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미북 정상회담 관전법

2018-05-24 (목) 김태우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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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북 정상회담 관전법

김태우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오는 6월12일로 예정된 미북 정상회담과 후속 핵 대화를 앞두고 낙관론과 회의론이 혼재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전망이 쏟아져 나오는 중에 한국 국민을 포함한 세계인들은 미북 대화의 두 주역인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다양한 전망들을 정리해보면 회담 무산, 결렬, 부분적 성공, 성공, 대성공 등 다섯 가지로 압축되는데 현재로서는 어떤 쪽으로 결말이 날 것인지 예상하기가 어렵다.

연초부터 평양정권이 펼쳐온 파격적인 평화공세와 이후의 과정들을 종합할 때 북한이 이제 와서 회담을 무산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예상이 대세지만 그래도 일부 전문가들은 미북 간 사전 실무접촉에서 합의점이 만들어지지 못하면 판이 깨질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결렬이란 정상회담은 열리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기약 없이 결별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사전조율을 거치지 않는 정상회담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외교 관행을 감안할 때 일단 정상회담이 열린다면 결렬로 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부분적 성공이란 회담이 열리고 합의문이 발표되지만 내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다. 예를 들어 미국이 북한의 핵동결이나 불완전한 비핵화 약속에 안주하는 경우 ‘성공’이라는 외교적 수사들로 포장되겠지만 한국이 여전히 북한의 비대칭적 위협에 노출된 상태로 남는다는 점에서 한국에는 낭패스러운 결과며 ‘완전하지도 않고 돌이킬 수 있는 비핵화’라는 점에서 미국 내에서도 많은 뒷말을 남길 것이다.

여기에 비해 성공한 회담이란 북한이 ‘완전하고 검정할 수 있으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VID)’를 약속하고 미국이 제시하는 반대급부에 만족하는 경우다. 그러나 북핵이 폐기된 후에도 북한은 여전히 최강의 화생(化生)무기 보유국이고 세습독재 체제나 인권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남북 간 적대적인 체제경쟁과 북한의 대남도발 동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미북 대화가 북한의 화생무기를 제거하고 체제와 인권을 개선하는 견인차가 된다면 역사는 이를 ‘대성공’으로 기록할 것이다. 하지만 당장은 ‘성공’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현 단계에서 ‘대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결국 현재로서는 무산이나 결렬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 가운데 ‘부분적 성공’과 ‘성공’이라는 두 가지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최상의 관전법일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가 필요하다. 한국은 ‘성공’ 또는 ‘부분적 성공’ 이후에 위기를 맞이할 수 있으며 그러한 위기는 회담이 무산되거나 결렬돼 대치 국면으로 복귀하는 경우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회담이 성공해 북한이 완전한 핵폐기를 약속하는 경우 한국사회가 축제 분위기에 함몰될 개연성이 있다. 동맹 해체, 미군 철수, 평화협정 체결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분출할 수 있으며 낙관론자들이 가세하면서 국민의 안보의식은 희석되고 심각한 국론분열 현상이 빚어질 소지가 있다.

평양이 나쁜 마음을 먹는다면 이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일 것이다. 완전한 핵폐기에 대한 반대급부가 될 수 있는 미북수교·제재해제·남북경협 등과는 달리 안보체제를 약화시키는 조치들은 ‘대성공’ 이전에 거론해서는 안 되지만 한국민이 이런 분별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스럽다.

같은 맥락에서 부분적 성공 이후에도 유사한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 한미 정부가 정치적 계산을 앞세우고 부분적 성공을 ‘만족스러운 성공’으로 과대 포장하고 언론이 가세한다면 비슷한 현상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특히 북한 문제 해결의 칼자루를 쥔 트럼프 대통령은 지금까지 예측불가 언행들과 함께 동맹국의 운명보다는 눈앞의 상업적 이익을 중시하는 협상가적인 면모를 자주 보여줬다. 이에 일부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 정치에서의 취약성을 만회하기 위해 성급하게 외교적 성과를 추구할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런 것도 핵 대화를 바라보는 데 필요한 관전 포인트다.

<김태우 건양대 군사학과 교수 전 통일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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