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고용 한파속 새 길 찾는 사람들 ‘두번째 스무살’ 시작

2018-09-17 (월) 맹준호·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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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장년층“경험은 나이들지 않는다”, 젊은층 전유물인 스타트업 창업도

▶ 작가·BJ 등 문화예술까지 도전나서, 제2 직업·인생 개척‘리스타트’열기

고용 한파속 새 길 찾는 사람들 ‘두번째 스무살’ 시작

고용 한파 속에서 많은 중장년층들이 젊은층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스타트업 창업에 나서고 있다.

스마트보청기 제조업체인 더열림은 지난 2015년 창업한 4년차 스타트업이다. 벤처기업 인증을 받고 한국 특허 4건과 미국 특허출원 1건을 따냈다. 미 연방식품의약청(FDA)의 의료기기 업체 등록까지 마쳤다. 최근에는 스마트보청기 개발에 성공해 판매에 들어갔다. 짧은 업력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빨리 사업화에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는 ‘나이’다. 공동대표인 유정기·조동현 대표 모두 49세다. 1년 후에는 하늘의 뜻을 안다는‘지천명(知天命)’에 접어드는 이들은 경험과 내공을 바탕으로 단기간에 성과를 냈다.

이들 역시 젊어서는 직장에 모든 것을 바쳤다. 유 대표는 현대전자에 입사해 큐리텔 분사, 팬택으로의 합병을 모두 겪으며 휴대폰 개발에 매진했다. 이후 국내 중견 전자부품 업체 멜파스에서 하드웨어부문장을 지냈다. 조 대표는 현대그룹에서 시작해 KTB네트워크·동국제강을 거친 기획통이다. 유 대표는 “저희 구성원 모두 관록이 있다 보니 개발상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재능을 맘껏 펼칠 수 있는 문화예술계에서는 늦깎이 예술가들이 더욱 눈길을 끈다. 영화 ‘신과 함께’의 원작자인 웹툰작가 주호민의 부친인 주재환(77) 화백은 마흔을 넘겨 미술에 발을 내디뎠고 첫 전시회도 60세를 넘은 나이에 열었다.


100쇄를 돌파한 ‘7년의 밤’을 쓴 소설가 정유정(52)씨 역시 원래 간호사 출신으로, 41세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등단하며 화제몰이를 하고 있다.

‘실버 유튜버’로 유명한 박막례(72) 할머니는 지난해 1월 방송을 시작한 후 구수하면서도 친근한 말투로 인기몰이를 하며 구독자 수 56만명을 돌파했다.

지난해 참가한 ‘29초 영화제’에서 박 할머니는 “71세에 뷰티 유튜버에 도전해 또 다른 세상을 살고 있다”며 “하고 싶은 일에 나이를 제한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노령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직장인의 은퇴 시기가 앞당겨지고 있지만, 오히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천명인 50대를 넘어 새로운 도전에 성공한 케이스가 속속 나오면서 오히려 “내 나이가 어때서”라고 되물으며 영역을 가리지 않고 도전장을 던지는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대부분의 신중년·신노년은 생계를 위해 제2의 인생에 나서는 게 현실이다. 지난해 50대 이상의 남성 7,420명이 지게차 면허를 취득했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대기업 임원으로 근무하다 퇴직 후 마을버스를 몰거나 대리기사로 뛰는 사례도 흔하다.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은 “지금의 중장년·노년층은 과거에 비해 교육도 많이 받았고 직업 경험이 많을뿐더러 경제력 덕분에 잃었던 꿈이나 취미를 찾아 새로운 인생을 살고자 하는 욕구가 높다”며 “평균 수명이 50~60세였던 시기에는 직장을 은퇴한 후에는 은둔의 시간을 보냈지만 평균 수명이 90세에 육박하면서 물리적인 나이와 상관없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자아를 표출하려는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고 짚었다.

<맹준호·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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