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하늘 가리기

2018-08-14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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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0일 인도를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은 ‘기무사 문건’을 신속 수사하라는 특별 지시를 내렸다. 멀리 가 외교하기도 바쁜 와중에 이례적으로 빨리 수사하라는 긴급 명령이 내려왔으니 사안이 매우 중대한 듯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그 후 공중파 방송 3사와 집권 여당은 이 문서가 쿠데타 음모 문건임을 알리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쿠데타 음모 적발로 지지층을 집결시키고 경제 실정을 덮으려는 시도는 별로 성공하는 것 같지 않다. 대한민국에서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믿는 국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 문건은 본래 목적이 헌법재판소가 박근혜 탄핵을 용인했을 경우 헌법 기관을 장악해 박근혜 영구 집권을 꿈꾸겠다는 것이 아니라 헌재가 이를 기각했을 때 분노한 시민들이 과격한 행동을 취할 경우에 대비한 것이다.


정부 여당과 일부 언론의 쿠데타 음모론이 먹히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송영무 국방 장관이 이 문건에 대해 보고를 받은 것은 지난 3월이다. 그리고도 별 거 아니라고 생각해 3개월 동안 청와대에 보고조차 하지 않았다. 송 장관은 박근혜가 아니라 문재인이 임명한 국방 책임자다. 기무사 문건이 쿠데타 음모라면 이를 알고도 3개월이나 깔아뭉갠 송 장관은 내란 음모 방조범으로 즉각 체포하는 것이 맞다. 그런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송 장관은 그냥 놔두고 국회에서 그를 비난한 기무사령관을 오히려 경질했다. 누가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다.

한국의 공중파 방송은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소명을 포기한 지 오래다. 최저 임금을 둘러싼 논란이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다. KBS는 최근 신설된 심야 토론 프로 ‘저널리즘 토크쇼 J’에서 이 문제를 집중 분석했다. 그래도 명색이 토론이면 한 이슈에 대한 찬반 의견이 있는 사람을 고루까지는 아니라 해도 맛 뵈기로 생각이 다른 사람 하나쯤은 넣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이 프로는 시작부터 끝까지 출연자 전원이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것으로 끝났다. 여기 나왔던 사람들도 최소한의 양심이 있다면 끝나고 얼굴이 좀 화끈거렸을 것이다.

공중파 3사가 이렇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후 SBS 회장이 자진 사퇴하고 임기가 남은 KBS와 MBC사장이 강제로 쫓겨나면서 경영진이 모두 친정부 인사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이런 방송사의 편파 보도에 대해 보지 않는 것으로 응답하고 있다. 닐슨 코리아에 따르면 가장 좌편향이 심한 MBC 뉴스데스크의 시청률은 역대 최저 수준인 1.97%를 기록했다. 불과 6년 전 30%를 넘던 KBS 9시 뉴스 시청률은 지금 12%대다.
그러나 이런 방송사들의 ‘문비어천가’에도 불구하고 문 대통령의 지지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문 대통령 지지율은 지난 주 58%를 기록했는데 이는 집권 후 최저며 불과 두 달 전에 비해 20% 포인트 가까이 폭락한 것이다.

이렇게 된 데는 지지부진한 북미 협상, 드루킹 사건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그 중 제일 큰 것은 경제다. 상황이 나쁘고 더 나빠질 조짐을 보이는 데도 정부는 “괜찮다”는 말만 되풀이 하고 있다. OECD가 발표한 한국 경기선행지수는 15개월 연속 하락하며 IMF 사태 이후 최악이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경기도 하락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고 미국이 촉발한 무역 전쟁으로 세계 경제는 불안한 상황이다.

이 와중에 2년 사이 30% 가까이 오른 최저 임금으로 자영업자들은 “차라리 날 잡아가라”며 절규하고 있다. 아닌 게 아니라 국세청에 따르면 작년 자영업자 폐업률은 전년에 비해 10% 포인트 늘어난 88%로 사상 최고고 취업 상황은 10년래 최악이다.

자영업자가 문 닫으면 한 사람 망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직원들 모두 일자리를 잃는 것은 물론 건물 주인도 타격을 입는다. 한국에서 가장 번화한 명동에서조차 빈 점포 자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지금 한국 경제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문재인 정부는 지금이라도 방송 나팔수들을 통해 정권 홍보에 열 올리는 것을 중단하고 최저 임금의 급속한 인상 같은 자신들의 정책이 엄중한 경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지 않은 지 겸허하게 반성하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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