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콩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

2018-07-02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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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을 둘러싼 거대한 음모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트럼프 행정부는 세 개의 전선에서 무역전쟁을 치르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모두가 알다시피 현재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 유럽연합(EU) 및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파트너 국가들과 세 갈래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이에 따른 경제적 낙진(fallout)은 분명 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다: 국외뿐 아니라 국내에서의 정치적 낙진 또한 그에 못지않게 지저분할 것이다.

단언하건대, 강경한 무역정책의 불리한 측면이 분명하게 드러나면 트럼프 대통령과 그 일당은 책임을 전가할 희생양을 찾기 위해 눈에 쌍심지를 켤 것으로 예상된다. 사실 희생양 물색작업은 이미 시작됐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파악하려면 먼저 두 가지 중요한 포인트부터 이해해야 한다.

첫째, 트럼프 행정부는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무역에 관한 그들의 생각은 현 상무부장관인 윌버 로스와 트레이드 짜르인 피터 나바로가 지난 2016년 내놓은 백서의 내용에서 단 한 발자국도 전진하지 못했다.

문제의 백서는 무역 전문가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든 완전한 무지의 표본이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앞으로 닥칠 역풍에 전혀 대비가 안 된 상태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둘째, 트럼프 행정부는 음모론자들이 들끓고 있다. 문자 그대로 말도 안 되는 음로론을 믿는 자만이 고위 공무원으로 기용되는 분위기다.

음모론을 다루는 웹사이트 운영사에서 일했다는 보도가 나간 후 정직처분을 받은 보건복지부 여성 관리의 케이스를 기억할 것이다.


문제의 여성은 임용시험에 응시할 당시 그녀는 자신의 이력서에 해당 웹사이트에서 일한 경력을 명시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녀는 편집광적 정치 사이트와의 연관성에도 불구하고 합격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런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채용됐다.

이렇듯 심각한 정부의 무지와 만연된 음모이론이 만나면 과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우선 무역전쟁의 역풍부터 생각해보자. 트럼프는 “무역전쟁은 좋은 것이고,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무역 전쟁이 좋다는 말에 더 이상 신경 쓸 것 없다: 이미 무역전쟁을 “쉽게 이길 수 있다”는 주장 자체가 망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상대 국가들은 미국의 요구에 순순히 굽히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미국이 제시한 요구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유럽을 향해 실체조차 없는 ‘끔찍한 관세’를 끝내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유럽은 트럼프의 비난과 달리 미국 상품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고 있지 않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원하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중국 관리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변덕스럽다는 비난을 되풀이 한다.

여기에 트럼프가 전 세계를 향해 뿜어낸 엄청난 악의까지 곁들여 생각해보면 미국이 조만간 상대국들로부터 중요한 양보를 이끌어 내리라는 주장이 잠꼬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솔직히 미국이 장군멍군식의 보복조치를 피해가거나 전면적 무역전쟁에 휩싸이지 않을 가능성이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물론 일부 수입업체들은 무역전쟁으로 득을 볼 수 있을지 몰라도 그보다 훨씬 많은 미국인들이 쓴 맛을 톡톡히 보게 될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일자리 증발이다. 연방 상무부에 따르면 무려 1,000만 개의 일자리가 수출산업에 의해 지탱된다. 특히 농업은 전체 수확량의 20% 이상을 외국에 판매하는 수출-중심적 분야다.

무역전쟁은 이들 일자리 가운데 상당수를 없애버릴 것이다. 반면 수입업 분야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창출될 것이지만 무역전쟁으로 실직한 사람들이 이제까지 해온 것과는 전혀 성격이 다른 업무일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되면 상당한 혼란이 불가피하다.

물론 이로 인한 데미지가 수출업에 국한되는 것도 아닐 터이다. 트럼프의 관세 대상 가운데 미국 수입품의 절반이상, 그리고 중국상품의 95%는 다른 재화를 생산하기 위해 사용되는 중간재 혹은 자본재다.

따라서 무역 전쟁이 발발하면 생산 경비가 올라가고, 설사 수출업체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러 업종에 종사하는 기업들의 수익전망이 심각한 타격을 입게 된다.

무역정책의 국내 피해자들이 불평하기 시작한다면 음모론에 푹 빠진 트럼프 행정부가 과연 어떻게 반응할까? 우리는 이미 그 예고편을 보았다.

지금까지는 본격적인 무역 전쟁이라기 보다 소소한 다툼이 일어나는데 불과했다. 그러나 이 정도만으로도 중국으로 수출되는 미국산 콩의 가격이 급락한 반면 철강가격은 치솟았다. 당연히 농부들과 철강을 사용하는 기업들은 긴장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 정부는 아마도 이렇게 말해야 한다. “강경한 입장을 취하려면 당연히 약간의 비용은 각오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게 아니다. 대신 로스는 가격변화를 “부당이익을 취하려는 반사회적 투기세력 때문”이라고 일갈하며 관계당국의 조사를 촉구했다.

자, 여기서 알 수 있듯 우리는 예측 가능한 정책효과가 아니라 정부가 주장하는 종잡을 수 없는 반 트럼프(anti-Trump) 음모론을 보고 있는 중이다.

기억하라. 콩과 철강은 앞으로 있을 혼란의 소소한 예고편에 불과하다. 무역 전쟁이 전면적으로 시작된다면 트럼프 행정부는 그 무서운 역풍에 어떻게 대응할까?

정책효과를 잘못 판단했다고 시인할까? 물론 아니다.

그보다 자신들 대신 욕을 먹을 너저분한 이유들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무역충돌의 부정적 측면을 자신의 행동이 아니라 조지 소로스와 불순한 암흑정부(deep state) 탓으로 돌릴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MS-13 갱단에게 어떻게 책임을 뒤집어씌울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시도를 할 것만은 분명하다.

요점은 무역전쟁의 정치학은 아마도 일반적인 트럼프 정치학과 비슷한 형태로 끝날 것이다. 악마로 만들기 위해 선량한 사람을 찾는 것이 트럼프 정치의 요체이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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