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조부 항일업적 이제라도 빛 보게돼 다행”

2018-08-18 (토) 금홍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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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복 73돌 특별기획- 독립군 후손에 듣는다

“외조부 항일업적 이제라도 빛 보게돼 다행”

독립운동가 전일 선생의 외손녀인 김밀라(오른쪽)씨와 외증손녀 김이리나 씨가 2014 년 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KGB)로부터 받은 전일 선생의 업적을 담은 문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해주서 3.1운동 이끌며 항일운동중 행방불명
가족들 본격적으로 찾아나선지 18년만에
2014년 러시아 정부로부터 업적·묘지 등 알려와

“전일 선생은 일본에 맞서 독립 투쟁을 벌이다 1938년 생을 마감했다.”

지난 15일 퀸즈 플러싱 코리아빌리지에서 만난 김이리나씨는 외증조부의 항일 업적과 안장된 묘지의 위치 등을 확인해 준 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KGB) 정부의 공문을 한자 한자 읽으며 눈물을 흘렸다.


함북 길주 출신인 전일 선생은 1910년대 중반∼1930년대 중반 중국과 러시아의 연해주 지역에서 항일운동을 전개하다 체포된 후 행방불명이 되면서 수십 년간 가족들은 전일 선생의 생사조차 알 수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태어나 키르기스스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김이리나씨는 “생전에 한번이라도 외증조부의 소식을 듣고 싶어 했던 외할머니의 한을 풀어드리기 위해 20년 넘게 백방으로 수소문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묵묵부답이었다”고 회고했다.

러시아정부는 물론 뒤늦게 한국어까지 배워 한국 정부를 상대로 문의를 이어가던 김이리나씨는 지난 2014년 7월 러시아 국가보안위원회(KGB)로부터 편지 한통을 받아들었다.

KGB가 전일 선생이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한 업적과 함께 안장된 묘지 정보 등을 담은 문서를 보내온 것이다. 외증조부를 본격적으로 찾아나선지 18년 만이었다.

전일 선생은 1910년 일제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자 191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동휘 선생 등과 함께 독립 운동에 힘썼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대한국민의회 상설의원이자 내무부원으로 활약하면서 독립선언 등 연해주의 3.1운동을 이끌기도 했다. 이후 1920년 한인사회당 중앙총회 선전부장으로 선임돼 항일운동을 펼치다 체포돼 수차례 옥고를 치르다 1938년 생을 마감하게 됐다. 현재 러시아 하바로브스크 공동묘지에 안장돼 있다.

한국 정부도 지난 2007년 전일 선생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지만 우즈베키스탄과 키르기스스탄 등지에 흩어져 있는 후손들을 찾지 못하면서 그동안 국고에 보관해왔다.

한국 정부는 가까스로 우즈베키스탄에서 중견 화가로 활동하는 김밀라씨의 동생 이스크라 신씨와 연락이 닿으면서 2015년 1월 우스베스탄 주재 한국대사관을 통해 전일 선생의 미전수 훈장이 전달됐다.

김이리나씨의 모친이자 전일 선생의 외손녀인 어머니 김밀라씨는 “2008년 6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외할아버지의 소식만 기다렸다. 외할버지의 생사를 모른 채 돌아가신 어머니만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온다”며 눈시울을 적시면서 “이제라도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목숨을 바쳤던 외할버지의 자랑스런 항일 업적이 빛을 볼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위안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전일 선생의 외손녀인 김밀라씨 모녀는 지난 2000년 초 키르기스스탄에서 뉴욕으로 이민 와 현재 뉴욕광복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금홍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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