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실패한 선지자

2018-05-08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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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와-노엘 바뵈프는 널리 알려진 이름은 아니지만 현대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인물이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혁명가의 한 사람이었던 그는 역사의 대세가 평등임을 이해하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이다.

프랑스 혁명 지도자들은 대부분 부르주와 출신으로 인민의 정치적 자유를 확보하는데 주력했으며 개인의 재산권을 ‘신성한 권리’로 규정해 오히려 빈부의 차이를 법적으로 보장하는 쪽으로 나갔다.

그런 상황에서 바뵈프는 사유 재산권을 폐지하고 국민 모두가 똑 같이 재산을 나눠 가질 것을 주창한다. 혁명 정부의 탄압이 심해지자 그는 ‘평등한 자의 음모’라는 단체를 만들어 정부 전복을 꾀하다 발각돼 사형 판결을 받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그는 죽기 전에 “한 인간이 다른 인간보다 더 부유하거나 현명하거나 강해지려는 욕망을 처음부터 뿌리 뽑을 수 있도록 사회를 재편해야 한다”며 “프랑스 혁명은 다가올 더 크고 장엄하며 마지막 혁명의 전주곡에 불과하다”는 말을 남겼다. 그의 추종자들을 영국에서는 ‘공산주의자’라고 불렀는데 그것이 공산주의자라는 단어의 어원이다. 바뵈프는 ‘최초의 공산 혁명가’로 불린다.

그의 추종자 중 대표적인 인물이 칼 마르크스다. 철학과 역사에 관심이 많았지만 아버지의 뜻에 따라 베를린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쾰른의 한 신문에 취직해 편집국장직을 맡지만 탄압을 받아 폐간되며 이 때부터 본격적인 혁명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경찰의 체포를 피해 프랑스와 벨기에, 영국을 떠돌던 그의 이름을 세상에 알린 것은 그가 서른 살 때 프리드리히 엥겔스와 쓴 ‘공산당 선언’이다. 인류 역사의 발전 단계와 공산 사회 탄생의 필연성을 주장한 이 작품은 국제 공산주의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공산주의 창시자라는 명성에도 불구, 그의 가정사는 비극의 연속이었다. 아내 예니와의 사이에 낳은 일곱 자녀 중 4명이 병과 영양실조로 어려서 죽었고 남은 세 딸 중 첫째는 마르크스보다 두 달 먼저 암으로 사망했다. 둘째 딸은 사회주의자와 결혼했다 동반 자살로, 셋째 딸은 동거남이 몰래 딴 여자와 결혼한 사실을 알고는 음독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마르크스 자식 중 유일하게 정상적인 삶을 산 사람은 그가 가정부 사이에서 낳은 아들 프레데릭 데무트다. 엥겔스는 그가 자기 자식이라며 마르크스를 보호해 오다 죽기 직전 마르크스의 사생아임을 고백했다. 데무트는 평범한 노동자로 일하다 78세에 사망했다.

그러나 이보다 더 큰 마르크스의 비극은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현란한 이론에 현혹돼 그가 꿈꿨던 이상 사회 건설에 목숨을 바쳤고 그들 희생 위에 세워진 공산 국가가 수많은 무고한 국민들을 살해했다는 사실이다. 그의 사상을 국가의 지도 이념으로 한 소련과 중국에서만 2,000만과 6,500만 명이 혁명전쟁과 숙청, 기근으로 숨졌다. 공산주의 이름하에 희생된 사람은 전 세계에서 최소 1억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마르크스 옹호자들은 스탈린과 모택동 같은 독재자들이 저지른 죄를 그에게 묻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지만 소련과 중국, 북한과 쿠바 등 그의 이름이 내걸린 나라치고 대량 학살과 기아, 독재와 빈곤이 없는 곳이 없다면 그도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말을 만들어낸 마르크스만큼 자본주의의 본질을 잘 이해한 인물도 드물다. 그가 지적한 빈부 격차 심화와 주기적인 불황에 대한 비판은 아직도 유효하다. 그러나 그가 해결책으로 내놓은 개인 재산 폐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는 잘못된 처방이었다는 것을 지난 100년간의 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재산권이 보장되지 않은 상태에서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나눠가지라면 인간은 열심히 일하지 않는다. 그런 사회에서는 오로지 ‘빈곤의 평등’만이 가능하다. 그리고 ‘프롤레타리아의 독재’는 필연적으로 공산당 일당 독재와 1인 독재로 전락한다. 그런 사회에서 사는 사람은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부를 박탈당한 채 노예로 살 수밖에 없다.

지난 5일은 지난 200년간 누구보다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친 마르크스가 태어난 지 200년이 되는 날이었다. 이 날을 기념해 그의 고향 트리에에는 중국 정부가 기증한 그의 동상이 세워졌다. 마르크스 같이 뛰어난 사상가가 잘못된 처방을 내놓는 바람에 인류는 지난 100년간 미증유의 고통을 겪었다. 이제는 그의 공과 과를 냉정히 바라봐야 할 때라 본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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