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인을 문 “개”

2018-08-21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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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데 필요한 장관과 보좌관 인선에 절대적인 권한을 가지고 있다. 각료 전원과 백악관 보좌관 모두 그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대통령의 신임을 얻고 있느냐 여부다. 그것이 사라지는 순간 누구라도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한다.

처음 사람을 쓸 때는 최선의 선택을 하려고 애쓰지만 임명한 사람이 기대에 못 미치기도 하고 대통령 생각이 바뀌기도 한다. 따라서 내각과 비서진 교체는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렇다 해도 트럼프 행정부만큼 단기간에 많은 사람이 교체된 경우는 미국 역사상 드물다.

마이클 플린 안보담당 보좌관은 FBI에 거짓말을 한 사실을 시인하고 취임하자마자 사임했으며 라인스 프리버스 비서실장과 션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도 6개월 만에 물러났다. ‘트럼프의 브레인’을 자처하던 스티브 배넌 수석 전략가는 트럼프에 따르면 “개처럼… 울면서 빌었는데도” 해임됐고 랍 포터 선임 비서관은 두 전처의 폭행 증언이 나오자 사임했다.


여러 번 경고를 받고도 자리에 눌러앉으려던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트럼프의 트위터 한 방으로 날아갔다. 국무장관이 트위터로 해임된 것은 사상 처음이다. 불과 1년 반 여 만에 백악관과 내각의 주요 인사들이 대거 바뀐 것이다.

그러나 이들 모두를 합친 것보다 더 골치 아픈 일이 백악관 대외 연락국장 하나를 해임하면서 터졌다. 백악관의 유일한 흑인 고위 공직자로 작년 말 해임된 오마로사 매니골트는 올 8월 ‘Unhinged’라는 책을 통해 트럼프가 이기적이고 여성을 증오하는 인종차별주의자라며 그가 흑인을 “깜둥이”(N word)라고 부르는 것을 들었다고 폭로했다. 오마로사는 트럼프 측이 월 1만5,000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그녀의 침묵을 사려했다는 사실도 증거와 함께 공개했다.

이에 대해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그녀를 “저질인간”(lowlife) “그 개” (that dog)라고 맹비난하며 울면서 취직을 부탁해 자리를 내줬더니 자신을 배신했다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개 등 애완동물을 싫어하는 트럼프는 자기가 가장 증오하는 사람을 “개”라고 부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녀를 욕하면서도 모든 사람이 그녀가 무자격자라고 말했지만 자신을 끊임없이 칭찬했기 때문에 감싸줬다는 대목에서는 실소가 나온다.

트럼프가 심한 배신감을 느끼는 것도 이해는 간다. 오마로사는 NBC 리얼리티 쇼인 ‘견습생’(The Apprentice)을 통해 트럼프가 키워준 인물이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2013년 “오마로사는 항상 강렬한 드라마를 약속하고 이를 지킨다”며 “오마로사는 정직하다. 뒤통수를 치지 않고 정면에서 공격한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것이 인연이 돼 2016년 대선에서 오마로사는 트럼프의 흑인 커뮤니티 캠페인 책임자 직을 맡았고 누구보다 트럼프가 인종차별이나 여성증오 주의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널리 알리고 다녔다. 지금 책에서 그녀가 주장하고 있는 내용과는 정반대 얘기를 한 셈이다.

백악관은 그녀의 주장을 물론 부인하고 있지만 오마로사는 자신이 트럼프의 말 등을 직접 녹음한 테이프를 가지고 있다며 이 중 일부를 공개했다. 오마로사가 이런 테이프를 만든 것은 트럼프의 조언을 따른 것이다. 트럼프는 상대방과의 대화를 녹음해 이를 무기로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여러 번 이야기한 바 있다.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도 트럼프와의 대화 내용을 녹음한 것으로 밝혀지자 트럼프는 “도대체 어떤 변호사가 고객과의 대화를 녹음하는가”라며 분노했다는데 그런 우문은 할 필요가 없다. 트럼프 같은 고객을 둔 변호사란 대답이 나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코언은 사기 등 혐의로 현재 수사를 받고 있으며 트럼프의 전직 캠페인 매니저였던 폴 매너포트 역시 사기 등 18개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오마로사는 7살 때 아버지가 살해당했고 7년 전에는 친오빠마저 살인범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원래 민주당원으로 90년대 고어 부통령 사무실에서 일하기도 했지만 “가장 무능한 직원’이란 평과 함께 해고됐으며 리얼리티 쇼에 출연했다가 한 때 목회자의 길을 가기로 하고 목사 자격증까지 땄다. 그러다 트럼프 지지자가 된 후 해고되자 이제는 전 주인을 물고 있는 셈이다.

트럼프 주위에는 어째서 이런 인물들만 우글거릴까. 이를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속담이 있다. “같은 깃털의 새는 함께 모인다”(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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