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파국적 대실패’, 그 의미는…

2018-06-18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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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력은 ‘2018년 6월 18일’을 가리키고 있다-. 그날, 그러니까 트럼프 미국대통령과 김정은이 대좌(對坐)를 한 날부터 분명히 한 주 밖에 안 된다. 그런데 꽤나 길게 느껴진다. 그 날 전과 후로 세상이 달라졌다고 할 정도로.

화두는 오직 ‘평화’다. 전쟁위기를 이야기하면 냉전시대 인물인 양 취급된다. 6.12 싱가포르 미-북 정상회담 이후 한국의 분위기가 그런 모양이다.

‘불감청(不敢請)이언정 고소원(固所願)이라’했나. 문재인 정부로서는.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 말이다. 트럼프가 북한식 표현을 원용해 ‘도발적일 수 있다’는 이유로 김정은에게 통 큰 양보를 했다. 그래서인지 더더욱 오직 평화의 담론만 활개 치는 것이 한국적 상황으로 비쳐진다.


미국의 분위기는 다르다. 기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외교적 대참사로 기록 될 것 같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반전되고 있다.

TV로 비쳐주는 리얼리티 쇼로 안성맞춤의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다. 게다가 미국 대통령이 북한이라는 폭정체제 수령을 만난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역사적이다. 감동적이다.

커튼은 올라가고 합의문이 발표됐다. 그 수준이 그런데 의외로 낮았다. 의구심이 들 정도로. 그러나 북한 비핵화에 대한 뭔가 막후거래가 있겠지 하는 것이 일반의 기대였다.

이런 기대와 함께 전문가들의 평가도 반반으로 나뉘었다. 공화당과 보수우파 논객들의 평가는 미-북 관계에 한 이정표를 이룩했다는 것으로 비핵화 가능성을 높이 샀다. 민주당과 진보 논객들의 평가는 소리만 요란했지 전혀 실속이 없다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루, 이틀… 한 주가 지나면서 막후에서 벌어졌던 일들도 하나 둘 알려지기 시작했다. 내려진 결론은 거래 같은 것은 없었다는 것. 그러니까 트럼프의 일방적 양보만 있었다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은 사전에 협의된 것이 아니다. 회담 중 김정은이 요청하자 트럼프가 그 자리에서 받아들인 것이다.” 타임지의 보도다. 만사에 충동적(impulsive)인 트럼프가 즉흥적으로 내린 결정으로 트럼프 보좌진들도 적지 않은 당혹감을 보였다는 거다.

외교적 관례, 전통을 무시하는 트럼프 특유의 그 ‘충동적 외교’는 단기적이고 가시적 이해추구에만 급급해 위험한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 타임지 보도의 포인트다.


전문가들을 동원해 내린 브루킹스연구소의 정상회담 평가는 더 부정적이다. 극히 실망 적이라는 것이 총평. 그리고 한국, 일본은 물론 펜타곤과의 사전 상의도 없이 내린 한미연합훈련 중단 결정은 동맹국에 대한 신뢰를 져버리는 행위라는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같은 결정을 함으로써 ‘최대압력’(maximum pressure)정책은 김정은이 책략을 부릴 여지만 최대로 넓혀주는 쪽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을 가하고 있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70년 역사의 한미동맹 약화만 불러왔다’-. 주한미군철수 가능성을 비쳐왔다. 그 트럼프가 일방적으로 내린 한미 연합훈련 중단조치와 관련해 워싱턴 포스트의 파리드 자카리아가 내린 결론이다.

친 트럼프로 분류되는 논객과 매체들도 충동적인 트럼프의 행보에 차가운 시선을 내보이기는 마찬가지다. “미국은 핵 공갈에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그 미국을 세계는 경멸할 것이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의 지적으로, 위클리 스탠다드, 폭스(FOX) 등 보수성향 매체들 대부분이 부정적 입장이다.

관련해 새삼 주목되는 것은 트럼프의 싱가포르 쇼는 ‘파국적 대실패’(catastrophic failure)가 될 수 있다는 일각에서의 진단이다. 외교는 실패라는 판정이 나면 사람들은 대안을, 다시 말해 군사조치를 바라본다는 것이 ‘파국적 대실패’의 정의다.

비핵화 약속에 대해 북한이 구체적 어떤 행동을 취할지 그 진정성을 파악하려면 최소 한 달에서 6개월은 지켜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회담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판정을 내리기에는 시기상조의 감이 있다.

그러나 회담이 끝난 지 한 주밖에 안된 시점에서 벌써부터 비핵화에 대해 미국과 북한은 현격한 입장 차이를 드러나고 있다. 북핵문제 전문가인 루이스 미들버리는 미국과 북한의 발표 내용을 보면 서로 전혀 다른 회담을 한 것 같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의 비밀보고서를 인용한 악시오스지 보도도 비슷한 지적을 하고 있다. 미국정부가 그동안 주장해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와 정상회담에서 합의된 ‘완전한(complete)비핵화’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있다는 거다. 이 같은 지적과 함께 앞으로 전개될 지루한 검증과정에서 북한은 다른 생각을 품을 수도 있다는 거다.

그 다음에 오는 사태는 그러면. 군사옵션 사용 밖에 없다는 것이 데일리 비스트지의 진단이다. 타임지도 비슷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충동적인 트럼프는 속임을 당했다고 느꼈을 때 바로 미사일로 응수 할 가능성이 크다’는 악몽의 시나리오를 제시하고 있다.

그나저나 문제는 한국이 아닐까. 북 핵 위협의 당사자이다. 그런데 제 3자인 양 중재자 역할을 자임해왔다. 그 과정에서 지나치게 북한과 중국에 밀착, 워싱턴의 불만을 쌓아왔다. 그 결과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 같은 중요 조치도 북한에 먼저 통보하는 상황을 맞은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비핵화보다 동맹의 형해화(形骸化)가 먼저 찾아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바로 그게 걱정이 돼 하는 소리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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