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트럼프, 분노 발작에서 무역전쟁으로

2018-07-09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작게 크게
트럼프, 분노 발작에서 무역전쟁으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해외 교역 상대국들을 겨냥한 도널드 트럼프의 공격은 어떤 의미로는 이민자들에 대한 그의 공격과 흡사하다.

이들 두 케이스에서 트럼프의 공격은 오직 그의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상대방의 악행에 대한 반응으로 틀지어졌다. 실제로 이민자들에 의한 강력범죄의 물결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MS-13이 미국의 여러 도시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는 그의 주장 역시 사실과 다르다.

유럽연합(EU)은 미국 상품에 ‘끔찍한’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 않다. (EU의 평균관세율은 3%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무역위기는 국경에서 발생한 인도주의적 위기와는 사뭇 다르다. 부모로부터 격리돼 우리 속에 수용된 어린이들은 보복을 하지 못한다.

반면 미국의 배신에 성난 상당수의 우방국을 포함한 외국 정부들은 보복을 할 수 있고, 또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정황은 트럼프와 그의 보좌관들이 아직도 이 같은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음을 가리킨다. 그들은 자신이 얼마나 위험한 입장에 처해 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지난 3월, 미국 정부가 국가 안보를 이유로 철강과 알루미늄 수입품에 관세를 물리고, 캐나다(!)에게 내린 이 같은 조치를 정당화한 이후, 백악관 무역 짜르인 피터 나바로는 예상되는 보복에 관한 질문에 “그 어떤 국가도 보복을 하지 않을 것으로 확신한다”며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미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한 교역 상대국 모두 미국에 무역흑자를 기록 중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난 일요일, 미국 수출량과 비슷한 규모를 수입하는 캐나다는 126억 달러어치의 미국 상품에 대해 보복 관세를 물리겠다고 발표했다.

유럽연합과 중국 역시 보복관세를 천명하고 나섰다. 좌파 대통령 당선자를 낸 멕시코도 그대로 넘어갈 태세가 아니다.

EU는 트럼프가 유럽산 자동차에 관세를 물릴 것이라는 협박을 행동으로 옮길 경우 3,0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상품에 보복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건 평상적인 무역 분쟁의 주고받기와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분명히 이해해야 한다.

1940년대 미국의 주도하에 정립되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의해 집행되는 세계 무역 규정은 일부 유연성을 허용한다. 예를 들어 수입급등에 직면한 국가들의 경우 일시적인 관세부가가 허용된다. 지난 2009년 버락 오바마가 중국산 타이어에 매긴 관세가 좋은 예다.

그러나 얼토당토않게 국가안보를 앞세운 트럼프 관세의 스케일과 동기는 이제까지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다. 지금 우리는 우리가 만든 게임의 법칙을 스스로 거부하고 있다. 이에 대해 EU는 미국 행정부의 결정을 “국제법 무시”라는 거친 표현까지 동원하며 강력히 경고했다.

이런 와중에서 미국의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Axios)는 트럼프 행정부가 WTO에서 탈퇴할 것이라는 내용의 법안 초안을 작성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지금 보란 듯이 세계 무역시스템 전체를 붕괴시키고, 국제 교역을 대폭 축소시키려들고 있다. 트럼프는 미국의 경제력과 그의 거래수완에 세계 전체가 굴복할 것이라 믿는 듯 보인다. 그는 폭스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모든 교역국가들이 매일 전화를 걸어와 저마다 ‘거래를 하자’고 통사정을 한다”고 주장했다.

그뿐 아니다. 트럼프는 U.S. 스틸사의 대표가 6개의 생산시설을 추가로 오픈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물론 사실과 다르다. 두 사람 사이에 그런 내용의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분명 무역전쟁을 향해 나아가는 중이고, 점차 고조되는 위기가 어떤 결말을 맺을지 예견하기 어렵다. 외국 정부들은 말 그대로 트럼프가 원하는 것을 도저히 내어줄 수 없다. 그들이 실제로 하고 있지 않은 일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들이 미국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물론 수출업체들 타격을 입을 것이다. 현재 수출업체들은 대략 1,000만 개의 일자리를 떠받치고 있다. 일부 수입 대체산업이 일자리를 추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직자들의 거주지에 제공되는, 이전의 것과 동일한 일자리는 분명 아닐 터이다. 무역 전쟁은 이렇듯 거대한 근로자들의 이동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현재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트럼프가 돕고자 하는 산업분야의 업체들마저 정책전환을 촉구하며 거세게 항의하고 있다는 점이다.

제네럴 모터스(GM)은 트럼프가 제안한 자동차 관셰가 “투자와 일자리 감소는 물론 우리 노동자들의 임금하락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자동차&장비제조업협회는 “비생산적인 일방적 조치는 국가안보를 보호하는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할 뿐 아니라 미국의 일자리와 경제 성장을 잠식하게 될 것”이라며 트럼프 행정부에게 뒤로 물러서라고 촉구했다.

이들 산업체들이 제대로 이해를 하는데 비해 트럼프와 그의 일당이 놓치고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국제경제는 무역흑자를 기록한 쪽이 무조건 승리하는 단순한 게임이 아니며 글로벌 공급체인의 혼란은 거의 모든 국가에게 해가 된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가 말했듯 트럼프 행정부는 여전히 귀머거리 장님 행세를 하고 있다. 다른 행정부라면 관세로 말미암아 상대국들의 보복과 업계의 저항, 대량 실직이 일어나는 상황을 보며 그들이 무언가 잘못된 길로 접어들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하지만 현 행정부는 전혀 아니다.

단지 개인적인 생각일 뿐이지만, 나는 대다수의 비즈니스, 혹은 대부분의 금융시장 투자가들이 무역전쟁 으름장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고 본다.

이들은 너무 늦기 전에 사태가 진정될 것이고, 어른들이 앞장서 상황악화를 막아낼 것이라 믿고 있는 듯 행동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분노발작에 맞춰 정책을 입안하는 트럼프 행정부 내부에 어른은 단 한명도 없다. 본격적인 무역전쟁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듯 보인다; 사실 무역전쟁은 이미 시작됐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