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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에 변화 바람… 사상 첫 패션쇼

2018-04-19 (목) 한국일보-New York Tie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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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 리야드서 패션주간 개최, 왕세자 사회적 변혁주도 덕분

▶ 패션쇼에 남성은 참석 못해

사우디에 변화 바람… 사상 첫 패션쇼

사우디아라비아의 첫 공식 패션주간에 소개된 디자이너 마샤엘 알라지의 작품. [Maya Anwar - 뉴욕타임스]

사우디에 변화 바람… 사상 첫 패션쇼

마샤엘 알라지가 나이키와 손잡고 소개한 현대적 감각의 히잡 패션.


사우디에 변화 바람… 사상 첫 패션쇼

리야드 아랍 패션주간이 개최된 리츠 칼튼 호텔 행사장 입구. 패션쇼는 2년 전만 해도 사우디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사회적 경제적 변화의 바람이 사우디를 휩쓸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나라들 중 하나인 사우디아라비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사회적 경제적 변화가 사우디를 휩쓸고 있는데 그 좋은 예가 지난주 일어났다. 사우디 사상 처음으로 공식 패션 주간 행사가 펼쳐졌다. 행사가 처음 계획대로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사우디 여성들에게는 몇 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하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사우디 여성들, 그들이 어떤 디자인을 하고, 어떻게 옷을 입는지 등에 대해 완전 단절상태였던 외부인들의 생각을 바꿔주는 훌륭한 기회”라고 사우디 최대도시 제다의 호화 브랜드 컨설턴트인 마리암 모살리는 말한다. “이곳 여성들로서는 빛을 발할 이런 기회를 오래도록 기다려 왔다”고 그는 덧붙인다.

사우디에서 사상 첫 공식 패션주간 행사가 열렸다. 그런데 순조롭지는 않았다. 까딱하면 무산될 뻔했다. 아랍 패션 위원회(두바이의 비영리기구로 지난해 12월 사우디의 수도 리야드에 사무실 개설)가 주관하고 5개월 동안 추진해온 아랍 패션주간은 원래 3월25일에 열릴 예정이었다. 그런데 외국에서 오는 언론인들, 구매자들 그리고 모델들 수십명이 제때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게 되면서 행사 일정이 연기 되었다.

행사를 3주 후로 늦춘 후 16개 패션쇼의 일정이 잡히고, 장 폴 고티에, 로베르토 카발리 같은 유명 초빙 디자이너들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전 세계에서 날아들었다.

하지만 개막식이 열리기로 된 지난 11일 저녁, 첫 모델이 런웨이를 걸어 나오기 불과 45분 전 행사장인 리츠 칼튼 호텔의 궁궐 같은 로비를 가득 메운 화려한 의상의 여성들 수십명의 셀폰 화면이 번쩍이기 시작했다.

패션주간 행사가 다시 24시간 연기된다는 메시지가 행사 주최 측의 왓츠앱 성명으로 전달되었다. 이유는? 리츠 칼튼 호텔의 광대한 정원에 세워지던 패션쇼 텐트의 설치가 완료되지 않았고, 안전하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이번에는 악천후 때문이었다. 모래폭풍에 천둥이 예보되었다.

참석자들은 경악했다. 국내외 디자이너들의 실망은 엄청났다. 사우디의 부유한 시장에 자신의 콜렉션을 선보이기 위해 먼 길을 마다 않고 온, 이탈리아 이집트 레바논 등 외국 디자이너들은 거의 절망했다. 단지 오프닝 행사만 보려고 비행기를 타고 온 많은 참가자들은 마지막 순간의 전갈에 기가 막혀했다.

제다에서 온 모살리는 공항으로 갈 우버를 기다리며 맥이 빠져 있었다. “이런 사태는 우리가 무능하고 제대로 조직도 갖춰있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하는데, 사실 우리는 절대로 그렇지 않다”고 그는 말했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아랍 패션 위원회를 대신해 사우디 당국이 텐트 세우는 일부터 전체 행사를 도맡았다.

