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외화내빈, 속빈 강정

2018-06-20 (수)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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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화내빈, 속빈 강정
트럼프와 김정은의 싱가포르에서의 정상회담은 역시 겉만 번지르르 했지 내용은 빈약하기 짝이 없는 속빈 강정 모양이다. 한 페이지가 못 되는 공동성명은 북한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만 있을 뿐 비핵화에 대한 정의, 비핵화 과정의 시간표, 확인사항 등의 요건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었다. 즉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은 들어있지만 검증가능하고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란 표현은 쏙 빠졌다. 왜 그렇게 되었는가라는 한 기자의 질문에 트럼프는 시간이 없어서라는 애매한 대답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안전보장” 즉 김정은 체제의 안전보장을 약속했다는 내용이 성명서 전문에 나온다. 김정은과 트럼프가 핵전쟁도 불사하겠다고 위협을 주고받던 2017년과 비교하면 적어도 서로 만나 외교담판을 벌였다는 것 자체에 큰 점수를 줄 수 있다는 게 한국과 아시아 주변국가들의 반응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북한으로부터 받은 양보에 비해 너무나 많은 것을 김정은에게 내주었다고 혹평을 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김정은에게 미국 대통령과 동격이 되게 기회를 주는 대가로 김에게서 더 구체적 양보를 받아냈어야 마땅하다는 시각이다. 그리고 회담 후 ABC 방송 등 미국 언론기관들과의 회견에서 트럼프가 김정은을 크게 칭찬한 것은 “누가 누굴 가지고 놀았는가” 라는 의문마저 일으킨다.


친척들을 포함해서 함부로 사람들을 죽이는 김정은을 어찌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그의 나라는 그를 사랑한다. 그의 백성, 그들의 열광을 볼 수 있다. 그들은 대단한 열광을 표현한다”라고 한 트럼프의 대답에는 정말로 할 말을 잃게 된다. 불과 7~8개월 전 트럼프 자신이 한국국회에서 한 연설 내용과 비교해보면 그렇다.

“북한 사람들의 공포에 쌓인 생활은 북한인들이 외국의 노예로 팔려가기 위해 관리들을 매수한다는 데서 볼 수 있다. 전체주의의 압제 아래서 인민들의 집은 언제라도 수색당할 수 있고 그들의 활동은 감시되고 있다. 북한사람들은 잠자는 시간을 빼놓고는 항상 국가의 선전에 노출되어 있다. 북한은 사교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다”

정상회담 후 트럼프는 몇 달 전의 연설과는 정반대로 김정은에 대한 찬양일색이다. 김정은은 “대단히 솔직하고” “대단히 영예롭고” “대단히 똑똑하고” “대단히 가치있는” 지도자로, “옳은 일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는다. 고모부 장성택의 잔인한 숙청을 어느 기자가 지적하자 트럼프는 “26세의 지도자로서 통치권을 확보하다보니” 불가피한 강경정책이었다고 김정은의 대변인 노릇을 자처하기까지 한다.

더군다나 공동성명에도 나오지 않는 (북한과 중국의 표현대로) “도발적인 전쟁게임”을 중단시킨다는 트럼프의 회담 이후 발언은 한국정부마저 놀라게 만들었다. 미 국방성과의 사전조율이 전혀 없었던 거의 즉흥적인 착상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트럼프가 대북제재를 오래지 않아 풀어준다는 언질을 주었다는 관측도 있다. 트럼프가 아이패드로 김정은에게 보여주었다는 백악관 제작의 4분짜리 영상물은 트럼프와 김정은의 새 역사 개척으로 가능해질(?) 북한의 찬란한 미래조감도를 보여준다. 트럼프 조직의 투자 가능성 때문인가?

왜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엄청난 양보를 했을까.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들보다 독재자들을 선호 편애하는 그의 평소 습성이 한 몫 했을 것이다. 그러나 뮬러 특별검사의 묵묵하지만 끈질긴 수사로 그가 느끼는 위기의식 때문일 수 도 있다. 노벨평화상을 받을 가능성에 더해 한미 군사훈련 중단으로 엄청난 비용을 절약한다는 것을 부각시키면 금년도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의 연방의회 다수당 확보를 막아, 러시아 스캔들과 관련한 탄핵을 면할 수 있다는 치밀한 전략일 수도 있다.

한편 리얼리티쇼 주인공으로서의 경험 때문에 김정은과의 세기적(?) 악수와 회담으로 세계의 이목을 자신에게 끌어 모으는 것 자체로 느끼는 쾌감이 트럼프를 그 같은 파격적, 비정상적, 돌출행동과 발언으로 이끌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김정은의 쇼는 정말 한반도의 비핵화 평화를 이룩할까? 아니면 다음 위기까지의 막간 여흥일까?

<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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