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건국 70주년, 그리고 그 단상(斷想)

2018-08-13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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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은 깊은 상처를 입었다.” 2012년께 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한 말로 기억된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지중해연안의 나라들은 모두 도산상황에 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죽은 후 대홍수가 닥치든 말든…’식의 퇴폐의 물결에 휩쓸려 있었다. 그 가운데 던져진 질문은 유럽연합(EU)은 과연 존속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베네딕토 16세가 던진 화두는 다름이 아니다. 유럽문화는 ‘죽음에 이를 수 있는 중증의 병 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으로 회복의 가망이 있기는 한 것인지 깊은 회의감이 스며있었다.

문명은 흥망성쇠를 거듭한다. 한 국가사회도 마찬가지다. 무상한 세상, 변전하는 역사를 가늠하는데 한 단위의 기간, 특히 ‘70년이란 세월’은 때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70년을 넘긴 독재체제는 거의 없다. 파시즘, 볼셰비키 공산체제, 일본의 군국주의, 멕시코의 제도혁명당 등 20세기의 전체주의 폭정체제는 모두 70년을 한명(限命)으로 붕괴됐다.

‘70년’은 성서적으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70년은 완전수로, 성수(聖數)인 7의 10배수인 70은 하나님의 특별한 일을 기대할 의미 있는 숫자로 받아들여진다.

2018년 8월15일로 대한민국이 건국 70주년을 맞는다. 현대사의 거대한 고비, 고비를 헤치고 맞이하는 ‘70 생일’이다. 들려오는 소리가 그런데 그렇다. 경축의 팡파르가 아니다.

자학에, 자기부정이 지나쳐 자멸을 향해 가는 패배주의와 비관의 소음만 가득하다. 그 행간에서는 극도의 적개심마저 포착된다. 지금까지 알고 있던 대한민국은 그저 형해(形骸)만 남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 섬뜩한 생각이 들 정도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년을 애써 부정한다. 그러면서 임정 수립만을 유일한 건국일로 규정하려든다. 그 문재인 대통령과 집권여당의 입장부터가 그렇다.

건국 70주년을 부정하는 그 주장에는 자유민주주의를 기치로 걸고 달려온 한국 현대사와 그 현대사를 이끌어온 주류세력에 대한 거부감이 짙게 깔려 있다. 더 심하게 말하면 대한민국은 내내 독재국가, 종속국가, 폭력국가였을 뿐인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어야 할’ 나라라는 저주와 함께 대한민국 자체를 지우려는 의도도 엿보여진다.

대한민국이 자유, 민주, 평등, 개방이라는 인류보편의 가치 구현과 함께 산업화와 민주화를 모두 이룩한 70년 세월동안 북한은 3대 세습에 사이비종교집단 비슷한 체제로 전이 됐다.


그 북한의 김정은을 역사의 동반자로 생각하는지 문재인 대통령은 3.1운동 100주년을 남북공동기념사업으로 추진하자고 제의했다. 일부 한국의 정부여당 사람들에게는 김정은은 더 이상 북한 주민을 노예화하고, 핵 위협이나 해대는 잔인한 독재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재벌 2,3세보다 훨씬 인간적이고 또 백성을 극히 사랑하는 지도자다.

그러면서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을 평화정착을 위해 애쓰는 선의로만 받아들이고 있다.

뭐랄까. 대한민국은 중증의 스톡홀름증후군(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현상)에 사로잡혀 있다고 할까. 그게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후 분위기로 보인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근본부터 흔들린다. 북한 핵무기는 하나도 제거되지 않았다. 아니, 김정은 체제는 계속 미사일생산에 여념이 없다는 외신보도다. 그런데도 온통 평화, 평화 이야기에 일방적 군축과, 무장해제를 서두르고 있다.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현상일까.

“사람들의 사고방식, 사회풍조는 20년마다 크게 달라진다. 사계절이 차례로 오고 가듯이 20년, 또 20년 세월이 오가고 세월이 쌓이면서 한 국가사회는 큰 전환기를 맞는다.”

순환논리에 입각한 사회학적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시각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세대는 지난 세대의 고난도 영광도 모두 망각한다. 나중 세대에게 중요한 것은 일종의 세기말적 현상인 ‘오직 나 중심으로만 인식되는 주변의 세계’일뿐이다. 그 역사 망각의 결과 짧으면 70~80년, 길면 100년 주기로 역사는 파국에 가까운 대격변기를 맞는다는 거다.

“한 국가사회가 무너진다. 그 경우 많은 전문가들은 그 원인을 정치, 경제적 인과관계에서 찾는다. 그러나 그 보다는 그 사회문화의 심저(心底), 그 사회의 집단의식 속에 잠재된 가치관에서 찾아야 한다.” 문명비평가 데이빗 골드먼의 지적이다.

골드먼에 따르면 한 문명이나 국가사회가 목적의식을 상실해 집단자살충동에 사로잡힐 때 그 증세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것은 급격한 출산율 저하다. 미래에 대한 희망을 상실했다. 그 절망감은 아이를 갖지 않는 것으로 표출된다.

한 문명이, 국가가 쇠망기에 접어들었을 때 바로 나타나는 것이 이 증세라는 거다.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지난해 1.05를 기록했다. 6.25때도 한 해 50만 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그런데 지난해 출생아는 35만7700여명으로 그쳤다. 더 충격적인사실은 지난해 12월 사망자수가 출생아를 추월한데다가 낙태율, 자살률 역시 OECD 국가 중 1위라는 사실이다

그 출산율이 내년이면 1.0이하로 떨어진다. ‘합계 출산율 1.0명 이하’는 말 그대로 체제가 붕괴될 때나 나타나는 수치다.

그리고 보면 ‘대한민국 해체현상’은 한국 사회의 집단의식 속에 똬리를 틀고 있는 ‘중증의 자살충동증세’에서 그 근본 원인이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그런 집단심리구조에서 선동성의 포퓰리즘에 휩쓸릴 때 ‘민주적으로 자멸’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는 그런….

한국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죽음에 이르는 병 증세’- 과연 회복의 가능성은 있는 것인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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