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슈퍼 차이나의 오만과 한국의 편견

2018-08-17 (금) 홍병문 서울경제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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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차이나’의 주창자인 후안강 칭화대 국정연구원장이 요즘 궁지에 몰렸다. 명확한 이론적 근거도 없이 차이나 굴기, 초강대국 중국론을 부추겨 미중 무역 갈등을 불러온 주범 중 하나로 지목됐다.

칭화대 동문과 학계 원로들은 그를 성토하며 중국 대표 민간 싱크탱크 중 하나인 칭화대 국정연구원장은 물론 교수 자리에서도 물러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관영학자며 시진핑 지도부의 총애를 받던 그에게 이렇게 공개적인 비난과 퇴임 요구까지 나오는 것은 중국과 같은 공산당이 주도하는 관치 사회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사실 후안강에 대한 비난이 제기된 것은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오는 2020년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초강대국이 될 것이라는 그의 슈퍼 차이나론은 중국 경제계는 물론 전문 학자들 사이에서 큰 비웃음을 샀다.

미국을 넘어서는 초강대국 중국론의 근거로 그가 내세운 여러 자료는 애매모호하고 단편적이며 자신의 입맛대로 해석한 아전인수가 많았다.

무역총액과 구매력 수준에서 미국을 넘어선 만큼 중국이 세계 1위 경제 강국이라는 주장은 웃어 넘겨줄 수도 있겠지만 국방력·과학기술력이 이미 미국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성장했고 5~10년 안에 지구에서 최대 강국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호언장담은 사실상 선거판에 나온 정치인의 선전구호에 가깝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중국 학계나 중화권 매체에서 미중 무역전쟁 파장 책임론의 희생양으로 후안강 같은 국가전략 나팔수나 왕후닝 상무위원 같은 시진핑 측근의 책사가 거론되는 것을 보면 중국 지도부가 적지 않은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거대 자본의 힘을 빌려 신경제 분야에서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는 중국의 변화를 보면서 ‘라오바이싱(老百姓)’으로 불리는 중국 민초가 슈퍼 차이나의 구호에 빠져드는 이유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중국에 오래 산 외국인들은 유치원에서부터 강요받은 국가주의 사상을 통해 중국 젊은이들 사이에 뼛속 깊이 밴 중국 제일주의를 절감하고 혀를 내두르고는 한다.

슈퍼 차이나와 중국 굴기, 중화의 꿈, 중국 제일주의와 같은 단어들은 사실 문화혁명의 아픔을 경험한 50대 이상 중국 기성세대보다는 40대 이전 젊은 세대에서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최근 미 스탠퍼드대와 베이징대의 경제학자들이 베이징 거주 대학생을 상대로 한 조사에 따르면 베이징의 유명 대학생들은 인터넷 검열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을 갖기보다는 중국식 사회주의 발전을 위해 강압적인 통제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중국 굴기론에는 모든 길은 중국의 문으로 통하게 하겠다는 중국식 오만한 국가관이 자리 잡고 있다. 모든 면에서 중국이 최고라는 오만한 태도는 사실 중국이 아직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먼 국가라는 느낌을 갖게 한다.

안타까운 것은 급변하는 중국의 실상을 인지하지 못하고 중국을 과거의 잣대에 맞춰 판단하려는 시선이다.

중국의 신경제 변화를 전하는 기사들에 따라붙는 인터넷 댓글에는 여지없이 ‘그래 봤자 ○○’ ‘아무리 그래도 ○○는 못 믿어’ 등 근거 없는 비난이 줄을 잇는다. 심지어 국제경제 전문가라는 사람들조차 서구식 프레임에 갇혀 중국의 신경제 성장 실상을 애써 평가절하하는 경우가 많다.

5,000년이 넘는 중국과의 모진 애증의 역사에 비춰보면 이 같은 감성적인 반감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무턱대고 비난하거나 막연한 경계감만으로는 결코 오만한 슈퍼 차이나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

우리에게 과연 중국은 무엇인가. 진부할 수도 있지만 다시 한 번 이 같은 질문을 던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물론 답을 내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이 같은 질문 속에서 우리가 얻고자 하는 해답의 절반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슈퍼 차이나의 오만을 넘어서는 길. 그것은 결코 편견으로는 얻을 수 없다.

<홍병문 서울경제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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