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하는 한국기업들

2018-04-19 (목) 고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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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영진 거수기’ 논란 해소에도, 친정부 인사·관료 선호는 여전

▶ 30대 그룹 상장사 사외이사, 권력기관 출신이 35% 달해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하는 한국기업들

최근들이 한국 주요기업들의 사외이사 운영 방침에 의미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삼성전자 주주총회 모습.

최근들어 한국 내 주요 기업들의 사외이사 운영 방침에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그간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로 주주 가치를 제고하는 본연의 역할이 아니라 거수기 노릇을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아온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기업이 삼성그룹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정기 주주총회 직후 열린 이사회에서 사내이사의 사외이사 추천 권한을 없앴다.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이를 통해 이사회 운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이사회 의장은 경영위원회 등 산하의 6개 위원회 중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도록 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사회 의장이 경영위원회를 비롯한 산하 위원회에 속하지 않도록 해 활동의 독립성을 보장했다”며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 사내이사를 포함하지 않은 것도 같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삼성물산 역시 올해 사외이사로만 구성된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를 도입했다. 삼성의 이 같은 시도는 10대그룹 중에서는 처음으로 향후 다른 기업들의 변화를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된다.

SK하이닉스의 변화도 눈길을 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9일 사외이사만으로 구성된 사외이사회를 소집할 수 있는 ‘선임사외이사제’를 도입한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이사회 내 사외이사진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외부의 다양한 의견을 회사 경영에 반영하겠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비금융권에서 선임사외이사제를 도입한 것은 SK그룹 지주사인 SK㈜ 이후 두 번째다. 이외에 효성그룹은 지난해 7월 이사회 사외이사회추천위원회 대표위원을 사외이사가 맡도록 규정을 변경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움직임은 긍정적이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사례처럼 기업들이 구조적으로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하는 장치를 마련하면 그간 사외이사 제도의 문제점들이 상당 부분 해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사외이사는 주주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주주의 의사를 잘 반영할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사외이사 제도가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주주의 이해관계를 잘 반영하면 그간 논란이 돼온 경영진 거수기 논란, 과도한 보수 같은 문제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여전히 개선해야 할 부분도 많다. 올해도 그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온, 기업들이 사외이사를 경영진의 방패막이로 삼는 행태가 변하지 않고 있다. 친정부인사나 관료·법조인 출신을 선호하는 현상이 여전하다. 특히 정부의 입김이 센 기업이나 금융권일수록 정부와 가까운 인사들을 선호한다.

KT의 경우 올해 참여정부 시절 활동했던 이강철 전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비서관과 김대유 전 청와대 경제정책수석을 사외이사로 앉혔다. KT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권의 색깔에 맞는 사외인사를 영입했던 전력이 있다.

포스코도 마찬가지다. 포스코가 올해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한 김성진 전 한경대 총장은 참여정부 때 대통령 산업정책비서관, 중소기업청장, 해양수산부 장관 등 요직을 두루 거친 인물이다. 금융권 역시 친정부인사들이 득세하고 있다. 신한금융지주가 지난 3월 주총에서 신규 선임한 박병대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문재인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다.

또 KB금융지주가 신규 선임한 정구환 변호사는 참여정부 시절 한국소비자원 소비자분쟁조정위원장을 지냈으며 선우석호 홍익대 교수는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과 경기고 동문이다.

금융감독원·국세청·검찰 등 3대 권력기관 출신들의 비중도 여전히 높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가 올해 주총에서 사외이사를 선임한 30대그룹 소속 상장기업 111개사를 분석한 결과 3대 권력기관 출신의 비중이 35.4%로 나타나 2016년(31.8%)보다 오히려 3.6%포인트 높아졌다.

<고병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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