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레이건의 추억

2018-06-05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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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는 대공황으로 고통 받던 30년대를 제외하고는 20세기 들어 미국인들에게 가장 어두운 시절이었다.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기름 값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가격 통제로 품귀 현상이 벌어져 기름을 한 번 넣으려면 길게 줄을 서야 했으며 아예 동이나 허탕을 치는 일도 흔했다. 물가가 오르면 경기라도 좋아야 하는데 물가와 실업률이 동시에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한 것도 이 때다.

경제는 경제대로 안 좋은데 국제 정치 상황은 더 나빴다. 5만 명이 넘는 미국 젊은이의 목숨을 희생해 가며 싸웠던 베트남 전은 1975년 미국의 패배로 끝나고 월남은 망했다. 1979년에는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해 점령했고 같은 해 이란에서는 회교 혁명이 일어나 미국 대사관 직원들이 인질로 잡혔다. 어디를 봐도 희망이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첩첩산중이었다.

1980년 대선은 이런 상황에서 치러졌다. 카터는 경제난 해결에 실패하고 이란 인질 구출 작전마저 사막의 폭풍으로 무산되면서 무능의 상징처럼 돼버렸지만 판세는 막판까지 비슷했다. 승패를 가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선거 직전 열린 토론이었다. 이 때 카터는 공화당의 레이건을 냉혈한 호전주의자로 맹공했지만 레이건은 “또 그런다”(There you go again)며 점잖게 받아쳤다.


거기다 “4년 전보다 사는 게 나아졌습니까”란 질문이 결정타가 됐다. 대다수 미국인들은 아니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레이건의 압승이었다. 레이건은 총 50% 득표로 50개 주중 44개주에서 승리했다.

당시로서는 역사상 최고령인 69세로 대통령에 취임한 레이건은 높은 기대 속에 집무를 시작했으나 피어보지도 못하고 시들 뻔 했다. 취임 한 달 여 만인 1981년 3월 30일 여배우 조디 포스터의 환심을 사기 위해 대통령 암살을 결심한 존 힝클리의 총에 맞아 응급실로 실려 갔기 때문이다. 이 때 레이건은 체내 혈액의 절반을 잃었으며 총알은 심장에서 1인치되는 곳에 멎었다.

그러나 이 위급 상황에서도 그는 낸시에게 “여보, 피하는 것을 깜빡 했어”라고 하는가 하면 수술 의사들에게는 “당신들 모두 공화당원이면 좋을 텐데”라고 농담을 하는 여유를 보여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 때 얻은 지지와 신뢰가 그가 과감한 정책을 펼 수 있는 버팀목이 됐고 레이건 스스로도 자신이 기적적으로 살아난 것은 맡겨진 일을 완수하라는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

그는 집권 8년 동안 “바보” “무식한 인간”이란 조롱 속에서도 두 차례의 대폭적인 감세와 규제 개혁으로 미국 경제를 살려냈고 대대적인 군비 증강과 ‘전략 방위 구상’(SDI) 추진으로 그가 “악의 제국”이라던 소련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가 냉전을 종식시켰다.

집권 초 12.5%에 달하던 인플레는 퇴임 무렵 4.4%로 내려갔고 집권 8년간 미국 경제는 연 평균 3.4%의 실질 성장을 이뤘다. 1987년 6월 12일 베를린에 간 그가 “고르바초프여, 이 장벽을 헐어버리시오”라고 외쳤을 때 많은 사람들은 그를 환상적 낭만주의자로 여겼지만 베를린 장벽은 2년 뒤 무너졌고 그 후 다시 2년 뒤에는 소련 자체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1989년 퇴임 시 그의 지지율은 69%로 프랭클린 루즈벨트를 제외하고는 20세기 대통령 중 가장 높았다. 재임 기간 그를 “할리웃 광대”로 비하하던 역사학자들도 이제는 그를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의 하나로 평가하는데 인색하지 않다.

5일은 그가 93세를 일기로 세상을 뜬지 14년이 되는 날이다. 그의 삶과 업적이 알고 싶다면 시미 밸리에 있는 그의 기념관을 찾아가 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 그곳에 가면 미국 대통령을 태우고 세계를 누비다 퇴임한 대통령 전용기 에어 포스 원과 헬기 머린 원 실물도 타 볼 수 있다. 겉보기에 화려한 전용기지만 안은 요즘 비즈니스석에 한참 못 미칠 정도로 소박한데 놀라게 된다.

대공황 때 약자 편에 서 정책을 편 루즈벨트를 평생 영웅으로 생각했고 50이 될 때까지 민주당이었던 레이건은 왜 당을 바꿨느냐는 질문에 “내가 당을 떠난 것이 아니라 민주당이 나를 떠났다”고 답했다. 자유세계의 등대로서의 미국의 역할과 피부색에 관계없이 모든 인간의 평등을 믿었던 그가 지금 트럼프의 공화당을 보면 뭐라 할지 궁금하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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