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벽에 붙어있는 파리

2018-09-15 (토)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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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의 현 직함은 워싱턴 포스트의 부편집인이다. 그에게는 ‘벽에 붙어 있는 파리’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대통령 집무실, 대법원 판사들의 회의실, 백악관의 상황실 등 외부인들의 출입이 불가능한, 경비가 삼엄한 곳의 대화토론 내용이라도 얼마 후면 우드워드의 책들에 흔히 비속어까지 포함한 대화내용이 따옴표 안에 인용되기 때문에 마치 우드워드가 파리처럼 벽에 붙어있었기에 다 들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해학적인 별명이다.

1970년에 포스트에 입사한 우드워드가 두각을 나타낸 것은 현역 대통령 닉슨과 민주당의 조지 맥거번 후보의 1972년 대선과정에서 워터게이트 빌딩에 위치한 민주당 전당위원회 사무실에 야반 침입한 괴한들이 체포된 다음 수사 받는 과정에서였다.

그 괴한들의 보석금을 지불한 사람이 백악관과 관련이 있는 사람임을 알아낸 우드워드와 동료 칼 번스틴은 포스트의 편집간부들에게 백악관의 배후설을 강력히 주장했었다.
하지만 당시에 모든 신문들은 물론 포스트의 정치부 관록기자들마저 재선이 확실했던 닉슨 백악관이 그런 무리수를 둘 리 없다고 사회부 신참기자들의 왕성한 상상력 발로쯤으로 쳤었다.


그러나 닉슨이 49개주에서 압승하고 난 다음부터 우드워드와 번스틴이 열심히 취재했을 뿐 아니라 막힐 때마다 ‘딥 스로트’로 명명한 그들의 비밀 소스로부터 “돈의 흐름을 추적하라”는 격려를 받는다.

그리고 여러 곳에서의 복수확인으로 닉슨 재선위원회와 백악관, 아니 닉슨 자신도 워터게이트 은폐에 깊숙이 관련되었음이 드러난다. 특별검사의 수사 말고도 하원에서 닉슨의 탄핵안이 통과된 다음 배리 골드 워터 등 용기 있는 공화당 중진 상원의원들이 닉슨에게 상원의 재판결과도 장담할 수 없다고 압박한 결과 닉슨은 1974년 8월 백악관을 떠나는 수모를 겪는다.

우드워드와 번스틴은 바로 그 해 ‘대통령의 모든 사람들’이란 워터게이트 스캔들 전말에 대한 책을 출판한다. 베스트셀러가 되었음은 물론 영화로도 만들어져 그 두 사람은 백만장자가 된다. 두 사람은 닉슨의 사직에 관한 ‘마지막 날들’이란 책을 1976년에 저술하여 또 베스트셀러저자가 된다.

그 후 번스틴은 포스트를 떠났지만 우드워드는 계속 남아 있었다. 워드우드는 그 이후 신문제작에는 직접 참여하지 않고 베스트셀러 양산에만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워렌 버거 대법원장 시절의 대법원을 그린 ‘(판사들끼리의 호칭인) 형제들’을 또 하나의 공저자와 쓴 게 1979년이다. 레이건 대통령 때 윌리엄 케이시 CIA 국장 시절 ‘CIA 비밀 전쟁(1987년)’도 썼다. 그리고 클린턴, 부시, 오바마 등 최근 대통령들에 대해서도 물론 책들을 집필했다.

그런 우드워드가 ‘공포·백악관 안의 트럼프’를 출판하여 워싱턴 정가를 강타했다.

미디어에 단편적으로 보도되는 내용을 들으면 상당히 충격적인 것이 많다.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트럼프를 ‘바보 얼가니’로 불렀으며 백악관을 ‘광인들의 무대’라면서 자기 직책을 ‘세상에서 최악의 자리’라고 한탄했단다.

그리고 매티스 국방장관은 트럼프의 복잡한 국제정세에 대한 지식수준을 ‘5살, 6살짜리’ 정도로 표현했을 뿐 아니라 전직 경제수석보좌관은 한미 자유무역조약을 뒤엎으려는 편지가 트럼프 책상에 있는 것을 몰래 치웠다고 술회했다는 것이니 만약 사실이면 심각하기 짝이 없다. 철없는 아이의 무모한 행동에 나라가 다치지 않도록 어른들이 견제역할을 해야 한다는 해석이 있다.


당사자들은 펄펄 뛰고 부인하지만 트럼프도 인터뷰 하려다가 못하고 탈고된 다음에야 트럼프가 전화를 해서 우드워드와 통화한 내용이 녹음된 것을 보면 수백 명의 사람들과의 대화를 녹음한 것이 우드워드와 그의 저술 보좌팀에 보관되어 있을 것임이 분명하다.

우드워드의 책이 백악관을 강타한 바로 다음날 뉴욕 타임스의 오피니언 란에는 트럼프 행정부의 주요 부서에 있다는 인사의 무기명 칼럼이 실려 백악관을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트럼프가 비도적적이고 충동적으로 무모한 행동을 할 뿐 아니라 국가의 건강에 해로운 결정도 내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트럼프 정부 안에 그로부터 나라를 보호하려는 비밀저항세력이 있고 그 무기명 필자도 그 저항세력의 하나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반역?’ 이란 대문자 트윗을 날렸고 조사를 명하여 펜스 부통령, 폼페이오 국무장관, 코츠 정보수장 등이 그 칼럼의 기고가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트럼프의 비정상 대통령 시기는 언제 어떻게 끝날 것인가?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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