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잉글랜드만 아니면 돼?” 영국내 이웃들의 복잡한 심정

2018-07-1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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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글랜드 선전에 웃지 않는 스코틀랜드·웨일스·북아일랜드

영국 테니스 선수 앤디 머리는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잉글랜드를 제외한 어떤 팀이든 응원한다고 말했다가 잉글랜드 팬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머리는 그런 맥락이 아니었다고 해명했고, 이후 2010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선 잉글랜드팀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머리의 고향 스코틀랜드를 비롯해 웨일스, 북아일랜드까지 영국(UK) 내 잉글랜드의 이웃들 사이에선 그때나 지금이나 머리와 같은 심정인 축구 팬들이 상당하다.


올림픽에서는 같은 '영국'팀으로 출전하지만, 서로 다른 국기를 달고 나가는 월드컵 등 축구 대회에서만큼은 세 지역에서 '잉글랜드만 아니면 된다'(ABE·Anyone But England)는 정서가 뿌리 깊다.

스코틀랜드 정치인들은 이러한 정서를 숨기지 않는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월드컵을 앞두고 잉글랜드 대신 아이슬란드를 응원하겠다면서 "잉글랜드가 잘하길 바란다. 이번에 우승하면 (잉글랜드가 우승한) 1966 월드컵 얘기는 더 듣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비꼬았다.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은 지난 3일(현지시간) 잉글랜드 출신 의원들이 콜롬비아와의 16강전 경기를 보지 못하도록 의회에서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는 의혹도 샀다.

USA투데이에 따르면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의 조사에서 스코틀랜드인의 35%는 잉글랜드가 월드컵 전 경기에서 패하길 바란다고 답했다.

웨일스나 북아일랜드의 상황도 비슷하다.

BBC 라디오 웨일스는 잉글랜드의 8강 진출 이후 농담 삼아 "이제 우리 모두 잉글랜드인이죠?"라는 트윗을 올렸다가 거센 역풍을 맞고 지워야 했다.


BBC는 "트윗을 잘못 올렸다"며 급히 사과도 했다.

웨일스축구협회는 BBC 트윗에 "우리는 여전히 웨일스인"이라고 답했다.

북아일랜드 지역의 BBC 라디오 얼스터의 진행자도 트위터에 "어느 때보다 잉글랜드인처럼 느낀다"고 썼다가 악플에 시달렸다.

잉글랜드 축구팀을 향한 영국내 이웃들의 '증오'는 영국에서 규모도 가장 크고 자원도 많은 잉글랜드를 향한 반감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스코틀랜드의 친(親)독립 성향 신문 더내셔널의 칼럼에서 "'영국만 아니면 돼' 정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영국의 구조적인 불균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준결승에서 난 강대국 잉글랜드에 맞서는 약소국 크로아티아를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잉글랜드팀을 응원하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엄연히 같은 국가인 데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팬들도 많아 잉글랜드의 선전을 기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그 반대의 목소리가 워낙 크다.

AFP통신은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 팬들로서는 평생을 습관을 버리고 잉글랜드팀을 응원하는 것이 쉽진 않을 것"이라며 "이번 대표팀이 호감을 살 만한 팀이긴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이 바뀌는 건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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