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욱일승천기와 뉴욕한인

2018-06-30 (토)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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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딜 가나 러시아 월드컵이 화제다. 27일 오전에는 한국과 독일 전을 보면서 오랜만에 축구를 즐겼다. 해외주요 배팅 사이트가 독일이 한국에 7:0으로 승리한다는 추측을 비웃듯 한국이 후반 추가시간에 두 골을 넣어 2:0으로 승리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위인 독일을 이기다니, 한국 선수들, 참으로 멋지다.

16강 진출을 못하면 어떤가. FIFA 소속 211개국 중 한국은 랭킹 57위인데 32개국만 본선 진출하는 경기에 출전한 것만 해도 잘한 것이다, 또 아시아 국가 중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지 않은가. 응원 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다.

그런데 이 지구촌이 모두 열광하는 스포츠 제전에 군국주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다. 태평양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간 ‘욱일승천기’가 2018 러시아 월드컵에 등장한 것이다. 24일 일본과 세네갈의 H조 조별리그 2차전에서다. 일본이 세네갈에 2대 1로 뒤진 후반 33분 혼다가 극적인 동점골을 넣자 일본 팬들은 난리가 났는데 뒤쪽 관중석에서 욱일승천기가 힘차게 펄럭이는 것이 TV 화면에 잡혔다.


욱일승천기는 일본의 국기인 일장기의 붉은 태양 문양 주위로 붉은 햇살이 퍼져나가는 모양을 형상화 한 깃발이다. 1945년 일본이 2차세계대전에서 패배하면서 욱일승천기의 사용은 금지됐다.

그런데 이 욱일승천기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도 등장했었다.

심지어 2014년 FIFA는 주간지 ‘FIFA THE WEEKLY‘에서 일본선수들의 활약상을 소개하며 표지에 욱일승천기를 그려 넣었다가 비난이 커지자 일장기 디자인으로 변경한 바 있다. 어이없게도 지난 5월 19일에도 FIFA 월드컵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 욱일기 모양을 얼굴에 그린 응원단 사진이 올라와 거센 항의 끝에 사진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

그 반면, 러시아 월드컵에서 ‘나치 경례’를 한 영국 팬은 잉글랜드축구협회로부터 5년간 축구 경기 입장 금지령을 받았다. 그런데 FIFA는 욱일승천기 논란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는다.

FIFA 처벌규약 64조에 따라 상대팀에 모욕감을 주거나 정치적으로 인식되는 슬로건을 내보이는 행위는 이유 불문하고 금지된다고 되어있다. 그럼에도 욱일승천기가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알고도 무시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작년4월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 리그 수원 삼성과 가와사키 프론탈레 경기에서 욱일승천기가 등장했는데 AFC는 가와사티 프론탈레 구단측에 벌금 1만5,000달러 징계를 내린 실례가 있다. 아시안들에게는 나치의 상징과 같은 이 깃발이 뉴욕에 등장했다 하면 분노한 한인들에게 혼이 난다. 뉴욕과 뉴저지 전범기 퇴출을 위한 시민모임도 있다.

2013년 브루클린 개발지역 도로변 벽화에 대형 욱일승천기가 등장하자 뉴욕한인들은 벽화 관할처에 항의하여 결국 이 벽화가 철거된 일이 있다. 또 뉴욕시 홍보물에 욱일승천기 이미지가 사용되자 뉴욕한인학부모협회가 항의서한을 보냈었다.


미술품과 디자인에 이 깃발 모양이 사용되는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에 대해 화가나 디자이너들은 강렬한 이미지로 택한 것뿐이라 변명한다.

그러나 엄연히 욱일승천기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인식 부족이다. 모르면 알게 해야 한다. 욱일승천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편지, 포스터, 영상 제작 등으로 지속적으로 알리고 깨우쳐 주어야 한다.

2026년 월드컵 개최지로 미국, 캐나다, 멕시코 북중미 3개국 연합으로 결정됐다. 미국에서 80경기 중 60경기가 열린다. 뉴저지주 이스트 러더포드의 메트라이프 스테디엄에서는 결승전도 열린다. 다시는 월드컵에 욱일승천기가 발 못 붙이게 아무래도 뉴욕한인들이 미리부터 나서야 될 것 같다.

<민병임 뉴욕지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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