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육 따윈 필요 없어”

2018-04-30 (월)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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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따윈 필요 없어”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보수적 공화당원인 매트 베빈 켄터키 주지사가 며칠 전 망언을 했다.

자신의 교육예산 증액반대에 항의하는 수천명의 켄터키 주 교사들이 직장을 이탈하면서 상당수의 학교들이 하루 동안 문을 닫게 되자 베빈 주지사는 이들을 향해 터무니없는 비난을 퍼부었다.

“장담하건대 오늘 휴교로 인해 돌봐줄 사람 한 명 없이 집에 홀로 남겨진 어떤 어린이가 성폭행을 당할 것”이라는 뜬금없는 ‘예언’을 내놓은 것이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그러나 그의 신경질적 분노표출은 깊은 뿌리를 지니고 있다. 주정부와 자치단체 차원에서 감세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집착은 공화당을 교육계, 그 중에서도 특히 교사들과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처지로 내몰았다.

바로 이런 전쟁 때문에 우리는 현재 여러 주에서 교사들의 동시다발적 파업을 목격 중이다. 그리고 베빈과 같은 인물은 그들이 만들어낸 현실을 처리하는데 심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는지 이해하려면 미국 정부가 세금으로 무엇을 하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오래전부터 연방정부는 기본적으로 군대를 지닌 보험회사로 비유됐다: 실제로 연방정부의 비 국방부분 지출의 상당부분을 소셜시큐리티,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가 차지한다.

반면 주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기본적으로 경찰국을 지닌 교육구로 보면 된다.

사실상 교육분야에 주와 지방자치단체 전체 인력의 절반 이상이 몰려 있다. 교육계를 제외하면 경찰과 소방국 같은 보호서비스(protective service)가 나머지 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티파티(Tea Party) 물결이 거세게 일었던 2010년 이후의 상황처럼 강경보수주의자들이 주 정부의 지배권을 대거 장악할 경우 무슨 일이 벌어질까?

강경 보수주의자들은 언제나 대규모 감세부터 밀어 붙인다: 감세는 낮아진 세금이 주 경제에 거대한 추동력을 제공할 것이라는 약속과 함께 강매된다.

그러나 이 약속은 결코 지켜지지 않는다. 감세가 마술 같은 성과를 내리라는 우파의 지속적인 믿음은 압도적인 부정적 증거에 대한 이념의 승리를 보여줄 뿐이다.

감세는 경제성장을 촉진하는 게 아니라 세수 감소를 불러와 주 정부의 재정파탄을 가져온다.

대다수의 주 정부는 예산균형을 의무화한 법을 제정했다.

설사 감세로 세수가 급감한다 해도 주정부는 바로 이 법으로 말미암아 트럼프와 공화당이 장악한 의회가 하고 있는 것처럼 풍선처럼 불어나는 적자를 그대로 방치할 수 없다. 결국 지출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주정부 및 자치단체 예산의 중심에 교육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교사들이 지출축소 과녁판의 한 가운데에 서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정부는 어떻게 교육관련 예산을 줄일 수 있을까?

교사들의 수를 줄이면 간단하지만, 이 경우 학급정원이 늘어나고 결과적으로 부모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게 된다. 특수교육 프로그램을 줄일 수 있지만 이 같은 조치의 몰인정함은 차치하더라도 예산절감 효과가 너무나 미미하다.

학교의 시설수리를 미루고, 필요한 물품공급마저 걸러뛰어 교사들이 스스로 주머니를 털어 이를 마련하는 지경까지 내버려둔다 해도 비용절감 효과가 그리 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모자란 예산을 보존하기 위해 보수적인 주정부가 하는 일이란 결국 교사들을 쥐어짜는 것뿐이다.

현재로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만으로는 돈이 안 된다. 그러나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교사로 임용되는 것은 괜찮은 소득과 베니핏을 받아가며 중산층의 반열에 서는 것을 의미했었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이것은 더 이상 사실이 아니다.

전국적인 차원에서 공립학교 교사의 소득은 1990년대 중반 이후 물가상승률을 따라잡지 못했고, 상호비교가 가능한 다른 분야의 근로자 소득에 비해서도 뒤쳐졌다.

현 시점에서 교사들의 소득은 다른 대학졸업생보다 23%가 낮다. 그러나 전국 평균치는 믿을게 못 된다. 뉴욕과 캘리포니아 등 일부 거대 주의 경우 교사 봉급은 실제로 올랐지만 우경화된 여러 주에서는 떨어졌다.

교사들의 베니핏 또한 악화되고 있다.

특히 교사들은 건강보험 프리미엄 상승분을 자비로 충당해야 한다. 실질소득이 떨어지는데 비해 건강보험 프리미엄은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교사들의 부담이 만만치 않다.

이런 이유들로 인해 어린이들의 미래를 준비시키기 위해 우리가 믿고 의지해야 할 교사들은 세컨드 잡(second job)을 잡지 못할 경우 근로빈민처럼 가계조차 제대로 꾸려가기 힘들다는 자괴감에 시달린다. 교사들로서는 더 이상 버텨내기 힘든 막장상황이다.

여기서 다시 베빈의 빗나간 분노 발작으로 돌아가 보자.

현재 발생중인 일들을 이해하려면 점차 세력을 확대중인 미국정치의 부족주의(tribalism)와 맞물려 여러 주에서 기승을 부리는 반 오바마 물결에 관해 생각해 보는 것이다.

부족주의 정치와 반 오마바 물결은 적지 않은 주의 주지사 관저를 극단적인 우파 선동가들에게 넘겨주었다.

우파 선동가들은 그들 자신이야말로 낮은 세금과 작은 정부라는 자유주의적 유토피아를 맞아들일 장본인이라 자처한다. 단언하건대 그럴 수가 없다. 아마도 그들은 공공부분 피고용자들, 그중에서도 특히 교사들에 대한 경비를 덜어내는 방식으로 그들의 실패가 초래한 결과를 잠시 피하려 들지 모른다.

그러나 그 같은 전략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다. 그렇다면 이제 무엇을 해야할까?

일부 공화당원들은 감세를 되돌리고 교육기금을 복원하는 등 과거의 경험에서 배우려는 열의와 의지를 실제로 입증해 보였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공화당원들이 베빈처럼 반응하고 있다. 간접적으로나마 잘못을 시인하는 대신, 그들은 그들의 정책으로 피해를 입은 피해자들에게 터무니없는 방식으로 공격을 가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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