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남수 ‘무제’
붉은 흙방에서 며칠 잠을 자려 한다
온돌 위에 흙을 바르고 다듬고 말리고 또 흙을 바르기를 여러 번,
그 위에 얇게 콩기름을 칠한 다음
다시 여러 날 마르기를 기다려서 완성했다는 흙방
그 방에서 오래 이루지 못한 동그란 잠을 자려 한다
종이 한 장 깔지 않은 흙바닥을 이토록 매끈하게 만든 사람은
어떤 연장보다 빛나는 손을 가졌을 것이다
나는 자꾸 흙바닥을 만져본다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종이 한 장의 두께도 허락할 수 없는 결곡함을
정신의 가파름으로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어서
거죽이 없는 것이 불편함은 아니냐고 물어보는 어리석은 짓을 하느라
몸을 오래 뒤척인다
부드러운 흙은 단단한 바닥이 되어 나를 기다린다
몸을 누이니 따스하고 붉은 흙 기운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빈틈없이 몸을 받쳐준다
단단한 속은 또한 겉이기도 한 것을,
나는 거죽이나 껍질이 어디 있느냐는 두꺼운 장판 같은 물음 한 장 걷어버리고
흙 속을 파고드는 뿌리 같이 희고 깊은 잠을 오래도록 자려한다
조용미(1962- ) ‘흙 속의 잠’
도배를 하지 않은 흙방은 시원의 방이다. 구들장 위에 두껍게 흙을 바르고 그 위에 도배를 하는 대신 콩기름을 칠한 방에서 하루나 이틀 묵는 일은 어떤 느낌일까. 아주 오래 전 인간의 방은 모두 흙방이었을 터이니 우리 몸의 어딘가에는 필시 그 황토 빛 기억이 있을 것이다. 대리석과 샹들리에로 환한 호텔방에서는 결코 알 수 없을 흙의 소리, 흙의 냄새, 흙의 감촉을 느껴보고 싶다. 꽃이나 나무처럼 하얀 상상의 뿌리를 그 속에 내리면, 흙방은 사람들의 고단한 영혼을 가만 어루만져줄 것 같다. 임혜신<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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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미(19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