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국봉쇄, 떠오르는 그 윤곽은…

2018-07-30 (월) 12:00:00 옥세철 논설위원
크게 작게
‘퇴로가 잘 안 보인다. 그 베트남전쟁으로 미국의 국론은 갈렸다. 미국 사회 전반에 만연한 것은 중증의 전쟁피로증세다. 미국의 신뢰에 손상이 가지 않는 선에서 전쟁을 종식시켜야 하는데…’-.

1969년 닉슨이 37대 대통령에 취임한 직후 맞은 상황이다. 그 해 7월 닉슨은 괌을 방문한 자리에서 주요 외교원칙을 밝힌다. 미국은 아시아 국가들과의 안보 공약을 준수하지만, 강대국의 핵위협을 제외하고 내란이나 침략의 경우 아시아 국가들은 스스로 협력하여 대처해야 한다고 선언한 것. 이른바 닉슨독트린을 대내외에 천명한 것이다.

이와 동시에 닉슨의 안보보좌관 헨리 키신저는 중국을 방문해 공산당정부 지도자들과 비밀회담을 가졌다. 중국을 사실상의 미국의 동맹으로 끌어들이는 외교작업을 펼친 것. 핑퐁 외교의 시작이다.


중국뿐이 아니다. 유고의 티토,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와의 관계개선도 꾀했다. 소련과 긴장완화도 추구했다. 강조된 것은 냉전의 이데올로기보다 지정학적 요소였다. 닉슨은 지정학 고전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른 것이었다.

유라시아 대륙괴(大陸塊)를 컨트롤하는 세력이 세계의 운명을 좌우한다. 유라시아의 정치적 다원주의는 미국의 안보에 필수불가결적인 요소다. 그 가르침을 숙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사태진전은 50년대에는 ‘중-소 블럭’ 형성이다. 60년대는 중-소 불화다.” 닉슨이 그의 저서 ‘The Real War’를 통해 한 말이다.

그 60년대의 가장 중요한 지장학적 사태진전을 틈타 닉슨 행정부는 70년대의 가장 중요한 지정학적 사태변화를 이루어 낸다. 중국을 소련으로부터 분리, 개방으로 이끌어내면서 사실상의 동맹관계로 발전시킨 것이다. 그 핑퐁 외교는 결국 소련과의 냉전승리로 이어진다.

Fast Forward! 그로부터 근 반세기가 지나 제 45대 대통령으로 트럼프가 취임했다. 그 때와 오늘날. 미국이 맞은 역사적 정황은 섬뜩할 정도로 흡사하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10년이 넘게 이어지고 있다. 북한 정책은 실패로 끝났다. 미국의 신뢰에 손상이 가지 않는 방향에서 전쟁도 종식시키고 북한 핵 위협도 제거하는 방안이 절실하다.

거기에다가 중국과 러시아는 나날이 가까워져 준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남중국해 무인도 무단점령에, 군사화도 모자라 일대일로(一帶一路)전략을 통해 중국몽(中國夢-중화 제일주의 강성대국의 꿈)을 현실화시키고 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하나.

그 최선의 방안은 닉슨의 지정학적 접근방법이 아닐까. 포용과 봉쇄, 반세기 전 포용정책 대상은 중국이었다. 봉쇄대상은 소련이고. 그 정책의 역(逆)적용이 바로 대안일 수 있다는 지적이 헬싱키 미-러 정상회담 이후 새삼 제기되고 있다.


푸틴은 아주 무자비한 독재자다. 게다가 미국 대선에 개입해 미국의 민주주의제도를 파괴하려 들었다. 그 푸틴 러시아를 파트너로 끌어들이다니. 반론이 만만치 않다. 60년대 말 마오쩌둥은 더 끔찍한 최악의 독재자다. 그 마오쩌둥의 중국과도 손을 잡았다. 그러니….

이 같은 주장과 함께 제기되는 지적은 트럼프와 푸틴의 헬싱키회담은 그 같은 대전략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아마도, 아니 분명히 그런 것 같다. 그리고 트럼프의 닉슨 식 지정학적 접근방법은 키신저 전 국무장관의 조언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데일리 비스트지의 보도다.

대통령당선자 시절 트럼프는 세 차례 이상 키신저를 만났다. 그 때 키신저는 부상하고 있는 새로운 파워 중국 봉쇄 방안으로 러시아와의 협력 안을 제시했다는 것. 그 트럼프의 제안을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외교안보 팀들은 경청해 왔다는 보도다.

키신저뿐이 아니다. 스티브 배넌을 비롯한 트럼프 진영의 사람들은 2016년 대선 캠페인 때부터 중국 봉쇄 안으로 러시아는 물론 일본, 인도, 베트남, 그리고 일부 중동지역 국가들과의 관계개선도 논의해 왔다는 거다.

그러나 ‘닉슨 외교의 역 적용’은 그동안 ‘고려’만 되어왔지 실행단계에는 이르지 못했다는 것이 워싱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트럼프의 러시아 스캔들이 발목을 잡아서다. 그러던 것이 헬싱키 회담을 통해 드러난 트럼프와 푸틴의 밀월관계 과시는 바로 그 같은 대전략의 일환일 수도 있다는 주장을 낳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와 안보의 최대 위협은 러시아가 아니다.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에 대해 사실상의 냉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사활을 건 미국과의 제로섬 게임을 펼치고 있다.” 최근 아스펜 안보포럼에서 미 정보계 수장들이 쏟아낸 말들이다.

미국의 경제와 안보를 근본에서부터 흔들어 대고 있다. 미국을 무너뜨리고 세계의 패권국으로 발 돋음 하려는 중국, 특히 시진핑 1인 독재체제 구축과 함께 공산전체주의로 되돌아간 중국은 미국의 최대 적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말이다.

미 안보당국자들의 전례 없는 이 강성발언들은 무엇을 말하나. 트럼프 행정부는 대 중국 전략에 일대전환을 꾀하고 있다는 시그널은 아닐까.

2018년 7월은 중국을 둘러싼 거대한 지정학적 사태진전, 그 변화가 시작된 시점으로 기록 될 것 같다.

<옥세철 논설위원>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