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싱가포르 정상회담은 시작됐는데…

2018-06-11 (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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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회의적’이라면 지나칠까.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바라보는 시각 말이다.

공화, 민주당을 가릴 것 없이 미국 의회는 거의 한 목소리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쳐놓은 함정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보이고 있는 것. 전문가로 불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싱가포르 회담은 미국 외교사상 최악의 참사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까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일반인들의 기대도 부정 일색이다. 싱가포르회담이 성공적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보는 미국인은 다섯 명에 하나 정도로 조사됐다.


“도대체 진정성이라는 것을 기대할 수 있을까. 김정은으로 부터.” 특히 안보문제에 강경파로 불리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던지고 있는 질문이다.

북한이란 국가는 수령유일주의에 갇힌 특이한 전체주의체제다. 그 체제의 관심은 오직 수령의 안위에만 쏠려 있다. 그 체제의 유지수단은 ‘공포’다. 또 이를 위해 항상 필요로 하는 것은 ‘가상의 적’이다. 이 체제의 최대 위협은 희망이다. 희망은 체제를 파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수령유일주의의 산물이자 3대 권력 세습 독재자다. 그 김정은이 어느 날 ‘주민에게 더 나은 삶’이란 희망을 심어주겠다고 나섰다.

그러니까 할아버지, 아버지가 추구해오던 핵무장을 통한 강성대국의 꿈을 갑자기 버린다는 거다. 그리고 자신의 입으로 핵무기완성을 선언한 지 불과 수개월 만에 비핵화선언과 함께 경제에만 매진, 평화를 애호하는 정상국가로 발돋움 하겠다는 거다.

믿을 수가 있을까. 믿는다. 문재인정부의 입장이다. 시진핑 중국의 입장이고 푸틴의 러시아도 동조한다. 도대체 믿을 수 없다. 일본과 대다수 서방국가들의 입장이다. 트럼프 행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였다’는 과거시제를 사용한 것은 다름이 아니다. 김정은의 정상회담 제의를 전격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면서 트럼프 행정부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원칙으로 북한에 제시해온 것은 즉각적인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였다.

김정은의 특사 김영철을 만난 이후 6월1일 시점부터였나. 태도가 달라졌다. 북한을 협상무대로 이끌어낸 ‘최대압력‘(maximum pressure)이란 말을 더 이상 쓰지 않는다. ‘즉각적인 CVID’ 대신 입에 올린 것은 북한 측이 써온 ‘비핵화 과정’(process)이란 말이다. 게다가 2차, 3차 정상회담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뭐랄까. 트럼프가 매파에서 비둘기파로 바뀐 것 같다고 할까. 그래서 하는 말이다. 그러면 도대체 왜.

“김정은은 트럼프와의 회담보다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평양에서 무슨 일이 날지를 더 걱정할지 모른다.” 북한문제 전문가 도널드 커크의 지적이다. 북한에서 쿠데타가 날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북한이라는 철저히 통제된 사회에서 정변이라니. 이는 혹시 지나친 희망적 관측은 아닐까. 그렇게도 보인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도 그 가능성을 어느 정도 인식, 싱가포르 회담을 앞두고 북한에 대한 수사를 부드럽게 가다듬고 있다는 것이 워싱턴 소식통들의 지적이다.

핵 완전폐기를 통해 선군정책을 포기했다. 그러자 인민군 내부에서 동요가 잇달고 있다. 강경세력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 국가전략의 일대 전환에는 군부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런데 상황은 정반대로 되어가고 있다. 자칫 쿠데타의 위험이 감지될 정도다.

싱가포르 회담 재개를 요청하면서 이 같은 내부적 어려움을 김영철은 트럼프에게 토설하고 미국의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 워싱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김정은 체제는 생각보다 불안정하다는 판단과 함께 트럼프 행정부는 김정은에게 외교적 입지를 강화시켜주는 방향으로 선회를 했다는 거다. CVID란 용어도 절제하는 식으로.

거의 같은 타이밍에 이루어진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인민무력상 등 이른바 북한군 수뇌부 3인방의 교체도 이 같은 북한군부내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고 또 김영철의 고충토로에는 꽤나 진정성이 엿보인다는 것이 워싱턴의 판단이라는 것.

‘그 반대로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고든 챙 등 대북 강경론자들의 지적이다. 어떻게든 시간을 벌면서 경제제재를 완화시킨다. 그리고 가능하면 핵 완성이라는 목표도 달성한다. 이를 위해 김정은이 벌이고 있는 고육지책(苦肉之策)성의 사기극일 수 있다는 것. 한마디로 김정은에게 시간을 주는 것은 극히 위험하다는 주장이다.

“핵 폐기와 관련해 아무 양보도 사전에 얻어내지 못하고 김정은과 만나는 것은 세계 최악의 폭정체제를 인정해주는 것 밖에 안 된다. 그 자체가 김정은에게는 커다란 외교적 업적이다. 반면 미국으로서는 최대의 외교적 실패가 될 수 있다.”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해리 카지애니스의 지적이자, 워싱턴포스트, 또 AP통신의 주장이다. 그러니까 보수, 진보를 망라하고 미국의 주류언론은 같은 시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4반세기를 끌어온 북한 핵 문제, 더 나가 대한민국의 안보문제에 중요한 변곡점을 이룰 싱가포르 회담이 카운트다운 된 것이다. 회담이 성공해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진정으로 기원한다. 그런데 어딘가 불안한 생각도 든다. 왠지….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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