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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에게서 배운다

2018-04-14 (토) 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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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애완견과 함께 자면 개도, 주인도 꿀잠”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메이오 병원의 임상실험 결과 보고서여서 믿을 만하다. 주인과 개가 같은 침대에서 자면 수면효율이 주인은 81%, 개는 85%까지 오른다고 했다. 수면효율이 80% 이상이면 꿀잠(숙면)을 잔 것으로 평가된다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사람이 개와 한 이불 속에서 자는 모습을 상상하면 망측하다. 요즘엔 많이 달라졌지만 한국에선 자고로 개가 주인 이부자리는커녕 방안에 얼씬하지도 못했다. 내가 어렸을 땐 개집조차 보기 드물었다. 마루 밑이나 헛간에서 지푸라기라도 깔고 자면 팔자 좋은 개였다. 과자 같은 요즘 펫푸드는 상상도 못했고, 주인 밥상의 잔반이라도 꼬리치며 얻어먹었다.

미국 개들은 전혀 딴판이다. 전체 개 주인들 중 75% 가량이 개를 자녀처럼 가족의 일원으로 치부한다고 말한다. 거의 모두 방에서 개를 기른다. 놀랍게도 개와 한 침대에서 잠을 자는 개 주인들도 전체의 절반 가량이나 된다. 요즘 미국의 전체 애완견 수가 약 9,000만 마리로 추산되므로 그 중 절반인 4,500여만 마리가 주인과 한 침대에서 잔다는 계산이다.

한국 개들은 이름도 없었다. 그냥 멍멍이, 아니면 색깔을 따라 누렁이, 검둥이 등으로 불리다가 미국바람이 불자 수캐는 존, 암캐는 메리로 거의 통일됐다. 미국 개들은 저마다 사람 같은 이름을 갖고 있다. 요즘 수캐 이름은 베일리, 맥스, 찰리, 버디, 록키, 암캐 이름은 벨라, 루시, 몰리, 데이지, 매기 등이 인기 있다. 엔젤, 프린세스, 루비 따위도 흔하다.

미국 애완동물 제품협회(APPA) 통계를 보면 지난해 미국인들이 애완견을 위해 쓴 돈은 자그마치 700억 달러에 달했다. 10년 사이 70%가 늘어났다. 사료비용만이 아니다. 생일파티, 크리스마스 선물, 항공여행비, 보험료, 의료비도 있고, ‘탁견소’나 산책 동반자 인건비, 애완견 용 옷이나 가구 구입비용도 포함된다. 개 주인 1인당 연평균 3,000달러를 쓴다.

미국인 가구 중 절반 가량(48%)이 개를 기른다. 개 주인들 중 31%가 옷을 사 입힌다. 모자도, 신발도, 배낭도 있다. 동네 개들을 초청해 생일파티를 여는 주인이 11%(젊은 밀레니얼 세대 중엔 23%), 크리스마스 때 선물을 주는 주인이 50%나 된다. 일할 때 ‘탁견소’에 맡기는 주인은 아직은 2%지만 유언장에 개 몫의 유산을 챙기는 주인은 44%나 된다.

개들이 갈수록 호강하는 건 요즘의 미국세태를 반영한다. 전체 미국가구 중 30%가 ‘나홀로’ 가구이다. 1960년의 2배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결혼을 늦춘다. 따라서 출산도 늦다. 은퇴기를 맞은 베이비부머들도 아직 건강하고 수명도 길어졌다. 돈 있고 시간 많지만 외로운 사람이 많아지면서 이들 사이에 개를 자식처럼 기르려는 욕구도 자연히 늘어났다.

한국 상황도 예전과는 판이하다. 저출산, 인구고령화와 함께 1~2인 핵가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애완동물을 자식이나 벗처럼 기르는 사람이 1,000만명(457만 가구)을 헤아린다. 인구 5명 중 한명 꼴이다. 관련 시장규모도 2012년 9,000억원에서 3년 후 1조8,000억원으로 2배가 뛰었다. 2020년엔 현재의 3배 이상인 5조8,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모르고 지나갔지만 지난달 23일은 ‘전국 강아지 날(National Puppy Day)’이었다. 애완동물 생태연구가 콜린 페이지가 강아지 입양 캠페인을 위해 2006년 창설했다. ‘어른 개’의 날은 따로 있다. ‘전국 개의 날’(8월 26일)로 역시 페이지가 창설했다. ‘개 감사의 날,’ ‘개 데리고 출근하는 날,’ ‘개처럼 일하는 날’도 있다. ‘전국 고양이 날’(10월 29일)도 있긴 하다.

주인과 함께 씩씩거리며 산을 오르는 팔자 좋은 견공이 많다. 직장 근처 출근길 프리웨이 출구엔 항상 덥수룩한 래브라도 개가 역시 덥수룩한 홈리스 주인을 지키며 묵묵히 앉아 있다. 주인에게 잔돈을 건네면 개가 꼬리를 흔든다. 개 팔자도 주인 따라 달라지겠지만 개는 결코 가난하거나 병든 주인을 마다하지 않는다. 개에게 배워야할 사람이 많을 듯하다.

<윤여춘 시애틀지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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