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25년 만에 연극 무대 오른 최불암 “부르짖고 싶은 삶이 이것”

2018-04-17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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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서 별 건네는 노인 역 맡아

25년 만에 연극 무대 오른 최불암 “부르짖고 싶은 삶이 이것”

최불암 연기 내공 고스란히 연극으로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배우 최불암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프레스 리허설에서 열연하고 있다.

"무대가 검다 보니 등·퇴장이 어려워요. 노구인 만큼 헛발질은 안 할까 걱정했더니 대사도 1~2곳 잊어버리고 그랬네요. 다들 눈치채셨을 겁니다."

'국민 아버지'로 불리는 배우 최불암(78)이 18일(한국시간 기준) 개막하는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로 무대에 돌아왔다. TV 교양·예능프로그램에서 가끔 모습을 볼 수 있지만 2014년 이후에는 사실상 연기활동을 중단한 그였다.

연극 무대에 선 것은 아서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을 각색한 1993년 작품 '어느 아버지의 죽음' 이후 25년 만이다.


최불암은 17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 겸 기자 간담회에서 "밤에 불안해서 잠을 못 잤다"는 소감을 전했다.

"내가 이 역할이 될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나이가 드니 자꾸 대사를 잊어버려요. 몇 초만 어긋나도 문제가 생기는 무대 위 타이밍을 잘 맞출 수 있을까, 20~30살씩 차이 나는 후배 배우들과 호흡할 수 있을까, 연극이 진행되는 보름간 건강이 잘 유지될 것인가 등이 고민이죠. 어제 (고정 출연 중인 KBS 프로그램) '한국인의 밥상' 촬영을 하면서도 계속 이 생각뿐이었어요. 대사도 계속 중얼중얼 해보고요. 사실 제 나이는 이미 연극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잃어버렸죠. 무대 계단 오르기도 힘든걸요."

이러한 육체적, 심리적 부담에도 다시 연극 무대에 오르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이 연극을 통해 "사는 게 뭔지, 삶의 가치나 이유는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는 작품을 하고 싶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제가 정말 부르짖고 싶은 삶이 이것입니다. 다리 몽둥이가 부러진들 어떠랴 하는 각오로 무대 위에 섰어요."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는 일상 속에서 절망하고 길을 잃은 현대인들의 초상을 그려낸다.

뜻밖의 사고로 하반신 불구가 된 남편을 돌보고 있는 '아내', 10년 전 히말라야 등반 중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행방불명된 천문학도 '준호', 눈물범벅인 채로 인형 탈을 쓰고 프리 허그를 하는 세일즈맨 '진석' 등은 저마다 흔들리고 좌절하는 우리들의 모습 어딘가와 닮았다.
25년 만에 연극 무대 오른 최불암 “부르짖고 싶은 삶이 이것”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배우 최불암(왼쪽)과 박혜영이 17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연극 ‘바람 불어 별이 흔들릴 때’ 프레스 리허설에서 열연하고 있다


최불암의 역은 비중이 그리 크진 않지만 극의 중심을 잡는다. 최불암은 외계에서 왔다고 주장하는 '노인' 역을 맡아 "눈을 감아보라. 별은 바로 여기, 우리에게 있다"며 객석을 토닥인다.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즐겁게, 사는 맛을 살리며 살 수 있다는 걸 후배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우리 모두 너무 물질, 성공, 개인주의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에요. 며칠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한국이 또 자살률 1위를 기록했다는 기사를 봤어요. 하루에 평균 36명이 자살한대요. 그걸 보고 내가 '이 연극을 하길 잘했구나' 싶었어요. 삶의 의미를 돈독하게 하는 작품이 되길 바랍니다."

최불암이 이번 작품을 계기로 연기를 본격적으로 재개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시각도 있지만, 그는 "제가 39년생이다"라는 말로 에둘러 답했다.

"백세 시대라고들 말하지만, 벌써 80세인걸요. 아주 노인 역할이 아니면 하기 어렵다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누가 '이게 고별 작품이냐' 라고 물으면 '아니다'라고 답하겠지만, 이 작품이 나를 정리하는 시간이란 느낌은 들어요. 연기는 할수록 발전할 수도 있겠지만 육체가 말을 안 듣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이건 누구나 그럴 겁니다. 고작 80세가 건방지게 포기하는 것처럼 안 비쳤으면 좋겠네요."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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