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바마케어 갉아먹기

2018-05-14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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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케어 갉아먹기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2017년도 초반, 공화당은 오바마케어를 한 방에 날려버릴 거대한 괴수를 풀어놓겠노라 큰소리쳤다.

그런데 우스꽝스런 일이 벌어졌다; 오바마케어가 폐기되면 수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의료보험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유권자들이 알아챈 것이다.

이를 마땅찮게 여긴 유권자들이 반발하자 역풍에 놀란 공화당은 뒷걸음질 쳤고, 오바마케어 폐기는 무위로 끝났다.


그러나 공화당은 여전히 전국민의료보험이라는 아이디어에 거부감을 갖고 있다. 그들은 거대한 괴수를 풀어놓는 대신 이번에는 터마이트를 데려왔다.

단방에 오바마케어를 날리려는 무모한 시도 대신 프리미엄 인상과 커버리지 축소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 유권자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은밀히 일을 추진하면서 거듭된 사보타지 행위를 통해 오바마케어의 기반을 붕괴시키려는 의도다.

보험 붕괴의 책임소재를 분명히 가리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장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오바마케어가 크게 성공한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이다. 의료개혁법안이 통과됐을 때 공화당은 오바마케어가 무보험자 인구를 반으로 줄이지 못한 채 예산적자만 늘려 놓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힘입어 커버리지는 크게 확대됐고, 무모험자 비중은 사상 최저치로 내려앉았다.

문제도 있다. 비록 공화당이 떠들어대는 것만큼 심하진 않지만 커버리지 확대가 당초 예상에 못 미친 것은 사실이다.

처음엔 오바마장터에 놀랄 정도로 싼 가격에 의료플랜을 내놓았던 보험사들이 가입자들 가운데 병력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평균보다 높다는 것을 깨닫고 프리미엄을 처음 제시했던 액수보다 높게 책정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 현재 시장은 안정됐고, 보험사들은 전반적으로 이윤을 남겼다.

물론 오바마케어가 완벽하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무보험자들의 수가 여전히 많고, 보험을 가진 사람도 의료비 가운데 상당액을 자비로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오바마케어는 옹호론자들이 약속했던 바를 실현시킨 반면, 반대론자들이 전망했던 재앙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공화당은 기어이 오바마케어를 파괴하려 든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커버리지 확대에 따른 지출을 고소득층에 부과되는 세금에서 충당하는 것과 관계가 있다. 이 때문에 오바마케어를 폐기하면 부유층이 감세효과를 누리게 된다.

좀 더 광범위한 맥락에서 보면 보수주의자들이 오바마케어를 싫어하는 진찌 이유는 이 법이 제대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오바마케어는 수천만 명의 미국인들이 보다 안전하고, 개선된 삶을 살아가도록 정부가 도움을 제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본보기에 해당한다.

따라서 오바마케어는 낮은 세율과 작은 정부로 대변되는 공화당의 이념을 위협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전면 폐기에 실패한 공화당은 두 개의 주요 전선에서 사보타지를 시도하고 있다.

첫 번째 전선은 오바마케어 덕분에 늘어난 커버리지의 절반가량을 책임지는 메디케어 확대를 저지하는데 초점이 맞춰진다.

공화당이 장악한 여러 주 가운데 상당수는 수혜자에게 취업을 요구하는 등의 조건을 달아 메디케어 가입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수혜대상자의 취업을 요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리적으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은 메디케이드 수혜자들을 단속하기 위해서라는 논리는 말이 안 된다. 이 부류에 해당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진짜 목표는 신고절차와 문서작성 요건을 강화해 자신의 통제를 벗어난 상황에서 어쩔 도리 없이 실직한 근로자들을 벌주는데 있다. .

두 번째는 민간보험에 가입하는 사람들의 수를 줄이려는 노력과 관계가 있다.

지난해 트럼프 행정부는 국민을 상대로 언제 어떻게 건강보험을 구입하는지를 알려주는 아웃리치 프로그램을 무자비하게 축소했다.

아울러 트럼프 행정부는 보험사들이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병력자들을 차별하는 과거 관행으로 복귀하는 것을 사실상 장려한다.

연방 의회가 대기업과 부유층을 위한 대규모 감세안을 통과시키자 트럼프 행정부는 현재 건강상태가 양호하더라도 의무적으로 보험에 가입하도록 규정한 오바마케어의 핵심조항 가운데 하나를 제거했다.

이런 사보타지 노력은 저소득층을 중심으로 오바마케어로 인한 보험가입 증가세를 이미 부분적으로 반전시킨 것으로 나타났다.(흥미로운 것은 모든 커버리지 손실이 자칭 공화당 지지자들 중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은 아직 당도하지 않았다.

알다시피 공화당의 사보타지는 젊고 건강한 사람들의 보험가입을 집중적으로 억누르는데, 이는 한 해설가의 말대로 “같은 시장 안에 있는 다른 사람들의 보험 비용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낸다.”

이런 논평을 한 해설가는 트럼프 행정부의 초대 보건후생부 장관인 탐 프라이스다.

이미 앞 다퉈 프리미엄 인상을 제안하고 나선 보험사들은 공화당에게 그 책임을 돌렸다. 건강한 미국인을 시장 밖으로 내몰고 병들과 비용이 더 많이 들어가는 가입희망자들만을 잔뜩 남겨두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자, 앞으로 전개될 상황은 이렇다.

조만간 많은 미국인들은 보험료에 충격을 받을 것이다. 연방 보조금이 그들 중 상당수를 보호하겠지만, 누구나 보조혜택을 받는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미국인들은 또한 보험커버리지 축소에 대한 뉴스를 계속 듣게 될 것이다. 그리고 공화당 지지자들은 “보라, 오마마케어가 붕괴하고 있다”고 큰 소리 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오바마케어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든 당신의 보험을 빼앗아가기 위해 터마이트를 풀어놓은 정치인들에게 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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