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무역 전쟁의 전운

2018-06-19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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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도구를 사용하는 동물’로 불렸다. 한 때 도구를 사용할 줄 아는 것은 인간뿐인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자연 상태에서 나뭇가지를 이용해 개미굴에서 개미를 낚는 침팬지의 모습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인간은 ‘언어를 사용하는 동물’로 불리기도 했다. 이 또한 사실이 아니다. 침팬지도 훈련을 시키면 인간의 언어를 습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1967년 서아프리카에서 태어나 인간에게 잡힌 후 워싱턴 주 와쇼에서 길러진 와쇼라는 침팬지는 350개의 단어를 이해하고 구사할 줄 알았으며 이 중 일부를 자식에게 가르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 번도 목격되지 않은 장면이 있다. 원숭이와 토끼가 협상을 통해 바나나와 감자를 주고받는 장면이다. 사농공상의 위계질서가 사회를 지배하던 조선에서 상행위는 천한 일로 취급 받았지만 상행위야말로 인간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우선 어떤 물건이 누구에게 속하는가에 관한 소유 개념이 선행돼야 하고 어느 물건이 얼마만한 가치가 있는지에 관한 가치 판단력이 따라야 한다. 거기다 내 물건과 상대방 물건이 등가라는 사실을 협상을 통해 납득시킨 후 합의에 도달해야 하고 이 합의를 법적으로 강제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선사시대에도 인간 사이의 물물 교환은 있었겠지만 본격적으로 상행위가 이뤄진 것은 문명 시대 이후다. 이 때부터 인간 사회의 수준이 현격히 높아진 것이 활발한 상행위와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상행위는 수많은 물건을 한 사람이 다 만들지 않고 잘 하는 것 하나만 해 그 결과물을 바꿔 먹는 분업을 가능케 해 기술 혁신의 원동력이 된다. 시장의 규모가 클수록 분업의 심도는 강화되며 그럴수록 창출되는 부의 양도 커진다. 이것이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 ‘국부론’의 요지다.

개인 간의 상행위를 국가 수준으로 확대한 것이 무역이다.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세계 부의 규모가 급속히 증가한 것은 세계 전체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면서 분업이 어느 때보다 심화되고 생산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2차 대전 이후 세계 경제를 지탱하던 자유 무역 체제가 근본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이를 흔드는 것이 지금까지 이를 이끌어온 미국이라는 사실은 역설적이다. 최근 전통적인 우방인 캐나다와 멕시코, 유럽 연합의 철강과 알루미늄에 ‘국가 안보’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한 미국은 지난 주 중국산 물건 500억 달러에 25%라는 대대적인 관세 장벽을 쳤다.

중국은 이에 맞서 똑같이 500억 달러에 같은 세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중국이 보복 관세를 부과한 물품은 미국 농산물과 자동차 등으로 트럼프 지지자들이 많은 주와 산업을 겨냥하고 있다.

트럼프는 중국이 이를 시행할 경우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나오고 있는데 이럴 경우 중국도 보복의 수위를 높여갈 것이 뻔하다. 이렇게 되면 피해를 보는 사람은 물류업자만이 아니다. 양국의 수출입 물량은 줄어들 것이고 이들을 만들던 공장은 직원 수를 줄일 것이며 소비자들은 값싼 수입품 대신 비싼 대체재를 찾아야 한다.


중국은 또한 미국의 최대 채권국이다. 미국에서 매년 발생하는 수천억 달러의 재정적자에도 불구 15년 장기 국채 수익률이 3% 이하로 남아 있는 것은 중국 무역 흑자로 번 돈으로 이를 사주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국채 매입을 중단하거나 매각할 경우 수익률 급등은 불가피하며 이에 기초한 모든 금리가 오르게 돼 가계나 기업, 국가 모두 이자 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1929년 주가 폭락과 함께 대공황이 찾아오자 1930년 미국은 ‘스무트-홀리법’을 통과시켜 대대적인 관세 장벽을 세웠고 상대국들은 보복 관세로 맞섰다. 미국인의 일자리를 지키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진 이 법이 오히려 불경기를 더 악화시켰다는 것이 경제학자들의 공통된 견해다. 미국이 지난 70여 년 동안 자유무역 체제를 유지해 온 것은 이 때의 교훈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년 미국이 캐나다와 멕시코에서 수입한 상품은 6,000억 달러, 중국 5,000억 달러, 유럽 4,500억 달러에 달한다. 미국 전체 수입량의 2/3에 달하는 수치다. 이들 국가 간에 무역 전쟁이 심화될 경우 경기는 둔화되고 실업자는 늘어나며 금리와 인플레는 상승할 것이 분명하다. 트럼프는 지금이라도 불필요한 무역 전쟁으로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일을 중단하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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