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새로운 ‘비핵화 여정’ 시작한 북미정상회담

2018-06-14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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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비핵화 여정’ 시작한 북미정상회담

남성욱 고려대 행정전문대학원장

초현실적인 공상과학(SF) 영화 같은 새로운 장이 국제정치에서 열렸다. 세기의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은 화려하게 막이 올랐고 환상적으로 종료됐다. 전 세계 3,000여 보도진의 열띤 취재 열기 속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를 위한 첫발을 내디뎠다. 한반도의 냉전과 분단을 해소하고 평화를 이루기 위한 기념비적인 발걸음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 ‘영광(honor)’이라는 최고 존칭의 단어를 사용하는 등 회담 성공에 주력했다. 김 위원장의 ‘여기까지 오는 길이 쉬운 길은 아니었다’는 표현은 그동안의 여정이 수많은 가시밭길이었음을 상징한다. 따라서 역사적 첫 대면은 화기애애하면서도 긴장된 분위기가 역력했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과 3대 세습의 독재국가 지도자 간의 이질적인 만남이었지만 분위기는 역대 정상회담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많은 진전이 이뤄졌다고 언급했다. 특히 “정말로 환상적인 회담”이었으며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다른 사람이 해보지 못한 과업을 오늘을 기회로 시작해볼 결심이 서 있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전에 1분이면 상대의 진정성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한 만큼 단독회담에 긴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결국 비핵화와 대북 체제안전 보장을 교환하는 ‘세기의 빅딜’이 합의돼 공동선언문이 마련된 만큼 초스피드의 확대회담이 필수적이었다.


이제 양측은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넜다. 정상들은 비핵화와 관계 정상화라는 핵심주제를 총괄적으로 맞교환해 난국을 돌파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굉장히 기쁘다. 이 문서는 매우 포괄적인 문서이고 아주 좋은 관계를 구축하게 될 것이며 양측이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새 출발을 알리는 서명”이라면서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절차가 매우 빨리 시작될 것”이라고 언급해 신속한 비핵화 여정을 예고했다. 양측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갈 것을 약속한 것이다. 당연히 2·3차 정상회담도 평양과 워싱턴에서 진행될 것이다. 다만 구체적인 비핵화 의제와 일정이 명기되지 않음으로써 향후 이행을 둘러싸고 극심한 진통은 불가피할 것이다. 특히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라는 표현 대신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모호한 단어가 수록돼 실무 차원의 지난한 노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이러한 구조적인 합의문의 한계는 미국 의회를 설득하는 데 상당한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 ‘과연 전임 3명의 대통령이 이런 합의문을 도출하지 못해 북미 정상회담을 하지 않았는가’하는 반문이 나오면서 미국 내부의 논쟁이 가열될 것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에 대북제재 완화와 체제 보장이라는 선물만을 안겼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여하간 양 정상은 70년간 지속된 북미 적대관계를 회복할 단초를 만들었다. 북미 양국은 한반도와 동북아시아 안보의 중대한 걸림돌인 북한 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 프로세스를 약 10년 만에 재가동하고 6·25전쟁 발발 후 68년간 이어온 적대관계를 청산하기 위한 중대한 일보를 내디디게 됐다.

또 지난 25년간 지속된 북핵 위기가 외교적 합의에 따라 매듭을 풀 계기를 확실하게 마련한 것이다. 이제 양측은 우여곡절 끝에 탄생한 공동선언문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과제를 맡았다. 이행은 합의보다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이행 없이 양측의 합의 노력은 한계가 있는 만큼 이제부터 진정한 시작이라는 의미를 인식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의 야경을 둘러보며 싱가포르의 “훌륭한 지식과 경험들을 많이 배우려고 한다”고 언급했다. 김 위원장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를 통해 국제사회와 신뢰를 구축하면서 교류협력을 한다면 싱가포르의 야경은 곧바로 평양의 비전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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