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비인도적” 비난 봇물에 트럼프 이례적 후퇴

2018-06-21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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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법입국 아동-부모 격리수용 폐지

▶ 언론·공화당·심지어 가족들도 반대에 굴복, 전원 기소·구금‘무관용 정책’은 유지 밝혀

“비인도적” 비난 봇물에 트럼프 이례적 후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0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가족 분리 수용 정책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고 있다. 왼쪽은 커스틴 닐슨 국토안보부 장관, 오른쪽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 [AP]

비 인도적 아동학대라며 여론의 집중 포화가 계속됐던 미국 밀입국자와 동행한 미성년 자녀를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격리 수용하는 정책은 2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폐지 행정 명령에 서명하면서 시행된지 한 달 여만에 폐지됐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이른바 불법 입국자를 추방 절차 대신 모두 기소해 구금하는 ‘무관용 정책’의 나머지 부분은 유지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까지만 해도 아동 격리 수용 정책의 불가피성을 적극적으로 설파해왔다.


그는 전날 미국자영업연맹(NFIB) 행사에서 “부모로부터 아이를 격리하고 싶지 않지만, 불법 입국하는 부모를 기소하려면 아이를 격리해야 한다”면서 “밀입국하는 부모를 기소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라고 강조했었다.

그는 또 민주당이 불법 이민자들을 “잠재적 유권자”로 본다고 주장하며 이번 격리 논란을 포함한 모든 사태가 민주당의 입법 비협조 때문이라고 비판해왔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해명과 반박에도 불구하고 격리 정책에 대한 비난은 미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 만큼 급속도로 커졌다.

인권단체와 일반 시민들로부터 시작된 반대 캠페인은 재계에 이어 주지사들과 의회로 번졌고, 외국의 정부와 단체들에서도 비판에 가세할 정도였다.

최근 아이들이 철망으로 둘러싸인 수용소에 부모와 격리된 광경과 아이들이 부모를 찾으며 우는 목소리가 방송 뉴스 등을 통해 전파되자 미국 사회에서는 도덕성 논란과 함께 분노의 목소리가 나왔고, 공화당에서는 오는 11월 중간선거에 미칠 부정적 영향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공개적으로 비판에 나섰고 프란치스코 교황까지 이번 사태가 유감이라는 반응을 내놨다. 메이 총리는 격리된 아동들이 철장과 같은 곳에 갇혀 지낸다며 “매우 불쾌하다”고 말했다.

케이블 뉴스를 즐겨보는 트럼프 대통령은 격리 수용이 정치적 문제로 비화하는 것을 인식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백악관 관계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특히 부인인 멜라니아 여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강하게 요구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장녀 이방카도 격리 수용 문제에 우려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방카 백악관 보좌관은 행정명령 서명 직후 트위터를 통해 감사의 뜻을 표했다.

이방카는 “우리 국경에서 가족들의 별거를 끝내는 중요한 조치를 해준 데 대해 대통령께 감사드린다”면서 “의회는 지금 우리가 공유하는 가치와 일치하는 지속적인 해법을 찾아 행동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부 장관은 기자들과 만나 국토안보부가 요청하면 이민자들을 군 시설에 수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언론에 따르면 세관국경보호국(CBP)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지난 5월 5일부터 이달 9일 사이에 어린이 2,342명을 부모로부터 격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결정은 하원이 밀입국자와 미성년 자녀를 함께 수용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이민법안을 표결에 부치기로 한 뒤에 나왔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은 이날 오전 기자들과 만나 “우리는 아이들이 부모에게서 떨어져 있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다음날인 21일 이러한 내용의 이민법 개정안을 표결하겠다고 밝혔다.공화당 상원의원들 역시 이날 밀입국자와 미성년 자녀를 함께 수용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라이언 의장은 이 법안에 ‘다카(DACA·불법체류청년 추방유예 프로그램)’ 폐지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도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지만, 나머지 내용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알리지 않았다.

다카는 어린 시절 부모와 함께 불법 이민해온 미국에서 학교와 직장을 다니는 청년(일명 드리머)의 추방을 유예하는 제도로, 지난 3월 폐지가 확정됐지만, 여야가 합의했던 후속 대체 입법이 여전히 이행되지 않고 있다.

멕시코계가 다수인 다카 수혜자는 약 70만~80만 명 정도로 추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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