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닉슨의 회한의 고백, 그 교훈은…

2018-09-17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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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프랑켄슈타인을 만들어 낸 건지도 모른다.”

뉴욕타임스의 대표 보수 논객 윌리엄 새파이어가 닉슨 전 대통령을 찾아갔다. 때는 1994년. 닉슨이 사망하기 얼마 전의 시점이다. ‘미국의 경제적 포용정책은 중국 체제를 강하게 하고 정치적 자유를 가져왔나’- 새파이어가 던진 질문에 닉슨은 그 같은 답변을 한 것이다.

닉슨 하면 떠올려지는 것은 ‘핑퐁외교’다. 중국과 소련의 불화를 틈 타 중국을 미국 편으로 끌어들였다. 중국 포용정책을 통해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닉슨의 중국개방정책은 이런 내러티브를 바탕으로 펼쳐졌다. ‘세계최대 인구를 포용한 중국이 공산체제라는 사실은 앞으로 세계평화에 최대 위협이 될 수 있다. 중국이 변해야만 세계는 안전하다. 그러므로 미국의 정책 목표는 중국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야 한다.’

닉슨이 중국개방정책을 선언한 해는 1967년. 대통령 취임과 함께 구체적 로드맵도 작성했다. 타이완을 희생시키는 ‘하나의 중국’ 원칙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이루고자 한 것은 장기적으로 호전적인 공산당 일당독재에서 온건한 다당제로 중국의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중국공산 정권의 티베트와 동투르크스탄(오늘날의 신장성) 무력합병도 묵인했다. 영토적 야욕이 어느 정도 충족 될 때 중국공산당 정부는 국내개발과 보다 인도주의적인 정책을 펼 것이라는 계산에 따라서다.

그러나 변화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에 우려를 보이면서도 닉슨은 계속 중국포용정책을 지지했다. 1978년에 펴낸 회고록에서도 서방세계는 중국의 변화를 유도하는 평화적 노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 것.

천안문사태가 발생한 1989년 닉슨은 중국을 방문해 덩샤오핑과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그리고 의회지도자들에게 보내는 비망록을 통해 중국에 대해 극히 비관적인 견해를 밝힌다. 천안문 사태를 바라보는 미국과 중국의 인식의 갭은 결코 메어질 수 없을 정도임을 시인한 것이다.

그리고 5년 후 임종을 얼마 앞둔 시점에서 닉슨은 중국의 진로에 심각한 우려표명과 함께 이런 말을 했다.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그 주(week-닉슨이 중국을 방문한 1972년 2월 21일-28일)는 어쩌면 더 나쁜 방향으로 변화가 시작된 주이었을 수도 있다.” 이어서 중국은 미국이 만들어낸 프랑켄슈타인일 수도 있다는 회한(悔恨)어린 고백을 남긴 것이다.

4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닉슨의 그 고백은 현실로 드러나고 있다. 부쩍 커진 중국은 걸핏하면 완력을 드러낸다. 1당 독재에서 1인 독재로 회귀한 중국은 한(漢)지상주의와 함께 국내외적으로 마오쪄둥시대를 방불케 하는 억압정책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동시에 워싱턴에서 한 가지 컨센서스가 굳어지고 있다. 지난 40년간의 중국 포용정책, 그러니까 경제적 개방을 통해 민주화로의 변화를 이끌어낸다는 정책은 대실패로 끝났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Die Hard. 아니 ‘Die Hardest’라고 해야 하나. 독재체제, 특히 사회주의 독재체재의 속성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파 형 권위주의 독재는 민주화로의 전이가 가능하다. 사회주의 형 전체주의는 그 가능성이 거의 없다’-. 지난 80년대 진 커크패트릭 유엔대사가 한 말이다. 그 말이 틀리지 않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의 3차 남북회담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그런데 기대감 보다는 불안감이 앞선다. 북한 식 표현대로 ‘력사적인 정상회담’이다. 그런데 실무회담이란 것이 나흘 전에야 열렸다. 번갯불에 콩 볶는 식이랄까. 게다가 세부일정도 알려주지 않았다. 한 마디로 예의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아주 우습게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불안감이 앞서는 것이다.

‘김정은의 메신저 같다’- 3차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문재인 정부의 모습이 그렇게 비쳐진다는 외신의 평가다. 기대감보다 불안감을 불러오는 또 다른 요소다. ‘북한은 미래 핵을 폐기하는 조치를 이미 취했다고 생각한다’는 문대통령 발언부터가 그렇다. 말하자면 북한의 조치가 불가역적 조치였다는 논리로 평양 측 주장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느낌이다.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 조치’를 받아내야 한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주문이다. 그 평양방문에 삼성, 현대 등 대기업 경영진이 동행한다. 그 모양새가 비핵화보다는 북한과의 경제협력에 우선하겠다는 것으로 비쳐진다. 그 재벌총수 동행도 평양 측 주문에 따른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결국 불발로 끝났지만 국회의장단과 야당대표들의 동행도 평양 측의 요구로 밝혀졌다. 그 김정은 정권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 마치 ‘스토커’ 같이 따라붙어 평양행을 끈질기게 요구한 문재인 정부의 모습이 기대감 보다는 불안감을 더해 주고 있는 것이다.

또 다른, 그리고 더 심각한 불안요소는 그 과정에서 보여준 문 대통령의 독선이다. 야당이 평양동행과 4.27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안을 거부하자 ‘당리당략에 몰두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거기서 엿보여지는 것은 ‘나는 절대선(絶代善)’이라는 위험한 발상이다. 그래서 더 불안하다.

평양의 입장을 어떻게 그토록 열정적으로 대변할 수 있을까. 북한이, 김정은이 하는 것은 모두 선의에서 출발한 것으로 아주 순진하게 믿는 것인가, 아니면 소신성의 무지 때문인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아예 기대감은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앞으로 수 년 내에 북한의 위협에 굴종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김정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한국정부. 그 모습과 관련해 북한전문가 고든 챙이 던진 경고다. 그런 후회막급의 상황이 정말 올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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