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톡홀름 증후군’ 만연의 한국사회

2018-05-07 (월) 12:00:00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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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셋만 모여도 ‘그 얘기’를 한다고 한다. 정치도 아니다. 한반도 평화정착도, 북한 핵 폐기도 아니다. ‘그 얘기’는 김정은이라는 것이 뉴요커지의 보도다.

한 마디로 놀랍다는 반응이다. 30대 중반도 안 됐다. 그런데 그 말솜씨가 노련하다. 재치도 엿보인다. ‘인간쓰레기’라고 부르던가. 탈북자를 북한에서는. 그런데 김정은은 탈북자를 탈북자라고 했다. 그 한 마디에 사람들은 자못 감동까지 하고 있다.

“솔직하고, 오픈 마인드에, 예의도 바르다.” 문재인대통령의 평가다. “견식이 놀라운 젊은 지도자다.” 문정인 청와대 외교안보 특별보좌관의 말이다. 정부고위당국자들의 ‘김정은에 대한 상찬’이 보도의 형식을 통해 전해지면서 한국사회에서 뭔가 특이한 현상까지 일고 있다는 것이 뉴요커지의 보도다. 뭐랄까. ‘김정은앓이’라고 할까.


어느 정도인가. ‘김정은을 신뢰한다’- 한국 국민 중 10%가 보인 반응이었다. 그게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끝난 현재 80%에 육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을 말하나. 한 마디로 김정은의 매력공세가 먹혀들었다. ‘평화와 번영’이란 모토를 들고 나온 김정은 체제와 문재인 좌파정부의 남북합작, 그 판문점정상회담이 제시한 ‘평화 프레임’이 일차적으로 소기의 목적을 이룬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정상회담이란 무대를 통해 3대 세습독재자가 순식간에 노련한 외교가로 등장해 한반도 평화의 사도인 양 이미지를 변신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그 결과로 남한 사회에는 일종의 중증의 ‘스톡홀름 증후군’((Stockholm syndrome-인질이 범인에게 동조하고 감화되는 비이성적인 심리 현상)이 만연되고 있다. 이것이 ‘김정은앓이’의 다른 모습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김정은은 전체주의 전재자에서 권위주의 독재자로 변신하고 있다.” 한국의 전 외교고위당국자가 한 말이다. 이 역시 만연한 ‘김정은앓이’와 관련된 지나친 낙관적 전망은 아닐까.

전체주의와 권위주의 독재체제의 차이는 어디서 찾을 수 있나. 시장경제를 추구한다는 데에서. 틀린 답이다. 전체주의 체제다 그러면서 시장경제를 도입했다. 과거 나치체제가 그렇다.

권위주의는 그 형태가 다양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권위주의 체제는 사람들의 행동(behavior)만 통제하기 원한다. 정치적 자유만 억압할 뿐이다.

전체주의는 사람들의 행동은 물론 정신(mind)도 통제하는 체제다. 그 통제방법은 공포와 폭력이다. 그 제도의 특징은 오직 수령만을 위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당(?)과 수용소 군도로 요약된다. 그리고 수령에 대한 개인숭배가 전체주의의 이데올로기의 근간을 이룬다.


히틀러 나치와 스탈린의 공산주의체제로 대별되는 20세기 형 전체주의는 오는 날 모두 소멸됐다. 소련은 붕괴했고 마오쩌둥 체제는 개방체제로 전이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공산전체주의는 더 개악된 형태로 북한에서만 그 원형이 유지되고 있다. 3대 세습의 수령유일주의 체제가 그것이다. 그 체제가 권위주의 체제로의 전이가 가능할까. 아무래도 답은 ‘노’로 기운다. 북한 체제의 변화가 전혀 감지되지 않는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인권이란 측면에서 볼 때 더욱 그렇다. 3대 세습왕조를 구축했다. 다른 말이 아니다. 전 주민을 노예화했다는 뜻이다. 그 북한주민들은 인권이란 말을 아예 모른다. 오죽하면 유엔은 세계 최악의 인권탄압국가로 북한을 지목, 해마다 결의안을 채택하고 있을까.

그 상황에서 김정은은 여전히 식량을 주민 길들이기 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사람을 고사총으로 박살낸다. 고모부도 이복형도 죽였다. 대한민국을 향한 만행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그 뿐이 아니다. 핵에, 미사일에, 화학무기 등을 아프리카 등지의 독재체제에 지원한다. 그럼으로써 해외에서의 인권탄압 사태를 암암리에 돕고 있는 것이 김정은 체제다. 그 한 케이스가 시리아 알아사드 체제의 자국민에 대한 화학무기 공격이다. 북한은 그 시리아와 핵에, 화학무기를 공급하는 검은 커넥션을 유지하고 있다.

마치 평화의 사도인 양 행세하는 ‘김정은 쇼’는 미-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아직도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와 함께 초미의 관심사는 북한이 전면 핵 포기와 함께 정상국가로 발돋움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다른 건 몰라도 김정은 체제의 핵 포기는 있을 수 없다.” 워싱턴에서에서, 일본에서, 심지어 중국에서도 나오고 있는 전망이다. 그러니까 ‘평화 프레임’은 가짜일 수 있다는 거다.

핵은 북한 측 말을 빌리면 체제를 지키는 ‘보검’이다.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한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다. 그 김정은의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 이는 ‘교황이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고 불교로 개종하는 것과 비유될 수 있다’는 것이 타임지의 분석이다.

그렇다고 대화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평화를 위해서는 때로 악마와도 협상을 할 필요가 있으니까. 다만 지나친 기대는 금물이란 말이다.

그런 그렇고,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있다. ‘평화의 사도 김정은 깜짝 등장’이란 판문점 쇼의 진짜 무대 감독은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민족공조라는 감성을 자극하면서 반전을 이끌어낸 그 연출솜씨가 수령유일주의에만 매몰돼 있는 북한의 작품으로만 보기에는 너무 세련되고 효과적이어서 하는 말이다.

혹시 아지프로(선전선동)에 아주 뛰어난 한국의 좌파세력의 도움에 힘입었던 것은 아닐까.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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