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성소수자 차별은 그만’…폭염 속 6만명 무지갯빛 퍼레이드

2018-07-14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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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광장 출발해 돌아오는 4㎞ 코스 행진…반대단체와 잠시 대치하기도

▶ 인권단체·각국 대사관 등 서울광장에 부스 운영, 개신교 단체 맞불집회도

‘성소수자 차별은 그만’…폭염 속 6만명 무지갯빛 퍼레이드

퀴어축제와 종교단체 반대 (서울=연합뉴스) = 14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성(性)소수자 축제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가 열리고 있다. 그 옆에서 한 종교단체가 반대집회를 하고 있다.

무더위가 기승을 부린 14일 오후 4시 30분(한국시간) 서울광장이 대형 스피커에서 뿜어져 나오는 강렬한 음악과 화려한 원색으로 치장한 인파로 가득 메워졌다.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 등 성(性) 소수자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의 메인이벤트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시작되자 퍼레이드 출발 선상에는 무지갯빛 대형 깃발을 중심으로 성 소수자 차별을 반대하는 단체의 깃발이 넘실댔다.

인근 개신교 단체의 거센 반대 시위나 30도를 훌쩍 넘어선 폭염에도 참가자들은 지치지 않고 퍼레이드에 동참했다.
‘성소수자 차별은 그만’…폭염 속 6만명 무지갯빛 퍼레이드

성소수자 퍼레이드 시작을 알리는 무지개 색 (서울=연합뉴스) = 14일 오후 성(性)소수자 축제 ‘서울퀴어퍼레이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에서 종각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이날 서울광장 일대에서는 올해로 19회를 맞은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렸다. 조직위는 '퀴어(Queer)의 라운드(Round)가 시작된다', '우리 주변(Around)에는 항상 성 소수자인 퀴어(Queer)가 있다'는 의미를 담은 '퀴어라운드'(Queeround)를 올해 행사의 슬로건으로 삼았다.


2000년 50여명 참여로 시작한 이 행사는 매해 규모가 커지면서 올해는 주최 측 추산 12만여 명(연인원 기준)이 광장을 메웠다.

퍼레이드에 참여한 인원은 6만여 명에 달했다. 이들은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종로를 거쳐 다시 서울광장으로 돌아오는 4㎞ 구간에서 행진을 벌였다. 4㎞는 역대 퍼레이드 중 가장 긴 거리다.

올해 처음 선보인 모터바이크 부대 '레인보우 라이더스'가 선두에 섰고, 50m 길이의 대형 레인보우 깃발이 뒤를 따랐다.

이어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총 8대의 퍼레이드 안내 차량을 따라 서서히 도심을 돌기 시작했다.
‘성소수자 차별은 그만’…폭염 속 6만명 무지갯빛 퍼레이드

퀴어퍼레이드 막아선 남성들


퍼레이드가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20∼30대로 보이는 남성들이 "동성애에 반대한다"며 스크럼을 짜고 길 위에 드러누우면서 잠시 대치 상황이 발생했지만, 경찰이 이들을 제지하자 이내 행진은 계속됐다.

일부 시민은 퍼레이드 참가자들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기도 했다.

처음 퀴어퍼레이드 봤다는 대학생 이혜영(22) 씨는 "평소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지는 않았다"며 "그래도 이렇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모습을 보니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응원했다.

이런 문화 자체가 낯설다는 이들도 있었다. 김모(67)씨는 "옳고 그름을 떠나 이상하다, 낯설다. 우리 세대에는 이런 게 없었으니까 생소하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부터 서울광장에는 성소수자 문제를 알리고 인식 개선을 촉구하는 여러 기관·단체의 부스 100여개가 설치됐다. 국내 인권단체와 각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국가인권위원회, 미국 등 주요국 대사관 등이 참여했다.
‘성소수자 차별은 그만’…폭염 속 6만명 무지갯빛 퍼레이드

퀴어문화축제 개막 알리는 대형 드레스 (서울=연합뉴스) = 14일 오전 서울시청광장에서 개막한 성(性) 소수자들의 최대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 행사장에서 관계자들이 대형 드레스 작품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 인 서울’을 점검하고 있다


올해 행사에서는 아시아권 최초로 '암스테르담 레인보우 드레스'도 전시됐다. 이 드레스는 동성애를 범죄로 간주해 구금 등의 처벌을 하는 전 세계 80개국의 국기를 이어붙여 만든 드레스다.

행사 참가자들은 무지개 망토를 어깨에 두르거나 얼굴에 무지개 빛깔로 페이스 페인팅을 하는 등 저마다 화려하게 몸을 치장한 채 서로 모여 성 소수자 차별을 멈추고 권익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동성애자인 아들을 뒀다는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하늘'(활동명) 씨는 무대에 올라 "성 정체성 등에 따른 차별 없이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사회가 돼야 한다"며 "어려움에 공감하고 연대하며 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말했다.

이 모임에 소속된 부모들은 '나는 내 자식이 자랑스럽습니다', '차별은 나빠요, 혐오를 멈춰요'라고 구호를 외치면서 주변의 호응을 받았다.

대한불교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소속 시경 스님은 "성 소수자 문제를 포함해 평등한 사회를 만들고자 이 자리에 나왔다"며 "성 소수자라는 이유만으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내년이면 20년째를 맞는 퀴어문화축제는 그동안 과도한 노출로 외설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강명진 조직위원장은 "외설이라는 것을 과연 누가 규정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외설적이라고 비판하는 이들은 결국 우리를 향해 낙인을 찍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행사를 준비해오면서 감회가 남다르다"며 "2년 연속 비가 와서 걱정했지만, 올해 맑은 하늘 아래, 뜨거운 열정 아래 행사를 열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성소수자 차별은 그만’…폭염 속 6만명 무지갯빛 퍼레이드

동성애 반대행진 (서울=연합뉴스) = 14일 오후 서울퀴어문화축제 반대 집회 참가자들이 퀴어문화축제가 열리고 있는 서울광장에서 남대문 방향으로 행진하고 있다. 뒤로 퀴어축제 장소가 보인다.


축제장 주변에서는 동성애에 반대하는 개신교 단체와 극우·보수단체들의 맞불집회도 열렸다.

이들은 '동성애는 자유의 문제가 아니다', '자유에는 타당한 제한이 따른다', '퀴어 축제는 불특정 다수를 향한 성폭력이다', '성 평등 정책의 동성애와 동성결혼 합법화를 반대합니다', '동성애를 차별과 인권으로 포장하지 말라' 등 피켓을 들었다.

개신교 단체인 홀리라이프와 건전신앙수호연대는 일대를 행진하면서 '돌아오라'고 외치며 탈 동성애 인권운동 행사를 벌였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총회, 샬롬선교회, 예수재단 등도 반대집회를 열었고, 일부 보수단체 회원들이 태극기와 성조기를 흔들면서 합류하기도 했다.
‘성소수자 차별은 그만’…폭염 속 6만명 무지갯빛 퍼레이드

퀴어문화축제행사장 둘러싼 경찰 (서울=연합뉴스) 강민지 기자 = 성(性) 소수자들의 최대 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14일 오전 서울시청광장 행사장에서 행사 주최 측과 동성애 반대 단체들의 충돌을 우려한 경찰이 근무하고 있다.


경찰은 서울광장 주변에 펜스로 폴리스라인을 설치해 양측의 접촉을 차단하고, 경비병력을 투입해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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