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땅콩 공주, 물컵 공주

2018-04-20 (금)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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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발행된 신문 교육면을 보면 눈에 띠는 기사가 있다. 아이가 원한다고 사주고 쉽게 포기해도 무조건 오냐 오냐 하면서 키운다면 아이의 장래를 망친다는 내용이다.

요즘 세대는 대체로 자식을 한 둘만 낳아 금지옥엽으로 키우다 보니 자녀가 해달라는 것은 모두 부모가 척척 알아서 해준다. 그러다 보니 버릇없는 마마 걸, 마마 보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자식을 하늘처럼 받든다든지, 무례한 태도로 나와도 단호하게 훈육시키지 않으면 결국 자녀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행동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다. 현재 이런 목불인견의 모습을 만천하에 내보이고 있는 사례가 바로 대한항공 오너 자녀의 행패가 아닐까 싶다.

대한항공은 전 세계가 알고 있는 굴지의 항공사다. 이런 대기업의 자녀들이 줄줄이 집안망신, 나라망신을 시키고 있으니 그들의 어릴 적 교육이 어땠을까 궁금해진다. 지난 4년 전 조현아 전 부사장이 땅콩 때문에 비행기를 회항시켜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더니, 이번에는 그의 동생 조현민 전무가 광고대행사 직원의 말이 마음에 안 든다고 소리 지르며 물 컵을 집어던지고 폭언하는 행패를 부렸다.


이 사건을 세계 언론은 앞 다투어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와 CNN 방송은 지난번 땅콩 회항사건 주인공의 동생이 이번에 또 갑질을 했다고 보도했으며, 일본의 한 방송매체는 ‘땅콩 공주’ ‘물컵 공주’ 하며 비아냥거렸다.

지금 한국은 조현민을 처벌하고 항공기의 태극문양을 바꾸어야 한다는 네티즌들의 청원이 줄을 잇고 있다.

땅콩회항의 주인공 조현아는 당시 국민 앞에 사과하며 고개도 못 들더니 한동안 잠적해 있다가 얼마 전 복귀했다. 그런 지 얼마 안 돼 이번에 또 그의 여동생이 이런 행패를 벌인 것이다. 조현민 역시 “어리석고 경솔한 행동에 사과드린다, 감정을 관리 못한 큰 잘못”이라고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이것이 진심일까. 그가 지난번 땅콩회항 사건 때 “반드시 복수 하겠다”고 언니에게 문자를 보내 공식 사과한 일이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갑질’은 아들 조태민 사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교통법규 위반단속 경찰을 치고 달아나다 쫓아온 시민에게 붙잡힌 일이나, 70대 할머니에 폭언, 폭행하여 입건된 사건 등, 이들 삼남매의 행패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전 세계 인구의 0.2%밖에 안 되는 유대인이 세계 각 분야를 주름잡고 역대 노벨상 수상자를 30%나 배출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들의 특출한 자녀교육 때문이다. 이들은 자녀를 잘 훈육시켜 세계적인 기업인, 각계 지도자로 키우는데 성공했다. 그 바탕은 ‘남보다 성공하라’가 아닌 ‘남의 귀감이 돼라’고 가르치는 교육방식에 있다.

그리고 평소 부모가 아이교육에 대해 고민하며 솔선수범하는 태도를 보여 자녀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면서 예절을 익히게 한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책을 읽어주고 한주간의 생활을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런 교육으로 유대인 자녀들은 자라면서 자신과 가문은 물론, 민족을 위해 헌신하는 마음까지 갖게 된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의 교육은 아마 세 자녀가 원하는 대로 그냥 놔두었을 것이고 잘못을 해도 훈육이라는 걸 몰랐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업은 성공했어도 자식농사는 실패했다. 평소 자식교육에 좀 더 신경을 썼더라면 오늘과 같은 망신은 없었을 것이다.

교육에 관한 필독서로 유명한 프랑스의 사상가 장 자크 루소의 ‘에밀’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자식을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이든지 손에 넣을 수 있게 해주는 일이다.” 서민은 물론, 부자나 고위층의 부모가 특히 귀담아두어야 할 명언이다.

<여주영 뉴욕지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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