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집트에 관한 명상

2018-05-22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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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은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다. 세계에서 가장 긴 강이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이집트 문명을 만들어냈다. ‘나일강의 선물’ 이집트는 인류에게 여러 선물을 남겼다. 그 중 하나가 최초의 문자로 손꼽히는 상형문자다. 이 문자는 훗날 페니키아인이 알파벳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하게 된다. 페니키아 문자는 현재 모든 서양 알파벳의 조상이고 보면 서양인들은 이집트에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이집트는 죽음에 대해 깊은 관심을 보였던 문명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면 죽음이 아니라 영생에 관심이 컸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이집트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누구나 ‘마트의 깃털’이라는 재판을 받는다고 믿었다. ‘마트’는 ‘진실’ 또는 ‘정의’를 뜻하는 단어이면서 이를 관장하는 신의 이름이기도 하다.

죽은 자의 심장과 ‘마트의 깃털’을 저울에 놓고 달아 균형을 이루거나 심장이 더 가벼우면 그 사람은 의롭고 진실된 삶을 산 판정을 받아 천국 아루에서 영생을 누리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영원한 지옥으로 떨어지게 된다. 이집트인들이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어 영구 보존하고 관 옆에 살았을 때 쓰던 물건들은 함께 놔두는 것도 죽은 뒤 제2의 인생을 사는데 불편이 없도록 한 배려인 셈이다.


이집트의 상징 피라미드가 원래 무덤이었다는 사실은 이집트인의 사후 세계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말해준다. 이 중 가장 크고 유명한 기자의 대 피라미드는 기원전 2460년부터 20년 동안 개당 2톤이 넘는 바윗돌 230만개로 만들어졌는데 총 무게 590만 톤에 높이 146m이었던 것이 풍화돼 지금은 139m에 달하고 있다. 가로 세로 4변의 길이는 230m인데 오차가 6cm에 불과하며 돌과 돌 사이의 간격은 0.5mm를 유지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맨 손으로 어떻게 이런 거대한 구조물을 지었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집트의 절대 군주 파라오의 무덤이던 피라미드는 언제부터인가 지어지지 않게 됐다. 그 이유는 도굴꾼들이 그 안에 들어 있는 부장품을 털어가 버려 영원한 안식처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명백해졌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파라오의 시신을 비밀리에 매장하는 쪽으로 바뀌었는데도 도굴꾼들은 이를 귀신 같이 알아내 모두 파헤쳐갔다.

첫 피라미드가 세워진지 5,000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1922년 이집트 ‘왕의 골짜기’에서 영국인 하워드 카터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파라오의 무덤을 발견한다. 이곳에서 발굴 작업을 하던 중 후세인이라는 소년이 물병을 세우려고 땅을 파헤치다 돌계단을 발견하고 알렸으며 이를 따라 내려가 무덤을 찾아낸 것이다. 3,000년이 넘는 세월 잠자고 있던 투탄카멘의 묘가 햇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이 무덤에서 나온 5,000점의 유물은 당시 이집트 공예 기술이 어느 정도였으며 상류층이 얼마나 호사스런 삶을 살았는가를 유감없이 보여줬다. 기원전 1332년 9살의 나이에 즉위해 9년간 재위에 있다 18살에 죽은 이름 없는 소년왕의 무덤이 이 정도면 나머지 왕들은 어땠을지 물어볼 필요도 없다.

이 물건들을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멀리 이집트까지 갈 필요가 없다. LA 가주 사이언스 센터에서 내년 1월까지 투탄카멘 특별전이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 전시된 금은 장신구와 온갖 문양이 장식된 관 등은 3,000년 전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고 화려하며 세련돼 있다.

무덤 발견 100주년을 맞아 열리고 있는 이 전시회에는 총 150점의 유물이 전시되고 있는데 이 중 60점은 처음 해외로 나온 것이다. 이 전시회는 마지막 해외전으로 7년 간 미국과 유럽을 돈 후 올해 기자에서 새로 선보일 이집트 최대 규모 박물관에 영구 전시된다고 한다.

일부에서는 투탄카멘 무덤이 발견되는 날 카터의 카나리아가 코브라에 물려 죽고 그 후원자가 곧 병사했으며 인부 여러 명이 사고사로 죽은 점을 들어 ‘투탄카멘의 저주’를 우려하고 있으나 전문가들은 정작 무덤을 발견한 후세인과 카터는 60 넘게 잘 살았다며 이는 기우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 기간 중 이곳 IMAX 극장에서는 ‘이집트의 신비’ 다큐멘터리가 상영되고 있어 이집트의 풍광을 편안히 앉아 즐길 수 있다. 당분간 이집트 여행 계획이 없는 사람이라면 이번 주말 이곳을 들려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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