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역사적인 첫 걸음

2018-06-15 (금)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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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북한은 핵개발에 몰두하다 보니 심각한 식량난으로 수많은 주민들이 목숨을 잃고 아직도 절대 다수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정은의 체제유지를 위한 온갖 만행과 탄압에 주민들은 꼼짝 달싹 못하고 인권유린을 당해 왔다.

알다시피 김정은은 자신의 고모부 장성택까지 공개처형하였으며 이복형 김정남을 두 여성의 독극물 테러로 살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또 마음에 안 드는 고위 간부들도 줄줄이 고사기관총 등으로 처형하는 잔인함을 거침없이 보여 왔다. 세계 최악의 빈곤과 인권탄압을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쓴 탈북자들의 행렬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북한동족 2,500만명의 자유와 인권을 마음대로 짓밟고 그들의 고귀한 생명을 담보로 온갖 탄압과 만행을 저질렀던 김정은이 이제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며 어두움의 장막을 걷고 세상 밖으로 나왔다. 전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인민복 차림의 김정은이 마침내 싱가포르 카펠라섬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6월12일 역사적인 세기의 북미 정상회담, 70년간 으르렁 거리며 적대관계에 있던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자리를 같이 하고 악수를 나누는 역사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이를 바라본 우리들은 기대와 설렘, 감격과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두 정상이 서로를 비하하는 말폭탄을 서슴없이 토해왔기 때문이다. 김정은에게는 꼬마 로켓맨, 병든 강아지, 트럼프에게는 늙다리 전쟁 미치광이, 늙다리 전쟁상인 등등...

이런 두 정상이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으며 우리 민족은 또 얼마나 가슴 졸이며 지켜보아 왔는가. 남북한 민족은 6.25전쟁을 겪은 후 피눈물 나는 고통과 씻을 수 없는 통한의 슬픔을 견뎌왔다.

이날 우리 민족은 한 순간 한순간을 놓치지 않고 이들 두 정상의 움직임과 이들의 사소한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두 정상의 만남으로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종식되고 평화가 도래해 남북한이 서로 안심하고 왕래하며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염원이 간절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우리는 두 정상이 손을 마주 잡고 기념촬영 후에 시작된 40분간의 단독회담, 100분간의 확대회담후 마련된 업무오찬에 이어 회담 공동선언문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애를 태우며 기다렸는가. 예상보다 불확실한 합의문 결과에 아쉬움이 있는 것은 사실이나 이런 자리만으로도 평화의 길로 가는 첫 단추가 우선 끼워졌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어떻게든 김정은의 잘못된 행보와 만행은 이번 회담을 계기로 끝을 내야 한다. 그것은 미국이 북한으로부터 완전한 비핵화의 행보를 확실하게 얻어내는 길이고, 미국은 약속대로 북한의 체제안정과 경제부흥을 보장해 주어 북한의 모든 주민이 경제적인 번영 속에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길이다.

이번 두 정상의 공동합의문 서명으로 한반도는 이제 평화의 역사적인 첫걸음을 내딛었다. 전 세계 앞에 새 출발을 공표한 북미 양국은 앞으로 이번 기회를 계기로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양국 간의 관계개선과 북한과 한반도의 미래를 새롭게 발전시켜나가기를 기대한다. 북한도 김정은의 말대로 과거를 묻고 그동안의 잘못된 관행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제번영과 체제안정을 꾀해 자유와 평화를 마음껏 구가할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희망한다.

뭐든 한 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이제 다음 주부터 양국 수뇌가 비핵화의 구체적인 협의에 들어간다고 한다. 이제 북한은 새로운 길, 새 시대로 가는 길목에 평화의 문만 활짝 열면 살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김정은은 되돌릴 수 없는 완전한 비핵화의 수순을 밟아야 한다. 이것은 오로지 합의문을 이행하려는 그의 확실하고도 진정성 있는 태도에 달려 있다.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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