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소매·숙박·음식점 5개월새 3만4,000개 사라져

2018-07-19 (목) 강광우·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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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건비 급증에 수익 확 줄어 문닫고 직원 해고할 수밖에”

▶ 자영업 구조조정 측면 있지만, 최저임금 과속으로 폐업 급증

서울 강남구에 삼겹살 식당과 이탈리안 식당을 운영하던 셰프 A씨는 최근 이탈리안 식당을 폐업하기로 했다. 그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 부담은 물론 인력 관리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다”며 “내년에도 최저임금이 큰 폭으로 뛰면서 식당 한 곳을 아예 접기로 했다”고 말했다.

삼겹살 식당도 영업시간을 대폭 줄이며 탄력운영제로 전환했다. 아르바이트 인력은 직업소개소와 계약을 맺고 필요할 때 충원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그는 “삼겹살집의 경우 예약이 없으면 아예 문을 열지 않는다”며 “가급적 혼자 서빙과 요리를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동대문구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B씨 역시 폐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 올해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으로 월 평균 240만원을 벌고 있는데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률이 적용되면 180만원 수준으로 쪼그라들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B씨는 “현재 월 240만원을 버는데 이번에 결정된 최저임금이 적용되면 주휴수당·퇴직금 지출까지 고려해 180만~190만원 정도만 남을 것”이라며 “결국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도·소매업과 음식점 등 자영업 생태계가 무너지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경제신문이 고용보험통계를 분석해본 결과 올 1~5월 소상공인으로 분류되는 10인 미만의 도·소매업 업체 1만6,545개가 사라졌다. 숙박·음식점업의 경우도 1만7,731개가 소멸됐다.퇴직자들의 ‘일자리 완충지대’로 평가받는 편의점·식당 등의 업종에서만 3만4,276개가 사라진 셈이다.

통상 자영업과 제조업 취업자는 반대로 움직이면서 제조업이 부진할 때 실업 충격을 상쇄하는 버팀목이 됐다. 하지만 이런 공식도 깨지고 있다. 최근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 6월 제조업 취업자는 4월과 5월 감소 흐름에 이어 전년 동기 대비 12만6,000명 줄었다.

지난달에는 제조업 취업자 감소 폭 확대에도 불구하고 자영업자 수도 1만5,000명 감소했다. 자영업 폐업이 증가하는 가운데 소비가 위축되면서 업종 내에서의 경쟁까지 심화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이들 업체의 폐업은 일자리 감소로도 이어진다. 소매업 평균 종업원 수 1.7명과 외식업체 평균 종업원 수인 3.68명을 고려하면 적게 잡아도 올 들어 8만8,000여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고 추측할 수 있다. 고용동향에서 숙박·음식업과 도·소매업의 취업자가 올해 1·4분기에 전년 대비 9만8,000명 감소한 것과도 비슷한 흐름이다.

물론 자영업의 폐업 증가가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블록마다 편의점들이 즐비한 식의 자영업 과밀 문제도 풀어야 할 숙제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속도가 너무 가파르다는 데 있다. 전문가들은 5개월 만에 3만4,000여개의 생계형 자영업 사업장이 사라지는 추세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에 따른 부작용이라고 진단한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어떤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지 크게 고민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일하던 사람들의 일자리도 사라지고 그들이 나와서 할 자영업에도 설 자리가 사라지면서 생각보다 심각한 후유증이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 더해 내년도 최저임금 역시 올해보다 10.9% 인상하기로 결정하면서 폐업 대기 수요도 늘고 있다. 편의점 업종의 경우 본사와의 계약기간 때문에 폐업을 원해도 5,000만원가량의 위약금이 부담돼 진퇴양난에 빠진 경우도 많다.

계상혁 편의점가맹점협회장은 “경쟁은 치열해지고 인건비는 비싸지고 있어 폐업하겠다는 점주들이 늘고 있다”며 “더 심각한 문제는 본사와의 계약기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적자가 나도 폐업을 하지 못하는 점주들도 많다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할 경우 업종별, 지역별 차등적용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강광우·심희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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