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위장 평화공세와 반(反)미정서 확산

2018-05-29 (화)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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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풍계리 핵 실험장 폭파 버튼을 누른 그 날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1년간의 업적을 폭파해 날려버렸다.” 아시아타임스의 보도다.

‘세기의 회담’으로 기대됐다. 그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의 만남이 결국 무산됐다. 여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당분간은 미-북정상회담은 물 건너갔다는 것이 중론이다.

관련해 새삼 들먹여 지는 것이 있다. 싱가포르회담 불발의 최대 루저(loser)는 누구인가 하는 것. 김정은일 수도 있다. 예의 그 벼랑 끝 전술을 또 들고 나왔다. 그 ‘으름장’이 트럼프에게는 전혀 먹히지 않았다. 그 결과는 미-북 정상회담 취소 참사를 불러왔다는 것이다.


낌새가 좋지 않았다. 북한 외무성 제1부상 김계관이, 또 바로 뒤이어 최선희(북 외무성 부상)가 미국을 향한 독한 발언을 하고 나섰을 때부터. ‘그래, 이게 원래 북한이지’ 하는 반응과 함께 워싱턴 일각에서 다시 제기된 주장은 결국은 레짐 체인지 밖에 없다는 거였다.

왜 김정은은 핵 폐기를 끝내 거부하고 있나. 궁극에 있어 북한이 저지르고 있는 반(反)인륜범죄 때문이다. 윌리엄 그렉슨 전 미 국방부 아-태 담당 차관보의 지적이다.

현 북한 체제는 오직 수령일가와 100만 남짓한 핵심추종세력만을 위한 체제다. 이 수령유일주의 체제는 100만 가까운 사람들을 정치범 수용소에서 죽게 했다. 이 체제가 저지른 최악의 인권탄압 범죄를 전 세계는 알고 있다. 그 사실을 김정은은 알고 있다.

그런 마당에 북한이 핵 폐기를 한다. 처음에는 갈채가 따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이 저지른 반(反)인륜범죄를 국제사회는 외면하지 않게 된다. 그럴 때, 핵도 없는 김정은은 어떤 처지에 몰리게 될까.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여기서 찾아진다는 거다.

그 체제를 변화시킬 유일한 방법은 레짐 체인지 밖에 없다. 그 방법은 현 최대압력(maximum pressure)정책의 수위를 더 한층 높여. 경제적 고사상태까지 몰고 가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행정부대로 또 연방상원은 상원대로 이미 초강력 대북제재조치 마련에 착수했다. 그렇지 않아도 최악의 경제적 곤경에 놓여 있다. 그 북한이 미국의 전 방위적 초강경 압력을 견뎌낼 수 있을까. 이런 면에서 최대 피해자는 북한이 될 수 있다는 거다.

‘트럼프가 싱가포르회담을 취소했다는 것은 워싱턴 강경파들의 승리로 볼 수 있다’- 북한문제 전문가 앤드류 새먼의 지적이다. 말하자면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볼튼 국가안보보좌관 사이에서 트럼프는 매파 중의 매파인 볼튼의 손을 들어준 격이 이라는 것.


문제는 볼튼을 비롯한 워싱턴 강경파들이 문재인 정부를 보는 시각이다. 북한에 대해 ‘팀 문재인’은 운동권적 태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초 워싱턴이 보여 온 시각이다. 그러던 것이 강경파들의 잇단 포진과 함께 그 시각은 문 대통령과 주변 사람들을 믿을 수 없다는 의구심으로 바뀌고 있다.

취임 2개월에 불과할 때 문 대통령은 북한경제발전 로드맵이란 것을 발표했다. 그 시점이 그렇다. 미사일발사에, 핵실험에 북한은 계속 도발을 해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 문 대통령은 북한과의 대화에만 ‘올인’하다시피 했다.

북한 선수단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도 그 일환이다. 일방통행성의 대북 유화책은 ‘평화와 번영’의 틀을 제시한 4.27 판문점 정상회담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 과정에서 문 대통령은 워싱턴에 ‘한미공조’보다 ‘민족공조’에 더 신경을 쓰는 인상을 줬다. 거기다가 북한제재에 있어 중국과 함께 북한 편을 두둔하는 듯한 입장을 보여 왔다.

그 문재인 정부가 이른바 ‘중재외교’에 나섰다. 미국과 북한의 대화를 주선한 것. 그 중재외교가 그런데 탈이 나고 말았다. 지난 22일 문재인-트럼프 정상회담이 바로 그 현장이다. 트럼프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거의 힐문(詰問)하다시피 했다. 외교적 무례를 범하면서까지.

핵 폐기에 북한의 진정성이 보이지 않자 중재에 나선 문재인 정부는 중국, 북한과 한 편이 된 게 아니냐는 분노에 가까운 질책을 퍼 분 것. 그럼에도 불구 문재인 정부는 미-북 정상회담은 99.9% 열린다고 장담했다. 완전히 헛짚은 것이다.

트럼프가 싱가포르회담 취소를 발표한 2018년 5월24일은 그런 면에서 출범 1년 남짓한 문재인 정부로서는 최악의 날을 맞이한 셈이다. 그동안 추진해온 중재외교, 또 판문점 무대에서 김정은과 함께 마련한 ‘평화와 번영의 프레임’도 무너졌다. 그리고 가을로 예정된 평양방문도 불투명해진 것이다. 외교대통령 문재인의 성가가 추락하고 만 것이다.

이 외교참사는 심각한 정치적 대미지로 이어질까. 아직은 두고 볼 일 같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한 것 같다. 오히려 반(反)미 정서가 확산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다.

한반도 전쟁위기의 주 원인 제공자는 김정은이 아닌 트럼프다. 김정은에 대한 신뢰도는 70%선에 이른다. 판문점 회담 효과다. 이게 한국사회의 정서라고 한다. 그 정서를 교묘히 파고들어 위장 평화공세를 펼친다. 뭐랄까. 일종의 조반(造反)성 반미운동이 활개를 친다고 할까.

“북-미 정상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해 세계평화에 찬물을 끼얹은 트럼프를 탄핵하라” “미국과 단교하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이다. 아무래도 그 조반성 반미운동의 신호탄으로 보여 진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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