리야드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패션 행사 티켓 판매는 저조했다. 마케팅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었다. 커뮤니케이션 부족으로 일부 브랜드들은 참가를 철회했고, 그로인해 판매는 더욱 저조했을 수가 있다. 재능 있는 디자이너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으려고 했던 것인데, 실망스럽기 그지없다고 모살리는 말한다.

그렇기는 해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패션주간 행사가 열린다는 것은 2년 전만해도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왕국의 실질적 통치자인 모하메드 빈 살만 왕세자가 야심차게 이끄는 경제적 사회적 개혁 덕분이다.

두바이 등 걸프지역 인근 국가들의 성공(그리고 실패)에서 영감을 받으면서 사우디는 원유와 개스 수익에 의존하던 데서 벗어나 비즈니스, 관광, 레저 산업의 다이내믹한 지역으로 자리매김하려 애를 쓰고 있다. 아울러 해외 투자와 방문객 유치에도 힘쓰고 있다.

MBS로 불리는 왕세자는 오랜 세월 엄격하게 유지되어왔던 사회적 규제들을 급속히 완화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종교 경찰의 활동을 규제하고, 대중 음악회를 열며 영화에 대한 금지령을 해제하고 여성의 운전을 허락하는 등이다.

그럼에도 여성들은 여전히 소위 보호자 법을 따라야 한다. 가족 중 남성이 일상생활에 필요한 수많은 결정을 내릴 권한을 갖는 것이다.

왕세자는 최근 하버드에서부터 할리웃까지 미국을 광범위하게 둘러보고 지난달 ‘60분’에 출연해서는 여성들이 공공장소에서 무엇을 입을 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물론 품위와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조건은 따라붙는다.

오래 전부터 사우디에는 디자이너들이 활동하고 있었지만(그리고 호화로운 개인저택에서 비공개로 패션쇼가 열려왔다) 대부분 브랜드들은 사업을 키우기 위해 필요한 소재나 스튜디오 직원들, 생산시설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래서 콜렉션을 주로 해외에서 소개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왕세자가 주도하는 사우디의 미래 청사진인 비전 2030은 중소 규모 사업체들 특히 여성이 소유한 기업들 지원을 강조하고 있다.

사회적 변화와 함께 사우디의 도시 여성들 중 점점 많은 수가 전통적 검정 아바야 대신 보다 알록달록한 색상과 무늬의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것도 패션 시장의 전망을 밝게 한다.

이번 패션 주간 행사에는 다양한 디자인의 의상들이 구치 운동화나 크리스티앙 루부텡 하이힐, 샤넬 핸드백 등을 액세서리로 소개되었다. 이 같은 행사는 사우디 여성들의 권익신장을 위한 한 단계 진전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두바이에서 일하는 사우디 디자이너 아르와 알-바나위는 말한다.

패션주간 행사는 1,500명을 수용하는 거대한 텐트 아래에서 화려하게 진행되었다. 남성 디자이너들의 무대 뒤 출입은 금지되었고, 소셜미디어도 엄격하게 금지되었다. 남성 편집인들, 사진작가들의 출입도 금지되고, 공식 여성 사진작가 몇 명만 출입이 허용되었다.

덕분에 관중 전원이 여성이어서 여성들은 아바야를 벗어도 될 기회를 얻었지만 실제로 그렇게 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현재 사우디 여성들은 전통적 아바야를 입거나 아니면 서구 스타일의 옷을 아바야 속에 입는다. 그 중간 디자인 즉 멋스러우면서 보수적인 디자인은 별로 없는 상태이다. 긴 소매에 발목까지 내려오면서 멋스러운 디자인은 이번 패션 행사 중에도 별로 소개되지 않았다. 사회적 변화가 계속되면서 여성들은 전통적 아바야를 벗고 정숙하고 수수한 그러나 멋진 의상을 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사우디의 패션 시장은 엄청나게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일보-New York Tiems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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