가 있는 여성까지 다양한 체형의 일반인들을 속옷 모델로 내세운 에어리는 현재 12분기 연속 매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 ‘나 다운’ 자연스러움 내세운 브라렛이 푸시 업 브라 제치고 ‘대세’

자연스러운 속옷을 선호하는 추세는 인터넷 검색량으로도 확연히 알 수 있다. 최근 5년 새 포털 사이트 구글에서는 ‘브라렛(와이어가 없는 브라)’의 검색이 80% 가량 증가했다. 브라렛은 5년 전만 해도 ‘푸시 업 브라’보다 검색이 적었지만 3년 전 처음 역전한 이후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국가별로 비교해보면 더욱 재밌는 결과가 나온다. 검색량이 많은 나라를 살펴보면 1위 베네수엘라, 2위 에콰도르에 이어 3위를 한국이 차지했다. 전 세계에서 세 번째로 브라렛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인 것이다. 브라렛은 2~3년 전부터 헐리우드 스타들이 입기 시작하면서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상륙했다. 레이스로 장식한 화려한 홑겹 브라를 외출복으로 입는 패셔니스타들의 모습에 일반 대중들도 브라렛에 점점 익숙해졌다.


‘신세계’가 만든 란제리 편집숍 ‘엘라코닉’에서는 90%를 와이어가 없는 제품으로 채웠다. 지난해 8월 처음 문을 연 엘라코닉은 브라렛 등 편안한 속옷 인기에 힘입어 1년 만에 목표 매출액보다 20% 많은 금액을 판매했다.

매출은 작년보다 5배가 늘었다. 특히 전체 매출에서 브라렛 매출 비중은 65%까지 높아졌다. 여기에 엘라코닉의 자체 PB 브랜드인 ‘언컷’은 100% 노 와이어 브라만 판매한다. 재구매율도 높다. 언컷의 제품은 현재 엘라코닉 매출의 70%에 달한다. 기존 백화점 브랜드보다 30~40% 더 저렴한 것도 장점이다.

브라렛의 인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패션이 아니라 ‘내 몸을 사랑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반짝’ 트렌드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 그 이유다.

<변수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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