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월드컵보다 더 값진 선물

2018-07-13 (금)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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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도를 상회하는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난 약 한 달 동안 러시아 월드컵에 푹 빠져 즐거움을 만끽했다. 극심한 경기침체와 크고 굵직굵직한 사건사고가 줄을 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월드컵에 집중하며 어느 나라가 우승컵을 차지할지에 온통 관심을 쏟아왔다.

미국에서는 여전히 총기사고가 일어나고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북한의 비핵화를 위해 북한에 가서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만났다.

일본에서는 물 폭탄이 떨어져 엄청난 인명 및 재산피해가 발생하는 등 세계 곳곳에서 크고 작은 재해와 사건들이 일어났다. 태국에서 있었던 유소년 축구팀 13명이 17일 만에 동굴에서 구조된 기적적인 사건은 또 어떤가. 그러나 어떤 뉴스도 월드컵에 대한 열기를 누그러뜨리지는 못했다.


이제 월드컵은 프랑스와 크로아티아 간의 결승전만 남겨놓고 있다. 일요일 벌어지는 결승전에서 어떤 나라가 승리해 이번 월드컵을 손에 넣을 수 있을까. 한국이 예선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아쉬움은 남지만 대신 우리는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월드컵을 즐기고 있다. 비록 16강에는 오르지 못했지만 한국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세계 축구팬들에게 강인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달 24일 독일과의 경기에서 예상을 뒤엎고 2대0 승리를 거두었으며 대회 2연패를 노리던 독일은 일찌감치 짐을 싸야했다. 한국은 독일과의 한 경기로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세계축구 역사에 기적을 남긴 이날의 경기는 지금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이날의 경기를 당시 카잔의 언론은 이렇게 보도했다. “이 기적의 현장을 함께 한 당신들이 모두 증인이자 승리자다.”

유럽인들은 독일이 패하자 모두 환호성을 질렀다. 무엇보다 멕시코는 스웨덴에 0대3으로 지자 망연자실한 상태에 있다가 한국이 독일을 이겨주어 16강에 진출할 수 있게 되자 온 나라가 뒤집혀지다시피 하였다. 모든 국민이 한 목소리로 ‘코리아! 코리아!’ ‘비바 코리아!’를 외쳤다.

이처럼 한국은 독일을 이겨 세계인으로부터 수많은 찬사를 받았다. 16강 진입 실패에 대한 아쉬움은 온데간데없어지고 축구 그 자체를 즐기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2002년 한국이 월드컵 16강에 올랐을 때 거스 히딩크 감독은 “우린 아직 배고프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이 독일을 꺾음으로써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됐다. “누가 월드컵을 가져가느냐와 관계없이 우리는 배부르다.” 실제로 세계최강이었던 독일을 이겼는데 더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일요일 벌어지는 결승전이 끝나면 프랑스와 크로아티아 두 나라 가운데 하나가 월드컵을 안는 영예를 얻게 될 것이다. 월드컵의 주인공이 되는 나라는 챔피언이 되려면 반드시 상대할 수밖에 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최강팀 독일을 일찌감치 막아준 한국에 ‘고맙다’고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 이번 월드컵을 통해 기적을 낳은 주인공이 됐다. 그로 인해 우리가 맛본 기쁨과 감동, 감격과 환희는 그 어느 월드컵에서도 경험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큰 수확은 월드컵을 통해 얻게 된 새로운 자신감이다. 이번에 얻은 자신감은 4년 후 카타르 월드컵을 위한 든든한 자산이 돌 수 있을 것이다.

카타르 월드컵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한 달 동안 걱정과 시름을 잊고 스트레스를 마음껏 풀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혼신을 다해 뛰어 큰 기쁨을 안겨준 한국 축구선수단과 아울러 즐거움을 한껏 선사한 참가국 선수들 모두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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